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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의 추억을 찾아서

風林火山 2018.04.08 12:30

#0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 부산 사하구 괴정1동. 오랜만에 가봤다. 이번에 부산에 가서 이리 저리 둘러볼 수 있었던 건, 여친이 차를 끌고 왔기 때문. 물론 내 차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부산까지 차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 장시간 운전해서 내려가는 것도 힘들긴 하지만 올라올 때가 더 힘들어. 지루하고. 그래서 예전에는 KTX를 이용했지만 요즈음은 고양 백석 터미널에서 버스를 주로 이용하지.

#1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서 이사했던 집이다. 고등학교를 거쳐 재수해서 대학에 가기 전까지 내가 살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가구공방으로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차에서 내려 이리 저리 둘러보고 옛 추억거리도 되짚었지만 달라진 외형에 조금은 낯설었던. 게다가 많이 낡았어.

#2

이건 초등학교 5학년 바로 위에 찍은 사진의 집으로 이사가기 전 셋방 살이하던 집 근처에 있는 전봇대다. 협진태양 맨션이라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빙 둘러서 정문으로 가야 하는데 그게 멀어서 보통은 저 전봇대에 등을 대고 벽에다가 두 발을 대고 올라가서 넘어갔었더랬지. 아쉽게도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살았던 그 집은 지금 없더라. 옛 추억을 되짚어 가다 보니 없어진 데가 많더라고. 그래. 벌써 20~30년 전이니. 그럴 만도...

#3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애용했던 목욕탕 천수탕. 아직 있네. 사실 목욕탕은 어지간해서 안 바뀌지. 일단 만드는 데에 많은 돈이 들기 때문. 아주 작은 동네 목욕탕이었는데, 초등학교 때는 여기서 선생님도 만나기도 하고 그랬던. 가격이 얼마일까 싶어서 살펴보니 6,000원 하더라. 비싼 편이지. 보통 찜질방 이용 안 하고 목욕만 하면 서울도 7,000원 정도인데. 아닌가? 내가 다니는 일산의 센토 사우나는 10,000원이다. 그래도 여기를 이용하는 이유는 깨끗하고 채광이 좋아서.

#4

여긴 괴정 1동이 아닌 괴정 4동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주로 이용했던 미용실. 성모미용실. 후덕하고 안경 낀 아주머니가 주인이셨는데, 단골이었지. 여기서도 일화가 몇 개 있는데. 하나만 소개하자면, 고등학교 2학년 때 머리 깎으러 갔다가 머리 깎고 있는 어떤 녀석이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길래 저게 돌았나 싶어서 나도 엄청 째려봤지. 원래 그래 그 때는. 눈 돌리면 지는 거거든. 나중에 나보고 따라나오라고 자신있게 얘기하대. 따라나갔지. 인근 골목으로. 나더러 하는 말. "학교 어디고?" "동아고다." "죠스 아나?" 음... 순간 급당황. 우리학교 3학년 짱이었거든. 나는 그 사람이 죠스인 줄 몰랐지. 무릎 꿇고 빌었지. 몰라뵈서 죄송하다고. 헐. ㅋㅋ

여기 인근에 내가 중학교 때 다니던 독서실이 있는데, 이 독서실 참 희한했던 게 마치 학교와 같이 50분 공부 10분 휴식. 공부 시간에는 움직이거나 돌아다닐 수가 없다. 게다가 12시 30분인가 까지 밖에 안 해. 중학교 때만 이용했던 독서실이었는데 없어졌더라. 어린이집? 그런 걸로 바뀐 듯. 

#5
간만에 차 끌고 옛 추억을 되짚으며 이리 저리 들쑤시고 다녔네. 초등학교도 가보고, 내가 떠난 집 팔고 이사한 집도 가보고. 중, 고등학교 때 자주 놀러 다니던 동아대 입구도 가보고. 그 때는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였는데 얼마 걸리지 않아 당황. 너무 가깝더라고. 

#6
게다가 요양원에 있는 셋째 고모도 찾아갔다. 원래 부산 내려오면 들리고 싶었는데 차가 없으면 왔다 갔다 하기 불편해서 못 갔거든. 지난 번에 방문했을 때가 내가 마지막으로 차를 끌고 부산 갔을 때였는데, 이번에는 차도 있겠다 방문했지. 데리고 나와서 먹이고 ,과일도 사다 주고, 옷도 사입혔다. 면회 신청하고 요양원에 들어가는데 3층 창가에서 창살을 붙잡고 바깥을 보고 있는 고모가 보이더라. 셋째 고모 어릴 때 약 잘못 먹어서 정신이 어린애거든. 

이리 저리 얘기 들어보면 다른 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같은데 많이 답답한 듯. 하루 종일 거기에 있어야 하니까. 그게 가장 답답한 듯 싶다. 헤어질 때 언제 다시 볼까 아쉬워서 글썽이는 모습 보니 참 안타깝더라.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할머니 돌아가시면 셋째 고모 어떻게 하냐고 그럴 때 하도 답답해서 그럼 내가 데리고 살께 했었던 기억도 난다. 다른 사람들 말은 잘 안 들어도 내 말은 참 잘 들었는데. 자주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 그래도 얼굴에 살도 붙고 해서 보기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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