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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조 보고서 ① 보고서를 작성한 에조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낭인 중 한 사람이다? 아니다

風林火山 2013.10.25 10:09
긴 글을 적다가 시간이 없어서 시리즈로 적는다. 내가 이 글을 시리즈로 적을 정도로 길게 적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해석은 엄밀히 구분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역사 소설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다. 이는 내 블로그에도 비슷한 맥락의 글을 많이 적었었다. 고로, 역사 소설이라 하여 등장 인물이 실제 인물이라 하여 그게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고 궁금하면 찾아보면서(세상 좋아졌잖아?) 확인하는 별도의 과정을 거쳐야할 필요가 있는 거고.



에조 보고서에 대해서 참조할 두 가지 글


나는 역사학자도 서지학자(서지학자란 고서나 고문을 읽고 해석하는 학자를 말한다)도 아니다. 단지 에조 보고서를 알게 되고 난 다음부터 의문이 들었고 궁금해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걸 정리하는 것일 뿐. 나는 서지학자 김종욱씨가 밝혀낸 것을 정리하는 거 밖에 안 된다. 내가 왜 소설가를 지식인 취급하지 않는지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소설가는 그냥 스토리 텔러지 즉 얘기를 재밌게 풀어나가는 사람이지 지식인이 아니다. 재미나게 얘기하는 친구가 똑똑하다거나 지식이 풍부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쓰노다 후사코의 <민비암살>(1988)

오마이 뉴스 인터뷰 기사에 보면 소설가 김진명씨는 에조 보고서를 작성한 에조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낭인 중의 한 명으로 얘기를 하고 있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적은 보고서라 신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그가 그렇게 생각한 근거를 보면 인터뷰 기사 다음에 잘 나와 있다.

실제로 1988년 <민비암살(閔妃暗殺)>을 발간한 일본의 저명한 전기작가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 여사도 자신의 저서에서 에조를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에조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발언이다.


그럼 쓰노다 후사코가 쓴 <민비암살>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까?

더욱이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이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전 법제국 참사관이며 당시 조선 정부의 내부 고문관이었던 이시즈카 에조는 법제국장관 스에마쓰 가네즈미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서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라고 서두에 쓴 후에 그 행위를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 쓰노다 후사코 <민비암살> 중


이에 대해 서지학자 김종욱씨가 <민비암살>이란 책에서 에조 보고서의 글을 한 두 줄 정도로 간략하게 인용하고 출전만 들어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고, 실질적으로 후사코 여사도 <민비암살>을 적을 때, 야마베 겐타로의 <일한합병소사>에 기록된 내용을 옮긴 것에 불과하지 실제로 에조 보고서를 직접 확인하고서 인용한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야마베 겐타로가 <일한합병소사>를 낸 1966년에 또 다른 책 하나를 낸다. <일본의 한국 병합>이란 책이다.


야마베 겐타로의 <일본의 한국 병합>(1966)

더욱이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이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전 법제국(法制局) 참사관이며 당시 조선 정부의 내부 고문관이었던 이시즈카 에조는 법제국 장관 스에마쓰 가네즈미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서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라고 서두에 쓴 후에 그 행위를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 야마베 겐타로 <일본의 한국 병합> 중


이는 서지학자 김종욱씨가 월간중앙에 쓴 기사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분명 위에서 서지학자 김종욱씨는 쓰노다 후사코씨는 <일한합병소사>에 기록된 내용을 옮긴 것이라고 했는데, 같은 해에 낸 <일본의 한국 병합>에도 똑같은 문구가 있다. <일한합병소사>에도 이 문구가 있고, <일본의 한국 병합>에도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민비암살>이란 책은 야마베 겐타로의 책에 있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원문을 볼 필요가 있었던 거다


이게 원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있긴 하지만, 그건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 원문을 원문 그대로 해석한 걸 보자.(사실 이 해석에 대해서 인터넷 상에 떠도는 글들을 보면 잘못된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 해석은 내가 한 게 아니라 서지학자 김종욱씨가 한 것이다. 원문의 도입부만 인용한다.

한국정부 고문이던 이시즈카 에이조(石塚英藏)가 스에마쓰(末松) 법제국장 앞으로 보낸 사건 진상을 보고한 서간
 

안녕하십니까? 이 땅(當地)에서 어제 아침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는 벌써 대략 아시겠지요? 왕비 배제(排除) 건은 시기를 보고 결행하자는 것은 모두 품고 있었던 것이지만 만일 잘못하면 바로 외국의 동정을 일으키고 영원히 제국(諸國)에 점(占)할 일본의 지보(地步)를 망실함이 필연한 것이므로 깊이 경거망동하지 말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저는 먼저부터 모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만, 오히려 어렴풋이 그 계획을 조선인에게 전해 들어 조금씩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국외자로서 그 모의에 참여해 심지어 낭인들이 병대(兵隊)의 선봉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경솔천만(輕率千万)으로 거의 장난(兒戱)에 속한다고 사려되는데 다행히 그 가장 꺼림칙한 사항은 외국인은 물론 조선인에게도 서로 알려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현 공사에 대해서는 조금 예의가 없는 느낌이나 일단 사실의 대요(大要)를 보고드리는 것이 직무상의 책임일까 생각해 아래와 같이 간단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이 원문을 보면서 야마베 겐타로의 글을 보자. 두 가지를 알 수가 있다.

① 에조(원문 해석에서는 에이조라 되어 있다) 자신은 관여하지 않다고 적혀 있다.
② 서두에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라는 표현은 없다.


그렇다면 야마베 겐타로는 왜 그렇게 쓴 것일까? 무슨 근거로? 또한 소설가 김진명씨는 원문을 그렇게 찾아 헤맸다는데 찾고 나서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았던 것일까? 읽어봤는데도 야마베 겐타로의 글을 믿은 이유는 뭘까? 근거가 부족한데 단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실제로는 에조가 가담했는데 처벌 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적을 가능성도 있다. 그걸 아예 배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에조가 가담했다는 다른 근거를 대야지. 왜 원문과 야마베 겐타로의 글이 다르잖아. 그런데 상식적으로 원문을 보면 야마베 겐타로의 글에 신뢰가 가냐고. 그렇다고 해서 야마베 겐타로의 다른 모든 글이 신뢰가 안 간다는 게 아니라 이 부분만큼은 원문을 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서지학자 김종옥씨의 말을 빌리면,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련된 문헌들이 에조 보고서만 있는 건 아니란다.

어떤 문헌에는 시해사건에 가담한 인원들이 정확히 48명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된 문헌도 있는데 그 어떤 문헌에서도 에조가 시해사건에 가담한 낭인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걸 발견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낭인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냐는 거다. 별다른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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