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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니아라면 봐야할 영화 100편의 40번째 영화.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1001편의 233번째 영화.
리뷰에서 스포일러는 철저히 배제하는 저지만
이 영화 리뷰에는 스포일러 좀 들어갈 수 밖에 없는... ^^
1949년작의 고전물의 영화다. 흑백 영화.
이 영화가 대단한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봤는데,
1940년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잘 만든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고, 원작을 영화화한 것 중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동의 스릴러물도 이런 식의
전개는 보여줬었기에 이 영화가 스토리가 정말 뛰어나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도 동시대에 이런 류의 영화를 보여줬었고
이미 그것을 봤었기에 스토리만으로는 그 이상이 되지는 않는다 생각한다.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어떤 뭔가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것이
장르 자체가 스릴러물이라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카메라 기법이나 아니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무엇이 있었는가?
그거는 내 관심 밖이라 평론가들의 얘기를 들어봐야할 듯.
난 이 영화에서 집중했던 부분은 사람의 심리였는데,
남을 죽이면서까지 내가 돈을 벌어야만 하는 해리과
돈은 없지만 바르게 살고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해리의 친구 마틴즈와
아무리 그래도 친한 사람을 경찰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애인 안나.
이 세 명의 대사와 심리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영화였다.
해리역의 오손 웰즈(오~ 첨 알았다. 배우로 나오기까지)가
하는 대사가 참 기가 찬다.
(놀이기구를 타고 꼭대기에서 문을 열고 내려다보면서)예전에 <Photojournalism(포토저널리즘)과 Visual Communication(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저 점들 중 하나가 사라지면 슬플까?"
"점 하나에 2만 파운드를 준다면 거절할텐가?"
을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도 그러했지만
사람의 목숨 갖고 장난치면 안 되지~
내가 주인공 친구라면 이 새끼 뒤지게 맞았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근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시대가 1940년대 말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얼마 안 되는
상황이라 인간의 목숨에 대한 가치의 혼동이 있었을 수는 있겠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은 해보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거지.
그러면서 자신의 논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하는 대사가 있다.
아래의 대사 중에서 영어와 함께 실린 부분은 유명한 대사라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없어진 지 오래야.
정부도 생각하지 않지.
정부가 무산계급을 말할 때 난 악한들을 대변할 뿐이야.
정부처럼 나도 계획이 있어.
(중략)
In Italy for 30 years under the Borgias they had warfare, terror, murder, and bloodshed, but they produced Michelangelo, Leonardo da Vinci, and the Renaissance. In Switzerland they had brotherly love - they had 500 years of democracy and peace, and what did that produce? The cuckoo clock
30년간 보르지아 아래서 암울한 시대를 보냈던 이탈리아는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 등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지. 스위스는 500년간 민주주의를 꽃피웠지.
남은 건 뭔가? 뻐꾸기 시계뿐이야.
세상에 핑계없는 무덤 없다고 논리야 내세우기 나름이지만
우리가 논리를 내세우기에 앞서서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기본적인 가치를
도외시하고 논리를 앞세울 수는 없는 법이다.
자신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자신의 몫이겠지만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희생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유명한 대사고 나발이고 간에 이런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주인공 마틴즈는 옳은 인간이라기 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본 자세가 된 인간이다.
근데 웃긴 거는 해리의 애인인 안나의 말이다.
잘난 정직함으로 잘 살아보라며 해리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할 수가 없단다.
내 예전부터 이런 논리를 매우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랑 친한 사람이 한 일은 좋은 일이고 나에게 해가 되면 상대는 나쁜 놈이 되는...
그 일 자체를 두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장과 상대와의 관계에서 해석하는...
정직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를 인간관계 때문에 그르쳐야 하는가?
그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한테는 잘 해주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 사기친다고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닌가?
물론 내가 아는 사람이 잘못했다 해도 내가 좋아한다면
관여하지 않고 방관자의 자세(소극적인 자세)까지는 좋다.
그렇다면 왜 그를 말리고 잘못되었으니 벌을 받아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잘난 정직함으로 잘 살아보라며 비꼬는가?
그런 이에게도 방관자의 자세로 견지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어줍잖은 논리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 잘 생각해보라. 당신도 이렇게 하고 있는줄.
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무리 친해도 잘못된 거는 잘못된 거지.
어쨌든 이런 심리를 보는 데에 나는 더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매우 유명하다고 하는데 보고 나서
이 영화의 평론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안나가 마틴즈를 지나치는 장면.
그래도 얘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냥 쌩까고 지나간다. 허탈해 담배를 태우는 마틴즈.
이게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사상 유명한 장면이란다.
아래의 정성일의 評 참조.
스릴러물인만큼 이 영화는 영화 제목이 말하듯이
제3의 사나이가 누군지만 알면 끝~ 스토리 상으로는...
그러나 그 외에 배경 지식을 먼저 알고 보면 재미가 더할 듯
즉 평론부터 읽고 보면 더 좋을 듯 싶다.
다만 평론에는 스포일러가 있다는... ^^
나야 평론이나 리뷰부터 먼저 보지는 않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영화 이전의 영화에서도 있었던 장면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틴즈에게 보내는 해리라는 친구의 마지막 눈빛과
그 눈빛을 읽고 친구를 보내버리는 마틴즈.
난 이게 더 가슴에 와닿는다.
아무리 아닌게 아니라도 20년된 친구를 자신의 손으로 보낸다?
음... 여기에서는 그 장면의 내면 연기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냥 총성 한 방으로 끝내버리지만)
난 이 부분이 가장 생각 많이하게 한 부분이었다.
* * *
이 영화를 보고 뒤져보고 알았지만 오손 웰즈가 원래 배우 출신이었다는 사실.
난 <시민 케인> 감독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시민 케인>은 1941년작, 이 영화는 1949년작.
그렇다면 감독하면서 배우 생활도 병행했다는 얘기?
* * *
이 영화는 제3회 칸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명장면으로 일컬어지는 부분이
하수구 추격신인데 그것도 알아두고 보면 재미있을 듯.
같은 장면 몇 번 울궈먹는 듯 해서 난 그닥 괜찮다는 생각은 안 들었음.
* * *
이 영화의 여배우가 누군고? 이쁜데... 알 수가 없군.
근데 고전물을 보면 여자들의 스타일이 거의 비슷비슷...
오똑한 콧날에 큰 눈. 갸날픈 몸매에 개미허리등...
근데 고전물을 보면 여자들의 스타일이 거의 비슷비슷...
오똑한 콧날에 큰 눈. 갸날픈 몸매에 개미허리등...
* * *
다음은 정성일 영화 평론가의 評이다.
캐럴 리드 감독의 <제3의 사나이>(1949)는 참으로 '이상한' 영화이다. 아마도 이처럼 세련된 상업영화 스타일과 다양한 예술영화의 전통이 함께 행복하게(!) 만난 예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올드 팬들에게는 향수가 되었고, 시네마데크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리스트이며, 젊은 영화광들의 고전이면서, 영화이론의 논쟁적 장소를 마련하였다.
무대는 종전 직후 연합군 공동관리체제 아래 놓인 빈. 여기에 미국인 소설가 홀리 마틴스(조지프 코튼)가 친구 해리 라임(오손 웰스)을 찾아온다. 그러나 친구는 이미 교통사고로 죽은 다음이다. 홀리는 친구의 애인 안나(아리다 발리)를 만나본 다음 이곳을 떠나려 한다. 영국군 소령 캘로웨이(트레버 하워드)는 홀리에게 친구 해리가 가짜 페니실린을 유통시킨 혐의로 연합군의 추적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게다가 해리는 죽은 것이 아니었으며, 홀연히 해리 앞에 나타나 전망차 앞에서 명대사를 한다. "칠백년 평화로운 스위스에서는 뻐꾸기 시계 하나를 만들었지만, 전쟁이 이어지던 이탈리아에서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있었지." 그러나 홀리는 가짜 페니실린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해리를 고발하기로 결심한다. 함정에 빠진 해리는 홀리의 손에 죽고, 안나는 그의 곁을 떠난다.
낙엽지는 초겨울에 빈에서 촬영한 <제3의 사나이>는 원작자 그레이엄 그린 자신이 각색한 시나리오로 만들었다. 캐럴 리드는 '결코' 위대한 영화감독은 아니지만, 그는 단 한편의 걸작을 남기는 데 성공하였다.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선 영화의 백과사전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선 무엇보다도 종전 직후의 황폐한 빈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로버트 크래스커의 흑백촬영은 존 그리어슨으로 시작하는 영국 기록영화의 전통에 서 있으며, 한편으로는 거리에서 미학을 완성시킨 이탈리안 네오 레알리즘과도 정신적 연대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대부분의 장면이 밤에 촬영되면서 동원된 조명과 미술, 세트는 전후 빈을 마치 독일 표현주의 영화와도 유사한 빛과 그림자의 세계로 바꿔놓는다.
의도적으로 경사 구도의 카메라 앵글로 화면을 만들었으며, 인물들은 그 사이를 떠도는 유령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리얼리즘과 표현주의 영화의 전통이 서로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의 자본이다. 그는 기꺼이 이 유럽영화에 투자했으며, <제3의 사나이>가 유럽에서 만든 필름 누아르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원한 것을 손에 넣었다.
<제3의 사나이>는 49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국제적인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영화적 깊이나 미학적 실험은 없지만, 마치 홀린 듯이 안톤 카라스가 연주하는 민속악기 지타의 선율을 따라 빈에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수많은 명장면과 전율할 만한 이미지의 황홀감을 안겨준다.
특히 가을 낙엽이 지는 빈의 가로수 저편에서 걸어와 기다리는 홀리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안나와의 기나긴 이별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의 하나이다. 영화는 때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명장면의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다. <제3의 사나이>는 추억과 감상주의 사이에 선 아슬아슬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