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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바베트의 만찬(1987): 진심은 통한다

風林火山 2016.10.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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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3,615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8점. 내용 모르고 봐서 그런지 처음 반은 이 영화 뭘 말하려고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다소 지루하기도 했는데, 나머지 반은 흐뭇하게 보면서 시간이 금새 지나가더라. 상당히 재밌다 뭐 그런 영화는 아니지만 잔잔하면서도 메시지는 분명히 있는 그런 영화.

#1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영화 속 주인공은 영화 제목에도 드러나듯 바베트이나, 영화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두 여자(자매)가 있다. 목사인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독실한 종교 생활을 하는 그녀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버지는 두 딸이 결혼하기를 바라지 않는 듯 싶다. 이해를 할 수 없었던 부분. 이러 사람들은 이해의 폭이 굉장히 좁고 꽉 막힌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는 않아. 그래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곤 하지. 상당히 답답한 인간인 경우다. 지는 여자랑 잠자리를 가졌으니 딸이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영화에서는 유전적으로 친딸인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지만. 여튼. 그러면서 지 딸들은 결혼하지 못하게 한다니. 참. 그들의 종교는 청교도. 청교도가 좀 그런 경향이 강하다. 쾌락을 상당히 금기시하며 도덕을 중시하는.

#2
금욕과 쾌락

두 딸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거겠지만, 그렇게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헌신하고 평생을 산 걸 보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한 개인의 문제로 보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뭐든 극단적인 거는 좋지 않다고 봐. 일전에 언급했듯 ism이라는 게 항상 극과 극의 대립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거든. 금욕주의 vs 쾌락주의. 내가 볼 때는 둘의 합인데 말이지. 적절한 수준의 쾌락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적절한 수준의 금욕은 인간을 인간다웁게 만든다. 그 적절함이 때로는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 반성을 하게 되는 거 아니겠는가. 금욕은 무조건 바른 삶이고, 쾌락은 무조건 바르지 않은 삶이다라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굉장히 편협한 사고인 법.

#3
남편과 자식을 잃은 바베트란 여자가 복권에 당첨되고 그 당첨금으로 만찬을 연다. 그러나 만찬을 준비하기 위한 식재료들을 본 날, 두 자매 중에 언니가 꿈을 꾼다. 꿈의 내용은 그 만찬이 마치 사탄의 만찬이란 듯. 해석해보면 뭐 음식으로 얻는 쾌락도 잘못된 거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을 듯. 그래서 만찬에 참석하는(만찬을 하는 일이 돌아가신 목사 아버지의 생일을 기리는 날이었다.) 이들에게 걱정스러운 얘기를 하면서 그들과 함께 만찬에서 음식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도 하지 말자고 서로 약속한다. 당일 음식을 맛본 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못한 반면, 만찬에 초대된 외지인(사실 외지인이라고 하기는 그렇긴 하지만)은 음식에 이러 저러한 칭찬 일색이다. 사실 바베트란 여자가 두 자매의 집에 살기 이전에 프랑스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의 수석 요리사였던 것.

그녀는 한 끼의 만찬을 위해 자신의 당첨금을 모두 써버렸다. 자신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최선을 다한 음식을 남들이 즐기게 하기 위해서 썼던 것. 청렴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두 자매지만 그 동네에서만 살아 경험이 짧을 수 밖에 없고, 종교가 그네들의 전부였기에 그만큼 세상을 이해하는 폭 또한 좁아 편협해질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바베트가 준비한 만찬을 곡해하기도 했지만 만찬 후 바베트의 대사에서 많은 걸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 상대가 나에 대해서 오해를 한다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대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수석 요리사 출신이었던 그녀였기에 자신의 요리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던 것이고. 

#4
처음 시작은 두 자매 중심으로 내용이 펼쳐지기에 다소 지루했지만 바베트 등장 이후부터는 다르다. 만찬을 준비하고, 만찬을 즐기는 게 이 영화의 반인데(딱 반인 듯) 거기서부터는 재밌다. 시골의 부엌에서 프랑스 파리의 수석 요리사가 준비하는 요리를 보고 있으니 시간 금방 가더라고. 그렇다고 그 음식을 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던데(내가 좋아할 만한 그런 류의 음식이 아니라서) 참 먹음직스럽게 보이기는 하더라.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가 주는 매력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최근 내가 보는 드라마 중에 일드 오센이 있는데, 이거 보면 아~ 미치겠더라. 먹고 싶어서. 유투브에 쓰잘데기 없이 많이 먹는다는 걸 방송으로 보내는 쓰레기들도 많은 요즈음 세상인지라(난 그런 애들 보면 참 무식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 그런 류의 영화나 드라마가 더 빛나 보이는 듯. 게다가 이 영화는 단순히 먹는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데에 영화의 메시지가 있지 않고, 또 배금주의에 물든 요즈음의 현실에 돈보다는 다른 그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는 걸 보면서 바람직한 영화라는 생각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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