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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남영동 1985: 실화 민청련 사건을 다룬 故 김근태 의원의 수기 '남영동'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나의 3,157번째 영화. 11월 개봉 기대작 중에서 가장 기대하는 작품이었던 <남영동 1985> 개봉하자마자 보러 갔다. 보기는 개봉일에 봤는데 요즈음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어 이제서야 적는다. ^^; 뻔한 내용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보고 싶었다. 보고 나서 든 느낌은? 가슴 먹먹하다. <남영동 1985>를 만약 고 김근태 의원의 자식들이 보면 어떤 심정일까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들어서 말이다. 정지영 감독의 입장은 아마도 <남영동 1985>에서 환영 속에 등장하는 고 김근태 의원의 아내의 말에 담겨 있지 않나 싶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이해한다는 거지. 그런 상황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거짓 증언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이 받았던 그런 고문을 그들도 받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과 같이 무고한 이들의 이름을 불러야 했던 스스로를 책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 김근태 의원을 책망하기 보다는 그런 시대에 태어난 게 안타까울 뿐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물론 모진 고문에 목숨을 잃어간 수많은 독립 투사들을 생각하면 그게 뭐 대수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목숨을 걸고 투쟁한 독립 투사들과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민주화 운동을 한 이들과는 조금 달리 볼 부분이 분명 있다고 본다. 만약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과연 나는? 이런 생각을 <남영동 1985>보면서 많이 했었다.

항상 나서기를 좋아했던 나였던지라(그렇다 해도 나설 자리가 아니면 아예 나서지 않아서 나설 자리 보고 나선다. ^^;) 대학교 입학하고 아버지가 걱정스레 얘기했던 한 마디가 있다. "절대 데모는 하지 마라." 이거 아니다 싶으면 나서서 뭐라 하는 성격인지라(지금에야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 예전에는 상당히 심했다.) 데모를 하게 되면 주동자가 될 게 뻔했기에 그런 거였는데 사실 내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총장 비리 정도의 데모 외에는 없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생각한다. 분명 그 이전 시대에 대학교를 다녔다면 데모를 했겠지만 그랬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가 저런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내가 지켜온 가치를 지켜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퀘션 마크를 던질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군사 독재 시절이라 불리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보고 있다. 물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겠지만. 여기서 구구절절 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전두환에 대해서는 많이 안 좋게 보고 있다. <남영동 1985>의 배경이 1985년도니 전두환 정권 시절에 벌어진 일인데, 세상이 바뀌어 인권이 중요한 시절이 되었다 하더라도 인권이라고 하는 건 인간에게 적용되는 거지 동물학적인 기준에서 인간에게 적용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비록 그네들과 똑같이 해서 받은 만큼 돌려주자는 얘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과거 청산은 꼭 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끔 만드는 영화였다. 개인 평점 9점의 추천 영화다. 꼭 보길 바라는.

남영동 (보급판)
김근태 지음/중원문화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인 남영동 대공분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평일 9시부터 6시까지는 개방하는 거 같다. 남영역 바로 뒤쪽에 있던데 언제 한 번 가봐야할 듯. 이 건물은 당시 유명 건축가였던 김수근씨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설계할 때부터 고문을 위해 5층을 할애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건축가 김수근씨를 뭐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경찰청에서 시키는 대로 자신의 능력을 제공했을 뿐.

물론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안 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뻔한 것일테고. 이왕이면 좀 재치있게 거짓말을 하면서 요리 조리 피해서 안 맡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게 시도했을 지도 모르지.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지라 국가에서 그렇게 해라고 하는데 그걸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피하는 것도 한계는 있었을 듯. 그래서 이런 걸 두고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 어떻다 할 부분이 안 된다. 즉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고 해서 그를 탓할 거리는 아니다. 다만 그걸 거절하거나 피하면서 끝까지 안 맡으려고 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물을 잘 보면 5층에만 창문이 없다. 지금은 증축되어 7층이지만 당시에는 5층까지만 있었다고. 고 김근태 의원이 고문을 당했던 방은 515호.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고문으로 죽었던 509호는 현재 박종철 기념실로 꾸며져 있는데 <남영동 1985>에서 보던 고문실과 구조는 비슷하지만 조금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여러 가지를 크로스 체크해보면, 고 김근태 의원이 고문을 당했던 당시는 <남영동 1985> 영화 속에서 보인 세트장이 실제와 유사하지 않았나 싶다. 언제 한 번 꼭 가볼 생각이다.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

뭐든 양쪽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의원의 수기인 '남영동'이란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고로 고 김근태 의원의 얘기란 말이다. 그럼 고문 기술자라고 불리는 이근안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찾다 보니 유투브에 올려진 재미난 동영상이 있다. 쿨TV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당시 목사였던 이근안씨와 인터뷰한 내용인데 꽤 길다. <남영동 1985> 관련된 내용만 보려면 아래 김근태 고문 사건만 보면 되고 그게 아니라 이근안이라는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으면 전체 다를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전체 다를 보기를 바란다. 들어볼 부분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대공수사관 생활



함주명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도피 생활과 자수




들어볼 말은 있다 하더라도 용서가 안 되는 이유

위의 동영상을 다 보다보면 들어볼 말도 분명히 있는 건 사실이다. 과거사에 대해서 해석을 할 때는 그 시대에 맞는 잣대가 필요하다는 그런 얘기 같은 게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은 다 옳다거나 진실되다는 게 아니다. 들어볼 말도 있는 반면에 거짓된 얘기도 있다는 거다. 특히 고문 행위에 대해서 하는 얘기가 그렇다. 고문을 한 사람의 말보다는 고문을 당한 사람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어서? 그게 아니다.

그럼 고문을 당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이 다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어서? 물론 그런 부분도 충분히 고려가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당시에는 고문 행위가 자주 이루어졌다는 것, 있지도 않은 일을 일어난 것처럼 자백을 강요한 것은 사실로 밝혀진 지 오래니 그 당시에 악명이 높아 고문 기술자라고 불리울 정도의 인물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그런 행위를 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는 거다. 근데 왜 그는 고문 행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까? 

우선 그의 악명 높은 고문 내용들을 보면 매우 비인륜적인 행위다. 그건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를 잘못된 시대의 희생물로도 볼 수 있는 건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에서도 보이듯이(실제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만든 독일 영화)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그 상황에 적응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이근안은 시대의 희생물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 같은 시대,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 모두가 이근안과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고로 그는 기질 자체가 그런 면을 다분히 갖고 있었다는 거다. 그는 나름 애국이라 착각하지만 말이다.

스스로도 자기가 한 행위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라 생각할 거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을 하는 걸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그걸 인정해버리면 자식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측면이 있고(인정할 건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면서 사과하는 모습이 더 자식들에게는 나을 거라고 나는 보는데 이근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래도 이근안도 부모니까 말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전두환이 살아 있다는 거다. 전두환 봐라. 이해가 되나?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살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안 되지?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잖아. 즉 나름 교육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에게.

내 기준에서는 이근안은 인간이 아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가 과거에 한 행위에 대해서는 용서가 안 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는 인간은 인간 취급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니 그가 행했던 고문 행위를 그대로 돌려주자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꼭 그런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갚아줄 필요는 없지만 용서할 수는 없는 거다. 그는 징역을 살고 나와서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한 죄값은 치루었다고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죄값을 치루는 건 징역을 살아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 후에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용서가 안 된다. 적어도 그가 한 행위는 그럴 만한 행위니까. 그런데 그는 반성하는 기미도 없고 용서를 구하려는 생각도 없는 거 같다. 그답다. 역시 인간이 아냐.


그에게 고문 당한 분들의 얘기들



이건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라는 팟캐스트 방송이다. 여기에 19분 35초에 고문을 당했던 양승조씨와의 전화 통화 내용이 있다. 그 외에 아래의 내용도 참고하길 바란다. 물론 고 김근태 의원의 얘기는 이미 <남영동 1985>에 잘 나와 있고.
 



<남영동 1985>에 나왔던 다양한 고문 방법들

<남영동 1985>에 참 다양한 고문이 나온다. 심문하기 전에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눈을 가린 채 이동하고 눈가리개를 벗긴 직후에는 플래쉬등으로 눈을 비춰서 눈을 못 뜨게 만든다.(남영동 대공분실의 조명이나 벽 색도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른 것들이라고) 그 이후에는 온몸을 다 벗긴다. 비록 남자들 앞이지만 수치심을 느낄 수 밖에 없을 듯. 근데 잡혀온 사람이 여자라면? 음. 패스~ 물 고문 또한 다양한 형태가 여러 명이 거꾸로 들어서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넣고 숨을 못 쉬게 만드는 전형적인 물 고문이 있다면 몸을 묶은 후, 얼굴에 수건을 덮어 코에 물을 부어 숨을 못 쉬게 만드는 고문도 있고 같은 방법이지만 물에다 고춧가루를 타는 고문도 있다. 말 안 들으면 구타는 기본이나 얼굴만큼은 때리지 않는다. 나중에 법정에 설 때 얼굴에 흠이 나 있거나 하면 안 된다해서.

자필 진술서를 작성하는 동안에는 그것이 며칠이 걸리든 다 쓸 때까지 잠을 못 잔다. 그래서 심문하는 경찰관들이 교대 근무를 하면서 지키는 거고. 그리고 전기 고문. 발가벗긴 몸을 고정시킨 후에 눈은 가린다. 발가락 사이에 전기가 흐르는 봉 같은 것을 끼워서 붕대로 단단히 고정시킨 후에 이 봉에 전선을 연결하여 전류가 흐르게 한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하는데 <남영동 1985>에 보면 회음부가 터지는지 잘 보라고 했던 게 상상력을 자극하더라는. 그리고 <남영동 1985>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했던 고문 중에 유명했던 볼펜 고문. 박달나무 방망이로 허벅지를 몇 시간씩 찧어 허벅지가 팽팽하게 부어오르게 만든 후에 부어오른 허벅지를 볼펜으로 내리찍는다. 팽팽하게 부어오른 허벅지인지라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데 볼펜으로 내리찍으면 송곳이 살을 뚫는 그런 느낌이란다.


장례용품 중에 하나인 칠성판을 고문대로 응용

<남영동 1985>에 보면 고문대로 사용되었던 칠성판이 나온다. 근데 칠성판은 원래 장례용품 중에 하나였다는 거. 주검이 들어가는 관 바닥에 놓는 얇은 나무판인데 저승을 북두칠성이라 생각해서 7개의 구멍을 뚫어 칠성판이라고 불리웠는데, 이걸 이근안이 고문대로 사용했다는 거다. <남영동 1985>에 나오는 칠성판은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것이라고.

당대 최고의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은 이런 잔머리도 뛰어난 듯 싶다. 칠성판을 고문대로 활용함으로써 죽음이라는 걸 연상케 하여 공포심을 더욱 자극했던 듯. 마치 "이게 니 죽을 자리야"라고 말하는 듯한 효과. 참 못쓸 인간이다. 그런데 자신은 고문 안 했단다. 전기 고문도 건전지 두 개를 끼운 건데 겁먹어서 그랬다고 그러고. 음. 반성의 기미가 없다. 용서할 수가 없는 인간.


고 김근태 의원을 연기한 박원상, 내가 볼 땐 남우주연상감이다


<남영동 1985>의 주인공인 고 김근태 의원 역은 박원상이 맡았다. 정말 연기도 잘 했고, 자신의 몸을 다 바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 보면 알 듯. 아마 국내 영화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의 유력한 후보가 될 듯 싶다. 내가 볼 때는 남주우연상 줘도 아깝지 않을 듯. 정말 고생 많이 했을 듯 싶다. 아무리 연기라 하더라도 말이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이거 15세 관람가다. 근데 박원상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좀 이해가 안 가는 면이다. 이런 논리라면 여자의 음부가 적나라하게 노출이 되어도 15세 관람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남자의 성기가 나오는데 15세 관람가라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여자의 음부가 노출되면 성인 버전이 되고 남자의 성기가 노출되면 15세 관람간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남영동 1985>에서는 김종태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부러진 화살>의 멤버들


<남영동 1985>이 정지영 감독의 작품이라 그런지 정지영 감독의 전작인 <부러진 화살>(이건 보고서 당시에 쓸 말이 많아서 리뷰를 바로 올리지 못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T.T)의 멤버들이 많이 나온다. 이근안 역(극중에서는 이두한이라 나옴)의 이경영. 스크린 밖의 생활은 차지하고 스크린 속의 배우로서만 본다면 참 연기 잘 한다. 문성근도 마찬가지고. 문성근은 표독스러운 악역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 게다가 박원상까지. 정지영 감독의 다음 작품에도 이 멤버들은 뭉칠까? 기대해본다.


예고편



<남영동 1985> 영화가 끝나고 나면 실제 고문을 당했던 분들의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먹먹해진 가슴 더 먹먹해지게 만드는. 그래서 <남영동 1985>를 보고 나오면 발걸음이 무겁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지금 우린 정말 예전에 비해 너무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거.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물론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