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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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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의식 수준: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에서 제시된 크리스트교 - 예수의 가르침: 1,000 - 2C 가르침에 대한 실행 수준: 930 - 6C: 540 - 11C 십자군 시대: 498 원래 예수의 가르침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수치화해서 나눈 BandWidth의 최고치인 1,000인데, 그 가르침을 듣고 실행하면서 계속 의식 수준이 떨어진다.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 498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그래도 498 정도면 높은 수준인디~ - 아람어로 된 신약의 람사 번역판: 750 - 그리스어로 번역된 킹 제임스 판: 500 예수의 가르침을 어떻게 기록했는지에 대해서도 의식 수준이 달라진다. 예수의 가르침은 하나인데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이 반영된 듯. - 카톨릭, 성공회, 크리스천 사이언스, 퀘이커교: 500대 - 14세..
대화로 풀어나가는 불교 사상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포토 감독 배용균 개봉일 1989,한국 별점 전반적인 리뷰 2007년 9월 2일 본 나의 2,673번째 영화. 영화 매니아라면 봐야할 영화 100편 45번째 영화. 사실 영화 매니아라면 봐야할 영화 속에 속해 있는 영화들은 좀 어렵다. 그 중에는 대중성을 갖고 있는 영화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평론가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는 듯. 그 100편 중에 2편의 한국 영화 중에 하나. 이 영화 정말 특이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감독이 바로 김기덕 감독이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 영화에 비하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매우 대중성을 갖고 있는 영화다. 그 정도로 이 영화는 독특하다 못해 대중성과는 완..
분신 자살한(소신공양한) 승려 Thich Quang Duc (틱 쿠앙 둑 or 틱쾅둑) 영화 에서 영화 에서 리브 울만이 병원에서 보는 TV 장면이 바로 이 승려의 분신 자살하는 화면이었다. 우선 영화에서 나온 그 장면들을 캡쳐한 사진들이다. 분신하는 모습을 보고 길을 가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이게 실제 방송된 것을 영화에서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닌 것 같다. 실제 그 당시의 사진들(아래에 있음)과 비교를 해보면 말이다. 어쨌든 이 일은 1963년에 일어났고 영화는 1966년작이다. 역사적 사실들 배경? 1954년 제네바 평화협상에 의해 17도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56년 북쪽은 공산주의자가 남쪽은 고 딘 디엠이 정권을 맡게 된다. 근데 이 고 딘 디엠은 매우 부패한 놈이라 각 요직에 자기 형제들을 배치하여 독재정치를 하게 된다. 분신 왜? 1963년 당시 월남(남베트남)..
종교에 대한 단재 신채호 선생과 마하트마 간디의 말 모동호회에 있는 것을 가져왔습니다. 종교와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최근에 종교에 대해서 적는 글이 있었는데 그건 를 보고 드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최근 본 영화 의 주인공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영화 속 대사는 아니구요. 영화에서도 이런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크리스쳔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이 글은 내가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권을 읽고 정리하면서 인용과 생각을 섞어서 적은 글이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을 읽고 불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에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관점의 정리글들만 따로 모아둔 것이다. 이 글은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리뷰에서도 볼 수 있다. 불교는 무신론이다! 유신론의 전제는 반드시 이 세계에 대하여 이 세계 밖에 있는 창조주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도 인간 밖의 구세주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으며,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과 우주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자로서의 신의 개념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불교는 분명한 무신론이다. 그럼 불상은 무엇인가?..
空은 無가 아니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에서는 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비존재는 없지만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공이다." 공과 무가 다른 것은 무는 비존재를 뜻하지만 공은 비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실체가 없을 뿐이다.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이다. 사실 공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다른 것들을 이해해야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부분에서는 지식이 짧은 존재다. 다만 지금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정리하는 수준에서만 설명한다. 불교에서는 남에게 은덕을 베푸는 일을 보시라고 하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보시를 하고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은 無가 아닌 空이다. 無는 없는 것을 뜻하지만 空은 빈 것이라는 뜻한다. 불교에서는 항상 인과응보가 따르게 마련인지라 보시를 하..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전 3권)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3 김용옥(도올) 지음/통나무 아래 내용은 2003년 10월 27일 읽고 정리하면서 쓴 글이다. 인용과 내 개인적인 생각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책을 보기를 바란다. 1권과 2권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유는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대화 내용이 없는 기행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도의 문화나 인도의 역사 그리고 불교 유적지에 대한 탐방등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는 것을 읽은 이유는 도올이 적은 글들 하나 속에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기대 심리 때문이다. 그 기대는 3권에서 충족이 되었다. 앎에 대한 기대 말이다. 또한 앎으로서 얻게 되는 기쁨에 대한 기대 말이다. 3권에서는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대화 내용이 대부분이다. 도올 선생..
부처의 <법구경>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된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다.마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는 듯하다. 예전에 사랑이라는 것을 두고 혼자서 글을 적은 적이 있었는데(참 취미도 요상하지. ^^) 사랑은 집착이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마음이 동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감정적인 부분이 매우 지배적이라는 얘기다. 이성으로 Control 하기 힘든 범위의 것이라는 얘기다. 누구든지 사랑을 해보면 그 사람만 보고 싶고, 그 사람만 만나고 싶고, 그 사람 곁에만 있고 싶어하는 것과 같이 이해를 넘어 집착으로 바뀌게 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