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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독서

화내지 않는 연습: 화를 참으려고 읽었는데 쉽지 않네


읽어보고 싶어서 북이십일의 양진원 팀장님께 요청을 했고 양진원 팀장님은 자신의 복지포인트로 구매를 해서 주신 고마운 선물이다. 사무실 책상 한 켠에 읽지 않은 책들 쌓아올려둔 곳에 두었다가 마침 최근 화를 삭이는 일이 많아지면서 스트레스가 심해 잘 됐다 싶어서 펼쳐 들었는데 글쎄다. 별 도움이 안 되었다. 화내지 않는 연습이 잘 안 되더라는 거.

문득 몇 년 전에 읽었던 틱낫한 스님의 <>란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은 <화내지 않는 연습>에 비해서 한 페이지 내에 활자도 많았고 더 두꺼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내지 않는 연습>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책 내용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책을 접할 때의 마음 때문에 그런지, 4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러 그 사이 내 머리가 너무 굳어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아마도 책을 접할 때 마음 때문이 아닌가 한다. '화내지 않는 연습'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했지만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던 거 같다. 그래서 <화내지 않는 연습>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읽다가 '뭘 읽었지?'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었다. 개인적으로 책 내용이 그리 재밌고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책 내용의 문제라고 보긴 어려울 듯.


부디즘: Buddhism

나는 종교가 없다. 불교를 종교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속세의 틀에 갖힌 종교일 뿐이다. 단지 나는 부디즘의 사상을 좋아할 뿐이다. 그것은 부처를 믿는다거나 불교를 종교로 두는 것과는 맥락이 다르다. 그래서 <화내지 않는 연습>에서 코이케 류노스케가 하는 얘기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근데 이미 그런 걸 모르는 바가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 읽히지 않는다.

내가 부디즘을 좋아하는 건 깊이가 있어서다. 읽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의 시간 속에서 나름 마음이 정화되는데 이 <화내지 않는 연습>은 내겐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혀 유용하지 않았다거나 읽을 만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분명 어떤 이에게는 내가 <>를 읽으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건 너무 생각이 많아서일까?


사람으로 인해 생긴 화

현재의 화를 참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인해서 생긴 화가 분명 같은 상황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미래에도 생길 것이라는 걸 안다면? 어찌 사람이 미래에 벌어질 일을 단정할 수 있겠냐만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면도 있다는 거다. 나는 사람을 볼 때 나한테 잘 해주냐 잘 해주지 못하냐를 보기 보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보고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단점으로써 인정하는 편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바뀔 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서 갖고 있는 단점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만한 단점을 여기서 얘기하는 게 아니다. 바뀌지 않는 단점도 있다. 그 사람이 타고난 부분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얘기를 한다. 나이가 들면 바뀐다고.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단점 그 자체가 바뀌는 게 아니라 단점을 커버할 다른 능력을 얻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가끔씩 화를 참으면서 생각할 때 지금의 화는 참을 수 있는데 미래의 화에 대해서 고민한다. 분명 그 사람의 타고난 부분 때문에 내가 화가 난 거라면 앞으로도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겠는가?
 
진솔한 대화로 서로에 대해서 이해하면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최선이다. 그럴 만한 상황이 벌어질 거 같으면 서로 조심하면 되니까. 그런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은 벌어지게 마련이다. 왜냐면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지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즉 10번 그런 상황이 벌어질 게 서로 조심하다 보면 1번 정도로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게 문제다. 지금의 화를 참아내면 다음 번의 화를 또 참아야 한다는 거. 계속해서 참을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만 나는 아직 그럴 만한 인격체가 못되는 인간이라는 거다. 나도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다 보면 이런 점을 고쳐야 하는데 하면서 의지를 갖고 해보지만 순간 순간 그런 나를 보면 나는 이런 단점이 있구나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근데 웃긴 건 내가 그렇게 인정을 하다 보니 많은 경우에 내가 그래서 그렇다는 식으로 얘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또 화가 난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인데 많은 이들은 내가 그렇게 인정하면 잘못을 그것으로 돌리곤 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조목 조목 이성적으로 따지고 싶은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라도 그냥 만다.

물론 화가 나는 게 사람 문제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다른 거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사람 문제가 아닌 여타의 문제로 화가 날 때는 비록 화가 났다 하더라도 쉽게 풀리고 빨리 잊혀지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사람 문제는 그게 쉽지가 않기 때문에 깊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거다.


화를 참으면서 읽었지만

사실 <화내지 않는 연습>을 읽은 이유가 그런 생각들 때문에 읽었던 거다. 그런데 별 도움은 못 얻었다. 물론 그렇다고 도움이 되지 않는 책, 비추천 책 이런 건 아니다. 읽으면서 그래도 마음은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과정 중에 조금은 '그래. 좋게 생각하자.'라고 생각도 하곤 했으니 말이다. 사실은 도움을 얻고자 읽은 건 아니다. 뭐라고 했나 싶어서 읽었지. ^^;

화를 내도 오래도록 화를 내는 게 아닌 것처럼 좋게 생각하자는 생각 또한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거 같다. ^^; 코이케 류노스케와 같이 인생 자체가 수행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수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속세에 사는 이들 대부분의 업(業)은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거 같다.

화를 참기 위해서 <화내지 않는 연습>을 읽기 보다는 화낼 게 없는 경우에 <화내지 않는 연습>을 읽는 게 오히려 더 글귀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생각이 많은 인간인지라 오히려 이런 책을 읽기 보다는 뭔가 집중할 다른 것을 찾아서 거기에 집중하는 게 나에게는 화를 참는 데에 좀 더 나은 방법인 거 같다. 그게 독서는 아니더라는 거. ^^;


Ex libris

01/ 계(戒): 자신을 제어하는 규칙, 자기 자신에게 규칙을 부과하는 것
02/ 율(律): 집단에서의 규칙

화내지 않는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양영철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