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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들

실종된 아들 청량리역에서 찾다

風林火山 2013.11.01 07:30
10월 28일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었다는 포스팅을 했다. 하루에 한 번씩 전화가 오긴 하지만 그 날 포스팅을 한 이유는 여느 날과는 다른 멘트를 들었기 때문. 기분 좋게 포스팅을 했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6시 넘어서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진강이가 안 들어왔다는 거다. 그러려니 했다. 동네에서 놀고 있겠지 했다. 가끔씩 그러니까. 그런데 7시 좀 넘어서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좀 다르게 봐야할 거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내막을 들어보니 이러하다.

10월 28일 진강이는 선생님들께 "식사 잘 챙겨드시고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했단다.
10월 28일 진강이는 친구들에게 "서울 탐방 가니까 1년 뒤에 보자."라고 했단다.
10월 28일 진강이는 나에게 "지금까지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10월 28일 진강이는 할머니에게 "여행 가는데 가끔씩 들릴께요."라고 했단다.


난 아들이 그런 얘기하길래 기특해서 포스팅을 했던 거였다. 모바일로. 나는 근데 진강이 할머니가 시켜서(요즈음 내가 바쁘고 피곤하다 보니 힘내라는 의미에서 시킨 줄 알았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진강이 스스로 그랬던 거였다. 근데 그 짤막한 포스팅 마지막에 그랬듯이 떠나기 직전에 하는 말 같다는 언급이 있다. 근데 사실이었던 거다. 허걱~ 집으로 가는 도중에 생각을 해봤다. 요즈음 워낙 험한 세상이잖아.


누군가의 꾐에 빠져서 나갔다?

만약 누군가가 있다고 한다면 진강이가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친구들한테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겠지. 방과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할머니한테 그렇게 얘기하고 나한테 그렇게 전화로 얘기했다는 걸 보면 분명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혼자서 그렇게 했다는 얘긴데. 확인해보면 옷도 얇게 입고 갔고, 돈도 한 푼 없이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싶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PC를 켜서 로그를 확인해봤다.

분명 이 녀석이 전날 밤이나 당일 아침에 인터넷 하다가 어디 가보자는 생각으로 간 거다 뭐 그런 생각에 말이다. 문제는 뭘로 검색을 했는지 알 수가 있나. 결국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경찰에 실종 신고 하고 말이다. 보통 우리집은 저녁을 7시 30분~8시 사이에 먹는다. 그런데 8시가 넘자 조금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녀석 밥 먹을 시간 지났으니 배고플건데. 진강이 할머니가 담임 선생님께 연락하고, 담임 선생님은 같은 반 친구 엄마들한테 전화를 했다.

그렇게 해서 확인한 것들이 위의 내용들이었고.


진강이를 찾기 위해 도와준 학부모들

친구 엄마들 몇몇이서 팀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진강이 찾아나서기 시작. 반장 엄마가 주도했다고 한다. 나중에 고맙다는 사례라도 해야될 듯 싶다. 9시 넘어가니까 조금 걱정되기 시작한다. 추울텐데. 진강이 할아버지 말로는 겉옷도 없이 나갔다는 거다. 음. 배고프고 춥고 그러면 진강이는 어떻게 할까 싶었다. 워낙 낯가림이 없는 녀석이니 아무한테나 말을 걸어서 나한테 전화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전화가 와야 말이지.

진강이 찾아 돌아다니던 반장 엄마인가와 마주쳐서 얘기하고 있는 때에 모르는 전화 번호가 울린다. 받았다. 진강이 목소리 비스무리한 게 배경음으로 들린다. 동대문경찰서 바로 앞에 있는 파출소에서 연락이 온 거였다. 진강이 보호하고 있다고. 바로 간다고 했다. 집에서 40km가 넘는 곳. 청량리역에서 찾았다는 거다. 헐~ 도대체 거기가 어디라고. 일단 애를 보는 게 우선이다 싶어 다른 소리 안 하고 그냥 갔다.

가서 보니 경찰복 뒤집어 쓰고 있는 진강이. 윗옷은 새로 산 Guess 티에 아래쪽은 츄리닝을 입었네. 나를 보자 눈치를 본다. 음. 지가 잘못한 걸 안다는 게지. 돌아오는 차에서도 항상 지가 앉던 앞자리 보조석이 아니라 뒷자석에 앉는다. 아무 소리 안 했다. 그냥 나갈 거 같으면 얘기를 해주고 나가라고만 했지. 아무래도 핸드폰 장만해줘야겠다. 해준다 해준다 하면서도 신경을 안 쓰다 보니. ㅠ.ㅠ 이제는 빨리 해줘야겠다. 애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해!


다음 날도 또...

진강이한테 내막을 들어보니

4시에 할머니 출근하자 4시 5분에 바로 집 나왔단다.
신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단다.(돈 없이 탔는데 그냥 태워주더란다.)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옷 좀 둘러봤단다.
그리고 청량리역가는 버스를 탔단다. 260번인가? (이 또한 돈 없이 탔단다.)
거기서 인천가는 행 열차타려고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물어봤고,
지나가는 아저씨는 좀 이상하여 역무원한테 데려다줬고,
역무원은 파출소에 전화해서 파출소에서 데려간 거였다.


가족들끼리 이리 저리 얘기가 오고 갔고 그건 여기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확실한 거는 진강이는 그냥 장난스레 나간 게 아니라 그 날 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나갔다는 거다. 내가 별 말을 안 해서 그런지 그 다음날도 또 그랬다. 이번에는 어머니랑 나한테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고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한테만 그랬다는 거. 이상하게 생각한 담임 선생님이 안 되겠다 싶어서 교감, 교장 선생님께 보여줬는데 진강이는 교감, 교장 선생님한테도 똑같이 그랬다는 거다.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또 그런 말을 했다고 하니 어머니 진강이 하교하는 길목에 서 계셨다. 안 온다. 혹시나 싶어서 어머니가 지하철역을 갔는데 지하철 한 대가 떠나가더란다. 큰일났다 싶었는데 마지막 역인지라 다음 열차가 옆 라인에서 대기하고 있어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마지막 칸에 앉아 있더란다. 그 때 발견하지 못했다면 또 한 번 난리가 날 뻔했지. 그럴 수 있지 하고 좋게 얘기하고 말았는데 심각해졌다.


진강이는 왜 나갔을까?

그래도 동생은 나와 무척 달라서 동생이 진강이 속마음을 알기 위해서 이리 저리 얘기해보면서 몇몇 실마리를 많이 얻긴 했지만 그 말을 다 믿을 순 없다. 진강이가 눈치가 빠르고, 말을 잘 지어내는 경우도 있어서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거는 진강이한테 좀 더 신경 써줘야겠다는 생각. 요즈음 많이 바빠서 신경을 덜 썼기에.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녀석이긴 해도 이번을 통해 어리긴 하지만 진강이가 참 혼자서 생각을 많이 하는 녀석이더라고. 아무래도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겠지만.

처음에 나갔을 때는 '10살 짜리가 참', '내가 10살 때는 저랬나?' 뭐 그런 생각도 하면서 '이 녀석은 그래도 크게 될 놈이네' 그런 생각도 했는데 두 번 그러니까 생각이 확 바뀌더라고. 신경 써야겠다. ㅠ.ㅠ 여튼 진강이의 최초의 가출은 아니구나. 더 어렸을 때 팬티 바람으로 지하철역 갔던 게 최초였지? 그 때 경찰차 타고 왔었는데. ㅋㅋ 여튼 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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