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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이스트: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나의 3,273번째 영화. 예고편이 강렬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게 내 삶의 방식과 통하는 면도 있고. 나는 나에게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잊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게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의도와 다르게 행동을 할 수도 있기에 그런 거까지 잊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이해할 거는 이해하고 넘어간다. 살다보면 별의별일 다 생기니까. 그러나 계산된 행동, 의도하에 행한 행동,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장난치는 말이나 행동, 거짓말 등은 결코 잊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서 좋은 관계가 되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만 과거에 상대가 한 말이나 행동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지금 관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분명히 돌려준다. 자신은 당하지 않았으니까 잊어버리고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 거지. 미안하다고? 그럼 나도 그렇게 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할 테니 잊어버리고 친하게 지내자는 식이다. 그 사람과 현재 친하고 안 친하고, 그 사람이 싫고 좋고는 별개의 문제다. 나는 그런 게 고등학교 때부터 강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얘기를 하곤 한다. 잘 해주면 배로 잘 해주고, 못 해주면 배로 못 해준다. 꼭 돌려준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이렇게 계산적으로 나한테 뭘 해줬나 뭘 못 해줬나 따질 순 없지만 이게 꼭 잘못된 건 아니다. 예를 들면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뭔가를 받게 되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 뿐이다. 남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에도 난 마음으로 뭔가를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걸 상대가 느끼고 그런 경우에는 끈끈한 정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이렇듯 꼭 이런 생각이 나쁜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마음으로서 잘 해주면서 더욱더 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문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은 과거를 쉽게 잊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거라는 거라 생각한다. 그들이 떳떳해지려면 자기도 똑같은 상황에서 당해보고 나서 자신이 남들한테 했던 말대로 행해야 한다. 말과 행동이 똑같애야지.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편과 적이 뚜렷한 편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한다. 그러나 그건 내 성격에서 오는 부분 때문에 그런 것이거나, 오해를 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난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다. 다만 주관이 매우 강할 뿐. 알 만한 지인들은 다 안다. 마음 약하다고. 그렇다. 그러나 인간같지 않은 애들한테는 심할 정도로 대한다. 그 때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돌려준다는 생각이 강할 뿐.

이렇게 살아왔던 나였기에 <이스트>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 '오~ 이거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방식이 잘못됐다 얘기할 순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그들이 깨달을 수가 있을까? 기득권인데. 없다고 본다. 이건 사람이 힘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스트>는 다분히 현실 사회에 대한 고발과 비판적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스트>의 결말이 그리 좋지는 않다.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이미 세상은 가진 자들 중심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고, 이미 형성된 체제를 무시하고 행동할 순 없다 보니 그렇다. 인간이 인간답게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지켜야할 법이라는 게 이미 인간을 구속하고 가진 자들에게는 약하게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원칙 운운하며 휘둘려지는 게 현실이니까. 영화의 재미는 개인 평점 7점 정도 수준이지만 이런 내용의 영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나는 이렇게 테러 방식으로 복수를 하는 거 보다는 그들의 방식 그들의 논리대로 그들보다 더 많이 가져서 그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게 진정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아닐까 싶다.


예고편



<이스트> 예고편은 2차 보다는 1차가 <이스트>가 어떤 영화인지 잘 알려주는 거 같다. 이건 2차 예고편이고 다음은 1차 예고편이다.



<이스트>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1차 예고편은 <이스트> 영화 시작이다. 영화 시작하면 이 장면부터 나온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