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아들과 함께 방문한 경복궁은 왜 그리도 넓던지.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반나절도 안 되어 구경을 다 했건만 이번에 방문해서는 시간이 모자라서 다 구경하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요즈음에는 빨리 많이 구경하는 데에 포커싱을 두기 보다는 천천히 자세히 보는 데에 포커싱을 두다 보니 나름대로 그 맛이 있더라는... 여행도 그렇게 해야할 듯 싶기도 하고 말이다. ^^;
조선 왕조 첫번째 궁궐, 경복궁
경복궁은 139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395년 9월에 완공된 조선 왕조 첫번째 궁궐이다. 조선이 1392년 건국했고 1393년 한양으로 천도했으니 그 이듬해에 왕이 기거할 궁궐을 지어 1년 만에 완공한 셈이다. 경복(景福)의 뜻은 경치 경(景)에 복 복(福)을 써서 '길이 길이 복을 누리라'는 뜻으로 조선 왕조 초기에 설계자 역할을 했던 정도전에 의해 지어졌다.(수도를 한양으로 결정한 것도 정도전의 의견이다.)
한양의 중심을 뒤로는 백악산(현재의 북악산)이 병풍처럼 있었고, 정문이자 남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육조거리(현재의 세종로)가 펼쳐져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남김없이 다 타 버림)되었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이 중건했다. 경복궁 안내 책자에는 흥선대원군이 중건했다고 하는데 중건은 고치거나 보수해서 짓는 거를 말하는 거다. 전소했으니 재건이라고 해야 맞지 않나 싶은데... 중건과 재건의 명확한 개념을 찾아봐도 재건이 맞는 거 같단 말이지. 왜 중건이라고 명명하지? 궁금~
경복궁 전소의 원인
근데 왜 불에 탔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서로 다르다. 먼저 <선조수정실록>에서는 1592년 4월 30일에 전쟁 터졌다고 왕이 피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 백성들이 불을 질렀다고 되어 있고, <선조실록>에서는 1592년 5월 3일 왜놈에 의해 불에 탔다고 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팩트를 남기는 데도 왜 이렇게 서로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지. 이래서 역사는 고증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문헌 조사가 필요하다. 여러 문헌들을 비교 대조해보다 보면 어떤 게 더 설득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당시 왜놈 장수였던 오제키가 쓴 <조선정벌기>에는 5월 3일에 경복궁을 둘러보고 나서 느낀 감회(?)를 기록하고 있어 백성들에 의해 전소되었다기 보다는 왜놈에 의해 전소되었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는 거.
일본에 의해 훼손된 경복궁
1911년에 경복궁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우리나라를 식민 통치하던 최고 집행 기관인 조선총독부로 넘어갔고 1915년에 90% 이상의 전각이 헐렸다. 경복궁 가보면 알겠지만 아직까지도 전각 전체를 다 복구하지는 못한 거 같다. 터만 남아 있는 곳도 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경복궁 정문이자 남문인 광화문 뒷편에 세운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조선총독부가 사용하던 건물인데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 있는 흥례문 터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높이도 높아서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을 가리도록 되어 있다. 경복궁 중에서 가장 위엄 있는 건물이자 왕의 권위의 상징인 근정전을 가려버린다. 조선 왕조가 만든 궁궐은 총 5개지만 한양으로 천도하고 왕이 기거할 곳으로 만든 첫번째 궁궐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렇기에 기를 꺾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운 듯.
근데 광화문이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있으니 이거 마저 옮겨버린다. 그게 1927년인 듯. 이전에 썼던 글의 사진 자료를 보면 그런 듯 하다. 그렇다면 위의 사진은 1927년 이후의 사진이란 얘기네. 1926년 사진에는 광화문이 조선총독부 앞에 있으니 말이다.
사극에서 보던 그런 궁궐과는 다르다
시리즈로 계속 적을 것인지라 내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얘기하겠지만 이번에 경복궁을 둘러보면서(1/3 정도 둘러봤나? 몇 번 더 가야할 듯) 느낀 건 왕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여 대단히 멋진 곳이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 사극이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궁궐이 아니라는 거. 그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던 왕이 살던 궁궐이다. 나중에 사진으로 보여주마~
+
다음번 방문할 때는 해설가의 얘기를 꼭 들을 생각이다. 살짝 들어봤는데 음... 재밌네... 나름 해설 들으려고 디지털 가이드 대여해서 들으면서 구경했는데 디지털 가이드랑 해설가 가이드랑은 천지 차이다. 가급적 해설가를 따라 다니면서 구경하는 게 훨씬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