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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무방비 도시 (1945)

風林火山 2007.01.20 15:04
무방비 도시 포토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개봉일 1945,이탈리아
별점
date : Sep 12, 2005 / film count : 2342

1945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나치와 파시스트들에 저항하는 이탈리아인을 그린 작품으로 전쟁 기간 중에 찍은 영화다.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유명하고 영화 평론가들이 찬양하는가 하는 것은 아래의 "영화 매니라가 봐야할 100편"에 소개된 평론을 보면 이해할 것이다. 네오리얼리즘이라... 음...

그러나 나는 이런 영화보다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영화를 더 선호한다. 물론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다르다. 무방비 도시는 이탈리아의 저항이 대국민적이었고 일상적이었으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해프닝 식의 사실적 묘사에 그친 반면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전쟁의 참혹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참회록과 같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다르지만 너무 현대 영화에 익숙해서 그런지 70년 전의 영화는 내게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명대사가 또렷하게 각인된다.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신부가 사형 당하기 전에 한 말이다. "죽는 것은 쉽다. 그러나 바르게 사는 것은 어렵다."

사회현실과 역사를 충실히 기록함으로써 관객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영화의 시작은 아마도 네오리얼리즘일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고,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도 네오리얼리즘 영화였다. <무방비도시>는 네오리얼리즘의 서장을 장식한 영화이며 그 방법론과 실제를 구체화한 로셀리니의 전쟁 3부작 중 하나다.

2차대전중 독일 점령하에서 비밀리에 기획된 이 영화는 연합군이 상륙한 직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연합군은 기록영화에만 제작허가를 내주었으나 로셀리니는 이를 장편극영화로 만들어 종전 직후 성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동시녹음을 위한 필름과 기자재는 엄두도 못낼 만큼 비쌌고 촬영할 스튜디오도 구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무방비도시>는 각기 다른 종류의 자투리 필름으로 찍혀 화면은 다양한 질감을 갖게 되었고 로케이션 촬영이 돋보이는 기록영화적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게다가  느슨한 플롯과 열린 결말의 이야기에 가미된 감상적 멜로드라마는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독일군에게 살해된 한 신부의 실화를 근거로 만든 <무방비도시>는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완만하다. 영화를 시종 이끄는 인물은 레지스탕스 요원  맨프레디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그가 피신하는 행로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있다. 먼저 그의 동료의 약혼녀 피나가 있다. 이미 아들이 하나 있는 그는 독일군들이 약혼자를 붙잡아가는 것을 뒤따르다 결혼식날 무참하게 총살당한다. 피나의 결혼을 주례할 돈 피에트로 신부는 레지스탕스의 자금을 운반해주고 맨프레디와 동료를 수도원에 숨기려다 체포된다.

맨프레디의 옛 정부는 그를 하룻밤 피신시켜주나 그로부터 경멸을 받는다. 그리고는 마약과 사치품, 변태적인 애정행위에 팔려 그를 독일군에게 밀고한다. 맨프레디는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으며, 같이 체포된 신부도 결국 총살당한다.

그밖에도 전쟁이 싫어 탈주했으나 체포돼 감방에서 목매는 오스트리아 군인이, 또 게슈타포지만  나치이념에 냉소적이고 결국은 그 이념이 실패하리라 확신하는 술취한 장교가 이야기에 양념을 얹어준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공평하게 자유롭게 그러나 아주 강렬하게 그린다. 주인공은 하나가 아니며 중심이 되는 사건도 없다. 억압적인 나치·파시즘 아래서 모든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은 그 자체로 강렬하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통해 독일 점령하의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골목길에서 벌어졌을 일들,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레지스탕스 정신 혹은 그에 반하는 타락의 모습을 훑어줄 뿐이다. 그 모습들은 하나하나가 멜로드라마다. 그래서 영화는 여러 겹의 멜로드라마가 된다.

이 감상적인 비극에 희극적 요소들을 삽입하는 로셀리니는 관조적이고 희망적이다. 맨프레디를 쫓던 독일군들은 여자들의 치마밑 풍경을 보느라 그를 놓치는가 하면, 동네아이들은 어디엔가 폭약을 설치하고 늦게 집으로 와 부모에게 야단맞으며 끌려들어간다. 그리고 신부는 병자성사를 위장하기 위해 멀쩡한 노인을 프라이팬으로 때려 눕힌다. 로셀리니는 그 신부가 총살당하는 마지막 장면에 아이들로 하여금 레지스탕스의 휘파람을 불게 함으로써 희망을 준다.

전후 이탈리아인들의 도덕성과 심리적 분위기를 즉각적으로 표출한 이 영화는 당시 이탈리아 영화가 지향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실도피적 환상을  부추겨온 전쟁전 부르주아 영화를 벗어나, 세계를 왜곡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곧 그것이었다. 로셀리니를 세계적 감독으로 만든 이 영화는 영화의 사회변혁기능을 실천한 많은 영화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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