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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격투기

UFC 119: 프랭크 미어 vs 미르코 크로캅



전성기 시절의 크로캅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매우 건방졌기 때문이다. 잘 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과 시건방진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 그의 행동을 보니 참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보진 않는다. 최근의 KO패란 경험들로 인해 성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성숙해진 척을 하는 것이지 바뀐 건 아니다. 그건 그가 프랭크 미어 전에서 지고 난 다음의 표정을 잘 읽어보면 알 것이다.

그래도 좋다.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나름 겸손함이라는 걸 배웠다면 그의 자신감 있는 경기 운영은 잃은 것이다. 오히려 이게 난 더 싫다.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지면 좋을텐데 왠지 모르게 자신이 가진 기량을 맘껏 펼쳐보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나마 프랭크 미어와의 대결은 나은 편이었다. 나름 강한 상대를 만나 이번에 잘 하면 다시 주목 받을 수 있겠다 생각을 한 듯 하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어그레시브한 면이 보였으나 같은 왼손잡이다 보니 잘 먹히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그래도 좋았다. 왜냐면 그건 프랭크 미어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분명 그라운드로 몰고 가서 어찌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는데 크로캅이 잘 방어해서 그라운드 근처도 가지 못했으니 결국 프랭크 미어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던 것.

마지막에 무리수를 두려고 했던 크로캅. 마침 거기서 니킥을 얼굴에 맞을 줄이야. 아쉽지만 그게 크로캅의 운이었던 듯 싶다. 또 다시 실신 KO. UFC에서는 참 실신 KO를 많이 당하는 듯한 크로캅이다. 나이는 못 속인다. 척 리델과 같은 경우도 요즈음 들어서 부진한 것도 다 이유가 있고 말이다. 잘 나갈 때 그만 둬야 하는데 팬들에게 무안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명예 회복이나 하고 은퇴해야지 했다가 오히려 더 무안한 모습만 보여주는 듯 하다.

크로캅. 그래도 하이킥이 참 멋진 선수였는데... 이제는 그만 고집을 피웠으면 한다. 예전처럼 어그레시브하게 싸워서 KO를 당해도 어차피 KO고 이렇게 조심조심하면서 소극적으로 싸워서 KO 당해도 매한가지다. 한계에 다다른 듯 싶다. Top Class에 있지 못할 바에는 진작에 은퇴를 하는 게 좋았을 듯 한데 아쉽다. 앞으로 크로캅의 진로가 어떻게 될 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런 거 생각하면 랜디 커투어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도 그렇고 은퇴했다 다시 복귀한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레전드라 불리는 듯. 지루한 경기였지만 내심 크로캅이 잘 싸워주기를 바랬는데 이렇게 실신 KO를 당하니 아쉽긴 하다. 하이킥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에 그의 팬이 되었던 이들은 이제 등을 돌리고 크로캅을 퇴물이라 한다. 그런 것들이 팬이라고...

뭐든 조금 생각을 달리 하면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잘 나갈 때 조심하고, 못 나갈 때 지른다. 그런데 크로캅은 잘 나갈 때 지르고 못 나갈 때 조심한다. 그러니 뭔가 안 풀릴 수 밖에... 이제 크로캅에게선 비전을 볼 수가 없다.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파이터로 기억하고 싶다. 더이상 이런 모습으로 경기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