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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1940년에 이런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영화


나의 2,774번째 영화. 많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영화다. 원래 1951년도 동명 영화를 다시 리메이크한 작품(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지구 최후의 날, 지구가 멈추는 날로 표현이 다소 다르지만 원제는 같다.)이다. 당시에 이런 시나리오를 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썼을까 하는 생각에 퍽이나 놀라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말이다.



키아누 리브스: Keanu Reeves


<폭풍 속으로>라는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된 키아누 리브스. <스피드>로 흥행을 하더니(뭐 이전에 영화에서도 인정은 받았겠지만 그를 흥행 보증 수표처럼 만들어준 작품은 단연 <스피드>다.) <코드명 J>에서 약간의 사이버틱 이미지를 보이더니 <매트릭스>를 통해서 그런 이미지를 더욱 굳힌 듯 싶다. 그래서 이 영화 속에서의 키아누 리브스 역할인 외계인이 퍽이나 어울렸다.


이런 얘기를 1951년에 만들었다고?

개인적으로 놀랬던 부분들이 이거다. 이 영화는 Harry Bates(1900~1981)라는 작가가 1940년에 쓴 단편 소설 <Farewell to the Master>을 영화화 한 것이라고 한다. 1940년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얼마 안 되는 시기인데 이런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것이 내게는 신선했다. 지금 봐도 충분히 들어볼 만한 메시지들이 많이 담겨 있는데 60년 전에 이런 얘기를 했으니 말이다.

01. 인류의 대표

클라투라는 외계인(키아누 리브스 역)과 미국 국방장관(케시 베이츠 역)의 대화를 보면 클라투라는 외계인은 문명들의 단체를 대표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에 온 목적이 가까운 곳에 그들의 모임이 있다고 한다. 지구와 같은 문명이 우주 상에도 존재한다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들 문명의 단체가 있고 모임이 있다는 설정이다. 퍽이나 참신하다.

그런데 문제는 왜 지구의 문명은 대표자가 없는가하는 부분이다. 물론 클라투라는 외계인과 미국 국방장관의 대화를 보면 클라투가 미국 국방장관보고 "당신이 인류 대표인가?"라고 묻는데 마치 연방 공화국과 같이 국경선이라는 것으로 나누어서 따로 노는 우리에게 대표라는 게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원만한 국가간의 합의를 위해서 국제 연합이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국제연합은 1945년에 만들어졌다. 1940년에 이런 얘기를 적을 당시에는 그런 연합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연합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류를 대표하는 역할은 누가 해야 하는가? 국제 연합의 사무총장인가? 아니면 가장 국력이 강한 미국의 대통령인가?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는 미국의 대통령이 마치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이런 클라투의 질문에 미국의 국방장관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을 대신합니다."

02. 말 말 말.

"왜 우리 행성에 왔습니까?"
"당신네 행성?"
"예. 여기는 우리 행성입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문명 간의 조우에 대해 역사적 교훈이 있습니다."
"뒤처진 문명이 멸망하거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스페인이 잉카를, 콜럼버스가 인디언을... 예는 많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번 경우에는 뒤처진 문명은 바로 우리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발견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후의 발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내 몸이 그렇습니다."
"당신은 고통을 느낍니까?"
"내 몸이 그렇습니다."

"당신은 친구인가요?"
"나는 지구의 친구입니다."

"인간들이 동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비이성적인 종족이에요. 난 여기서 70년을 살았어요. 그들을 잘 알죠."
"그래서요?"
"설명하려 할 때마다 실패했어요. 그들은 모든 걸 망쳐요. 절대 바뀌지 않을 거에요."
"그게 공식적인 의견인가요?"
"문제는 자신들의 운명을 안다는 거죠. 느끼고 있을 거에요."
"결정했어요. 곧바로 과정을 시작하겠어요. 우린 떠날 준비를 해야겠군요."
"난 남겠어요."
"당신은 남을 수 없어요."
"난 남을 겁니다."
"여기 있으면 죽습니다."
"알아요. 이제 여기가 집이에요."
"당신이 직접 비이성적인 종족이라고 했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다른 면도 있어요. 난 그들을 사랑해요.
아주 이상한 일이죠. 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할 지 모르겠네요."

"이 행성이 죽어가고 있어요. 인류가 죽이고 있죠."
"그래서 도와주러 왔군요?"
"그렇지 않아요."
"우릴 구해주러 왔다면서요?"
"지구를 구하러 왔다고 했죠."
"지구를 구하러 왔다... 우리로부터..."
"인간 때문에 지구의 생존을 위협할 순 없어요."

03. 고트: GORT


'고트'가 인류를 쉽게 제압하는 방법을 보면, 고주파를 발산한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 영역 밖의 고주파를 발산하여 어느 누구라도 귀를 잡고 뒹굴게 만든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지는 모르겠지만 유술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데에는 손가락 하나만 꺾으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개념인지라 충분히 설득력은 있었다.

게다가 이 '고트'은 폭력을 감지하면 작동한다.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원래 먼저 공격하지 않는 자가 여유가 있고 힘이 있는 자인 법이다. 또한 다이아몬드 드릴을 써도 뚫을 수 없는 물질로 되어 있는 생명체(?)인데 이게 나중에 '나노봇'으로 분해되어 지구를 정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근데 사람의 모양을 한 것을 보면 왜 펩시맨이 자꾸 생각나는지.

04. 지구와 인류

지구가 죽으면 당신들도 죽어요. 당신들이 죽으면 지구는 살아요.
우주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혹성이 몇 개 안 되요.

인류가 바뀌길 기다렸지만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말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이걸 1940년에 생각했다니. 제임스 러브록 교수의 <가이아>를 1995년도에 읽었는데 그 때 지구가 유기체라는 것에 대한 견해가 매우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1979년도에 발표한 이론이긴 하지만 나는 1995년에 접했다. 그 제임스 러브록 교수가 최근에는 이제 더이상 지구는 돌이킬 수 없다고 절망의 메시지를 보낸 것을 생각해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잉>에서 보면 생명이 살 만한 행성이 얼마나 되는 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은하계에 있는 태양과 같은 별을 세고 난 다음에 그 별을 공전하는 지구와 같은 행성들을 생각해보면 천만 개가 가능성이 있으며, 그 중 4백만 개의 별에서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다고...

05. 전자, 전기

클라투는 전기, 전파등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를 보면 탈레반이 어떻게 미국의 감시를 피하는지 잘 보여주는데 그들은 디지털 사회에 아날로그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무리 최첨단의 레이다망이나 인공위성으로 감시를 한다고 해도 그들이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기 때문에 감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클라투가 그런 능력을 가졌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무한대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얘기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들렸고 말이다.

결말을 보면 조금 아쉬운 면도 분명히 있긴 하다. 클라투가 사람의 몸을 빌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노봇'의 폭풍 속으로 들어갈 때 어떻게 그리 멀쩡했는가 하는 부분이 그렇다. 그러나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가 그래도 다른 면을 발견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기회를 주는 것 등은 충분히 스토리 상에서 그럴 듯 했다. 수많은 혹평을 받기는 했지만 SF 고전을 리메이크 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그 스토리가 퍽이나 놀라웠기에 나는 추천하는 영화다. 개인 평점 8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