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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지하철에서 산 손수건


요즈음에는 자가운전을 주로 하다 보니 지하철으 그리 자주 타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하면 나는 일단 버스를 이용하지 지하철을 이용하진 않거든. 왜냐면 버스 자리가 편해. 자기 좋아~ ^^; 그러나 겨울철에는 운전하고 다니는 게 귀찮아서(눈 내려봐. 차 막히면 답 안 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버스에 사람이 많다 보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서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그게 싫어서 겨울철에는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데(지하철 기다리면서도 따뜻하잖아. 버스 정류장은 춥다고) 지하철을 타면 항상 뭘 파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구걸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나는 보통 책 읽다가도 유심히 관찰하곤 한다. 저 사람이 정말 구걸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서 쪽팔림을 무릅쓰고 저러는 것인가? 뭐 그런 생각에 말이다. 이번에도 지하철을 탔는데 누가 손수건을 하나 준다. 초록색의 다소 촌티나는 손수건. 보니까 청각장애인인 듯 하더라고. 그네들이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금 3,000원 썼다. 보통 이런 경우에 쓰는 돈이 1,000원 정도 남짓인데 말이다. 그 청각장애인이 나쁜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도와주고 싶었다.

그건 마치 이런 것과 같다. 봉사단체에 기부를 하면 그네들이 이 기부금으로 실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돈보다 그네들의 단체 운영비가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기부를 안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물론 어떤 단체는 이를 활용하여 자기 뱃속 채우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데는 오래 못 가~ 물론 꼭 그런 건 아니지만. ^^; 대학교 재단 보면 그렇잖아? 돈이 되니까 학교 만들어서 교육에 신경 쓰기 보다는 땅투기하고 있잖아. 뭐 그런 학교들이 다 오래 못 가나?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학들 다 그렇지 않나? 제일 심한 게 이화여대고?

이런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못 믿을 세상이 되는 거다. 쟤네들도 이러니까 나도 이래야지. 마치 그게 성공 모델이 되는 양 말이다. 사람이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생기면 그 어떤 누구라도 돈을 탐할 수 밖에 없다. 그건 생존의 문제니까.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삶의 질을 높이기 마련이겠지만 자신의 삶의 지를 높이기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는 건 아니지. 문제는 그 잣대가 저마다 다르다는 거거든. 근데 항상 내가 얘기하지만 다른 게 중요한 게 아니라(그래서 나는 다양성 운운하는 거 정말 싫어한다) 다르니까 더 나은 게 무엇인지가 중요한 거거든. 다르니까 가릴 수 있는 거고.

근데 재밌는 게 지하철에서 보통 이런 경우가 생기면 누가 돈을 내면 옆에서 그거 보고 따라서 돈 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3,000원이라서 그런지 내가 탄 그 열차칸에는 나 밖에 내는 사람 없더라고. 2,000원으로 했으면 몇 명 더 생겼을라나? 1,000원으로 했으면 더 나았을라나?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고. ^^; 그래도 내가 돈 내니까 고맙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눈빛 맞추고 인사 하더라고. 그거 보니까 이 사람은 거짓된 구걸을 하는 그런 사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보통 구걸은 좀 그렇고 해서 뭔가를 주면서(보통 껌이나 초콜릿) 사달라고 하는 경우에는 난 어지간하면 다 사주는 편이다.

이유는 그래도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 비록 이게 이 정도의 가치는 아니더라도 좀 도와달라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이라 생각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