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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2015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가려진 사랑 이야기

風林火山 2015.03.31 12:30


2015년 아카데미 5개 부문(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아쉽게도 남우주연상만 수상하게 된 작품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다. 그래도 위안을 삼는다면, 영국 아카데미와 미국 아카데미 모두 남우주연상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에디 레드메인에게 수여했다는 점. 그만큼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가 탁월했음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싶다. 물론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 외에는 볼 게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 특성상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보시길 권함.



싱크로율 Synchronization


연기력이라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필자는 배우가 본인 특유의 언어, 몸짓으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의 언어, 몸짓으로 표현하는 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메소드 연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 배우들이 다양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엔 특정 배우가 여러 영화의 주연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배우가 캐릭터의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배우의 옷을 입는 식이 많다. 일례로 어떤 배우의 화내는 표정은 그 배우가 주연한 다른 영화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다. 사람마다 화내는 표정이 다르듯이 캐릭터마다 화내는 표정도 다를 것인데, 그 배우의 화내는 표정이 모든 캐릭터에 나타나는 거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하기에 '진짜 배우'는 캐릭터에 동화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가 좋아하는 영국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예로 들면, 그는 <나의 왼발>에서 뇌성마비 주인공을 연기하기 위해 촬영 이외의 시간에도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라스트 모히칸>의 주인공이다.) 그만큼 캐릭터에 동화되기 위해 평소에도 노력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에디 레드메인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얼마나 스티븐 호킹에 동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연기력에는 스티븐 호킹과 에디 레드메인의 높은 싱크로율도 한몫했다고 본다.



필자 또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보면서 놀랐던 게 진짜 스티븐 호킹을 보는 듯했다는 점이다. 에디 레드메인이 스티븐 호킹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서 그의 행동과 말투 등을 따라하려고 많이 노력한 덕분이지만, 외모마저 비슷하니 그 연기가 더 돋보였다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지금까지 많은 배우들이 실존 인물의 삶을 연기했고, 실존 인물과 비슷한 외모로 영화 개봉 후 싱크로율이 언급되곤 했지만, 이 정도의 싱크로율은 그리 흔하지 않다. 필자의 기억으로 이와 비슷한 싱크로율이라면 떠오르는 영화가 1982년작 <간디>다. <간디>에서 간디 역을 맡은 벤 킹슬리가 그렇다.


필자가 기억하는 에디 레드메인이란 배우는 어디서 본 듯한 배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다.) 그래서 에디 레드메인이 스티븐 호킹과 닮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생각하기 힘든 건, 스티븐 호킹을 먼저 떠올리고 그럼 스티븐 호킹에 가장 흡사한 배우가 누굴까를 생각하면 에디 레드메인이 떠오를까 싶어서다. 스티븐 호킹 박사 자신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 에디 레드메인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할 정도였으니 에디 레드메인이 아닌 다른 배우가 이 정도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참고로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스티븐 호킹 역을 맡았던 영화가 있다. 2004년도에 제작된 영국 영화 <호킹>. 우리에게 이 영화가 그리 알려지지 않은 건, 영국에서 제작된 극장용 영화가 아닌 TV용 영화이고, 그 당시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그리 주목할 만하거나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앨런 튜링을 열연했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초기 작품인 <호킹>에서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연기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의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를 비교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듯하다.



영화 vs 실화 Movie vs Real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실화에 기반하여 만든 영화다. 물론 스티코 매거진에 '영화 vs 실화'란 코너가 별도로 있긴 하지만, 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영화 vs 실화' 코너가 아닌 아카데미 수상작으로 언급을 했을까? '영화 vs 실화' 코너를 만든 목적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우려 때문인데,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대부분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100%는 아니다. 예를 들면, 그가 넘어지고 난 다음에 의사의 진단을 받았던 건 아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은 전체적인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굳이 다룰 필요성을 못 느껴서다. 그도 그럴 것이 스티븐 호킹 박사가 지금도 살아있는 실존 인물이고, 존경받는 석학이기에 자칫 명예에 누가 되도록 각색할 순 없었으리라 본다. 실제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본 스티븐 호킹 박사도 영화는 본인의 결혼에 대해서 매우 정직하게 그리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실제를 충실하게 반영했다고 하겠다. 



사랑 Love


원제는 The Theory of Everything 이다. 만물의 이론. 이건 스티븐 호킹 박사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방정식을 만들어내려고 끊임없이 연구하던 주제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한글 제목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다. 왜 이렇게 바꾼 것일까? 그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스티븐 호킹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긴 하지만 그의 업적에 포커싱을 두기보다는 그의 삶, 그 중에서도 사랑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이미테이션 게임>이 앨런 튜링의 업적보다는 비운의 삶에 포커싱을 둔 것과 매한가지다. 


① 결혼



제인은 스티븐 호킹이 시한부 선고 받은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65년 결혼한다. 이 결혼 자체가 영화에 나올 법한 얘기다. 과연 제인은 스티븐 호킹과 결혼한 이유가 뭘까? 더군다나 상대는 다리를 절뚝거리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아무리 내면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이라는 게 외면을 안 볼 순 없는데,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결혼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있는 그대로의 스티븐 호킹이란 사람을 사랑해서다. 그런 사랑 덕분인지 2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스티븐 호킹은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2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이 자신으로 하여금 살아야할 이유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사랑의 힘은 이토록 위대하다.


② 이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이 미국으로 자신의 간호사와 함께 가겠다고 한 게 1990년의 일이다. 그렇게 사랑했던 둘은 1990년 헤어지지만, 공식적으로 이혼한 건 1995년의 일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보면 스티븐 호킹이 자신을 잘 보살펴주는 간호사를 사랑하게 되어 헤어지자고 한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는데, 물론 그런 면이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그가 적은 자서전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에 따르면 성가대 지휘자인 조나단 존스(Jonathan Hellyer Jones)와 제인 호킹이 점점 가까워지는 데에 대한 좌절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이 그렇게 얘기했다고 해서 꼭 그렇게만은 볼 수가 없다. 스티븐 호킹은 1995년 이혼한 그 해에 자신의 간호사인 일레인 메이슨(Elaine Mason)과 재혼한 반면, 제인은 2년이 지난 1997년에야 조나단 존스와 재혼한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스티븐 호킹이 간호사와 결혼하고 싶어서 이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셈이다. 또한 스티븐 호킹은 제인 호킹을 위해 조나단 존스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기도 하고, 자녀들과 아내인 제인 호킹과 함께 캠핑을 가달라고 제안하기도 하니, 그가 바랬던 대로 되고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③ 사랑


필자는 영화를 보면서 스티븐 호킹보다 제인의 사랑에 대해 퍽이나 놀랐다. 스티븐 호킹과 재혼한 일레인 메이슨의 경우는 일레인 메이슨에게 문제가 있어 2006년 이혼했기에, 일레인 메이슨이 스티븐 호킹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는 이런 내용은 다루지 않고 있다.) 또한 스티븐 호킹의 사랑은 그 상황에 처한 누구라도 그럴 수 있을 법하지 않은가? 그리 대단하다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제인 호킹의 사랑은 다르다. 그녀가 보여준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말 순수하게 한 인간(스티븐 호킹)을 사랑하면 이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듯하다.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끔 한다.



1965년의 결혼 그 자체도 쉽지 않았을텐데, 2년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도 자녀 세 명을 낳고 자녀들의 양육에서부터 남편의 간호까지 제인 호킹은 26년 동안 헌신했다. 제인 호킹이 적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원제는 'Travelling to Infinity: My Life with Stephen')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친구들이 섹스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냐고 했을 때도 자신은 그 질문에 답변을 할 순 없었지만, 그(스티븐 호킹)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런 얘기는 그의 병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만큼 금기시되는 주제였다고. 이렇듯 그녀는 스티븐 호킹을 진심으로 아꼈던 여인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주인공을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과학적 업적이 뛰어나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이 아니라 그의 옆자리를 묵묵히 지켜주었던 제인 호킹을 꼽고 싶다. 스티븐 호킹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제인 호킹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비록 훗날 이혼하기는 하지만 제인 호킹이 보여주었던 사랑은 아무나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 아니기에 그녀의 사랑은 위대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원제인 'The Theory of Everything'보다 한글 제목인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훨씬 영화에 걸맞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예고편 Trailer



필자의 3,462번째 영화로 개인 평점은 8점.


- 이 글은 스티코 매거진(http://stiblish.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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