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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SBS 스페셜 2부작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 과연 대한민국에 정의란 있는가?


최근 서점가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정의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반증하더니 그에 맞춰서 SBS에서 2부작 스페셜로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를 방영했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서 동생한테 이거 읽어보라고 건네줬었는데 동생이 어느 날 내게 SBS 스페셜 보라고 권해서 바로 찾아서 봤었다. 꼭 한 번 보길 권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들어도 희망이 보여야 희망을 먹고 살잖아요.
희망은 마음 먹기 나름이고 만들어간다고 할 지는 몰라도 이미 태어날 때부터 희망적이지 못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감내해야할 건 너무나 많다.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돌아올 꺼라는 말은 자기계발 서적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얘기다. 자기계발 서적을 통해 헛된 희망을 가진다 할 지라도 인간은 희망 없이는 살 수 없기에 그런 말조차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냉정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희망을 얘기해주는 게 낫다고 보지만...

1부에는 내부고발자 얘기가 나오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부고발자에 대한 처우는 항상 그런 듯하다. 그것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 문제인 듯. 항상 힘을 가진 자들은 공개하길 꺼린다. 공개되지 않는 것 속에 권력과 재력이 결탁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걸 공개하게 되면 그러한 문제는 다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법이라는 게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 듯 하다. 지금의 법은 만인을 위한 게 아니라 있는 자들에게 유리하니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법 앞에서는 만인의 평등이라고 하지만 사실 법 앞에 서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법은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에게는 후하고, 힘 없고 돈 없는 자들에게는 매섭다는 걸. 법이 정의를 세우기 위한 것일까?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판, 검사나 변호사가 된다 하더라도 정의를 세우기 보다는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치열한 생존을 해서 그 조직에서 살아남아야할 현실만 놓여 있을 뿐이다.

영화 <도가니>에서도 마지막에 반전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고 말이다.(실제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정의가 이긴다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의가 이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다. 겪어보면 그렇다. 그래서 남의 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경우도 종종 생길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없을텐데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법은 법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바른 생각을 해야 하는데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대우를 못 받고 조직에서 도외시되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문화, 분위기는 단시간 내에 바뀌지 않고 아주 서서히 바뀌기 마련인지라 사회적 분위기나 시대의 흐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건 아니라고 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게 현명하다 본다. 혼자가 아니라 무리지어서.

그래도 점점 발전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승자가 모든 걸 가져가면 다음 게임은 없다

The winner takes it all. 어찌보면 매우 멋진 말 같아 보여도 해석을 잘 해야 한다. 이번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쥐구멍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물기 마련이다. 적어도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을 노력하지 않아서 능력이 없어서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이기기 힘든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

같은 조건에서 페어 플레이를 해야 하지만 같은 조건이 아닌 경우가 많고, 심판이 잘못된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승부라는 게 의미가 없다. 공정한 조건에서의 경기라면 승부에만 관심을 둘 수도 있겠지만 이미 승부에 관심을 둘 수 없는 경기가 너무 많으니 문제인 거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 승리의 사례를 보면 열광을 하고 감동을 얻는 게 아닐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례는 지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정의의 기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정의의 기준이지만 시골의사 박경철의 말처럼 누구나 응당 그렇게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면 쉬이 해결될 일들이 많다. 문제는 많은 권력층들이 비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그런 비상식이 그들에게는 상식이 되었다는 거다. 그래서 권력층이 되려면 비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 상승 욕구가 매우 강해 그러한 비상식이 꽤나 잘 통하는 듯.

기득권층의 자녀들은 기득권층들의 자녀들끼리 인맥을 형성하고 기득권층의 비상식을 전수 받아 그들도 비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에게는 그게 상식인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상식의 기준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