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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코에삼코리아 이혜영 대표: 오리지널 로즈힙의 손길을 전 세계 여성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2010년 8월에 설립한 코에삼코리아는 전 세계 로즈힙의 70%를 생산하는 칠레의 코에삼 그룹에서 25%, 코에삼코리아 이혜영 대표가 75% 지분 투자하여 만든 조인트 벤처로 칠레의 기업이 투자한 한국 기업 1호다. 그런데 기업 간의 비즈니스에서는 계약서가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코에삼코리아는 계약서 한 장 없이 설립했다. 그만큼 신뢰를 바탕으로 코에삼코리아를 설립했다는 얘기. 과연 이혜영 대표는 코에삼 그룹과 어떻게 이런 계약을 성사시켰을 수 있었을까?


스페인어 어학 연수를 위해 택한 국가, 칠레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출신인 코에삼코리아의 이혜영 대표의 대학 시절에는 어학연수가 붐이었다. 대부분 스페인어 어학 연수를 위해 택했던 국가는 콜롬비아, 멕시코, 스페인이었지만, 이혜영 대표는 선배들이 많은 국가는 배제하고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들 중에서 남미의 칠레를 택했다. 그나마 남미 국가들 중에서 칠레의 치안이 괜찮은 편이어서다. 그렇게 그녀는 한국의 칠레 유학생 1호가 되었다.

22살의 나이에 1,500불을 들고 칠레행 비행기에 오른 이혜영 대표는 2개월 비자가 만료되어 이후 불법 체류자가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칠레에서 생활하기 위해 한국 교포 자녀들의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외국에서 생활하던 교포 자녀들이 한국의 대학교를 가기 위해 가장 힘들어하는 과목이 수학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절 그녀는 칠레의 국어와 역사를 공부하면서 지냈고, 6개월이 지나자 스페인어로 원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통역 알바로 인연이 된 코에삼 그룹

원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스페인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이혜영 대표는 통역 관련 일자리를 알아보다 코에삼 그룹과 인연을 맺는다. 한국 바이어들의 통역 알바를 해주던 그녀는 잘못된 바이어들의 말에는 이중 통역을 하면서 코에삼 그룹 회장에게 신뢰를 얻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코에삼 그룹 회장의 한국어 개인 교사까지 하면서 고용의 관계를 너머 마치 아버지와 딸과 같은 관계로 발전했다.

불법 체류를 하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어마어마한 벌금 때문에 한국으로 갈 수가 없었던 이혜영 대표를 도와준 것도 코에삼 그룹 회장이었다. 직접 칠레 내무부에 가서 이를 처리해줌은 물론 비행기 티켓까지 구매해줬다. 코에삼 그룹 회장은 한국하면 이혜영 대표를 떠올리고, 한국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할 때 당시 여대생이었던 이혜영 대표 얘기를 종종 하곤 한다. 그만큼 이혜영 대표가 코에삼 그룹 회장에게 신뢰를 주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던 것.

그 덕분에 이혜영 대표는 이후 민간 외교 활동도 여러 차례 수행했다. 이혜영 대표가 칠레에 있었을 당시의 칠레 대통령이 훗날 외교관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함께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실질적인 한국을 소개하기도 하고, 2012년 3월 핵안보 정상회의를 위해 최초로 방한한 칠레 대통령과 칠레의 경제 사절단 자격으로 함께 온 코에삼 그룹 회장의 통역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사진 설명: 왼쪽부터 코에삼 그룹 회장, 칠레 대통령, 코에삼코리아 이혜영 대표)



머리 속 한 켠에 항상 담아두었던 로즈힙

한국으로 돌아와 복학한 이혜영 대표는 졸업 후, 광고대행사에서 AE로 활동했다. 그녀가 맡았던 광고 중에 대표적인 게 박찬호가 등장했던 삼보컴퓨터 체인지업. 삶이 순탄할 줄로만 알았지만 IMF로 인해 회사가 문을 닫고,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을 보내게 된다. 혼자서 칠레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칠레에서 불법 체류자가 되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게 그러하듯이 나쁘다고 해서 항상 나쁘지만은 않는 법.

시련 속에 핀 사랑이 더 아름답다 했던가? 그 시절 그녀는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2002년 결혼하고, 그 이듬 해에는 같은 직종 출신인 그와 함께 온라인 광고 회사를 설립하여 청정원, 유한양행과 같은 굵직한 회사의 광고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혜영 대표의 머리 속에는 칠레에서 통역 알바를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코에삼의 로즈힙이 상당히 매력적이었기에 언젠가는 이와 관련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온라인 광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온라인에 눈을 뜬 이혜영 대표는 2005년 coesam.co.kr 이란 도메인을 구매했다. 이 때문에 2007년에는 코에삼 그룹과 한국 독점 공급 계약을 한 업체에서 도메인을 넘겨라는 얘기가 오고 가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코에삼 그룹 회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다", "회장님이 얘기하던 그 여대생이 이혜영 대표님인 줄 몰랐다"면서 오히려 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했다. 독점 계약된 국내 업체가 있는 줄 몰랐지만 이혜영 대표는 아직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온라인 광고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시장의 트렌드를 읽는 건 빨랐다. 당시 한국에서는 유기농은 비싸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인정받지 못했다. 코에삼에서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로즈힙이 인정받기는 쉽지 않은 시장이었던 거다. 이혜영 대표는 필요한 자금을 모으면서 계속 기다렸다.

2009년이 되자 칠레산 달팽이 화장품이 HIT 상품이 되는 등 유기농 화장품이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유기농 식품의 판매 또한 상승하는 걸 보고 이제서야 때가 됐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모아둔 돈과 코에삼 그룹의 지분 투자로 코에삼코리아란 조인트 벤처를 설립한다. 계약서 한 장 없이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신뢰 하나로 코에삼 그룹에서 투자한 거다.


오리지널 로즈힙, 알로에만큼 유명하게 만들 터

로즈힙의 효능을 아는 사람들은 알 터다. 비타민 C하면 생각나는 과일 레몬보다 비타민 C 함유가 60배나 많고, 베타카로틴하면 생각나는 방울토마토보다 10배의 베타카로틴이 함유되어 있는 들장미 열매다. 대부분의 로즈힙은 야생에서 자라지만 칠레의 코에삼 그룹은 1974년부터 어떠한 화학 비료와 농약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 자연의 힘으로 로즈힙을 재배하여 전 세계 로즈힙의 70%를 공급하고 있는 로즈힙 전문 기업이다. 이렇게 생산된 로즈힙은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에 1차 원료로 제공하기도 하고, 차(茶)의 원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코에삼코리아라 하여 코에삼 그룹의 로즈힙 원료나 제품을 직수입해서 판매하는 회사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고 이혜영 대표는 말한다. 로즈힙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하는 게 코에삼코리아라는 것. 즉 우리나라에서 기획 개발한 로즈힙 제품을 코에삼 그룹의 영업망을 통해 전 세계에 판매한다는 거다. 그만큼 코에삼 그룹은 이혜영 대표를 신뢰한다는 얘기라 하겠다. 이혜영 대표의 목표는 로즈힙을 알로에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는 거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차별화된 제품들을 많이 만들어내기 보다는 로즈힙에 대해서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한다.

로즈힙도 포도와 같이 품종이 다양하다. 그래서 같은 100%라 하더라도 품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는 거다. 코에삼 그룹의 경우, 비타민과 불포화지방산 함유량이 높은 로즈힙 품종을 유전자 변이 없이 개발하여 이를 AP-4란 품종이라 명명하고 특허를 받았다. 게다가 100% 유기농 생산이란 인증도 미국 USDA(미국농무부), 일본 JAS(일본농림규격)/JONA(일본유기자연식품협회), 스위스 IMO(국제유기농인증협회)과 같이 여러 곳에서 받았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로즈힙의 대명사는 코에삼이란 얘기다.


로즈힙의 나눔은 [ 힐링 ] 이다

 

그녀는 로즈힙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이 사업을 펼치기 때문에 극찬을 하는 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자신이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게 바른 표현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질적으로 우수한 로즈힙으로 제품을 생산하지만 제품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다. 그만큼 코에삼 그룹이 세계 최대 로즈힙 생산 기업이기에 원가가 절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시장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고, 자신도 여성이듯이 전 세계 여성들이 좋은 제품을 좀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녀는 로즈힙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로즈힙으로 힐링을 나눈다고 얘기한다. 적절한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이들이 건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다.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 로즈힙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이라는 게 좋은 거를 알게 되면 쉽게 잊혀지지도 않는다면서 언젠가는 로즈힙에 대해서 알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그녀. 비록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남들이 택하지 않는 칠레로 어학 연수를 떠나던 22살의 그녀의 모습은 변함이 없는 듯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