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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오직 5명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라쇼몽" (1950)

라쇼몽 포토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개봉일 1950,일본
별점
date : Oct 01, 2005 / film count : 2388

드디어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를 봤다.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하면 내가 봤던 영화 중에서는 '라스트맨 스탠딩'이 기억에 남는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이었던 이 영화는 철저히 One Man Hero 정신에 입각해서 만든 영화다.
이 영화 또한 원래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인 '요짐보'라는 영화를 헐리우드 식으로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링이 리메이크 되어 헐리우드판으로 나온 것과 같이 말이다.)
지금껏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를 몇 편 봤지만 이 영화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 1950년대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대단하다고 생각되었고 천재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나중에 평론을 읽어보니 이 영화 내용은 다른 두 편의 소설인가에서
가져왔다 한다.(마지막 희망에 대한 메시지의 승화는 감독의 몫이었지만)

전체 나오는 인물 5명으로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구성하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싶다.
전혀 내용을 모르고 봐서 그런지 처음 5분이 지나고 나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나?'부터
시작해서 '도대체 누가 범인인가?'라는 생각에 이르기 까지 영화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고
그것이 밝혀지면서 주는 메시지는 인간의 이기적인 부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그 비판도 아주 재미있게 구성하면서도 결국 비판하는 자신 마저도 그런 이기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일 수 밖에 없는 회귀론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캬~ 대단한 내러티브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결말에서는 희망을 보여주는데,
그 희망을 보여주는 생각은 아키라 감독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결말에서 끝난다고 하여도 대단하다고 했을 것을...
그 결말로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일말의 희망. 인간에 대한 믿음, 인간 세계가 믿을 만하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승화한 마지막은 정말 감독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것 같다.

미스테리도 아니면서 미스테리하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고
단순한 사건 하나를 두고 해결을 하면서 보여지는 인간의 이기적인 부분을 통해서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이 영화는 정말 10점 만점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에서는 왜 3명의 각기 다른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설정이 되어
있기에 정말 그 부분에서도 다시 한 번 놀랐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사건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그것의 해결 부분에서 사건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게 하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부분(더 크게 보면 인간의 입장의 차이)에 대해서 보여주면서
이러한 인간 사회에 일말의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은
결국 이 세계를 5명이라는 인물 속에서 그려내었다고 보여진다.
정말 감탄에 감탄이며 찬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영화 감독의 평론인데, 읽어보면서도 비판할 것이 없다. 수긍하기 때문이다.

일본영화가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몬>(50년 8월 개봉)이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나서부터였다.

이후 일본영화는 미조구치 겐지,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등이 잇따라 세계영화제를 석권하면서 패전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완성 당시만 해도 일본 안에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쳤던 <라쇼몬>이 서구인들에게  높이 평가받은 이유는 색다른 동양문화였기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 주제의식과 영화적 미학의 뛰어남 때문이었음은 지난 82년 베니스영화제 역대 대상(황금사자상) 수상작중 최고 작품으로 선정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현재까지도 이 작품은 주제의식의 강렬함, 뛰어난 형식미로 인해 영화학도들에게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라쇼몬>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라쇼몬>(15년)과 <숲 속에서>(21년) 두 편을 묶어 각색한 영화다. 작품의 배경은 내전으로 인해 피폐한 12세기 헤이안조 시대다. 숲 속에서 한 무사가 살해되고 그의 아내가 산적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절반쯤 쓰러져가는 라쇼몬에서 승려와 나무꾼, 행인이 그 살인사건을 회상한다. 법정에서 무사의 아내, 살인 강간 혐의로 잡혀온 산적(미후네 도시로), 무당을 통해 증언하는 죽은 무사의 혼령, 목격자 나무꾼이 증언하는데, 그들은 그 사건을 서로  다르게 이야기한다. 모두가 자기 말이 진실인듯 말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알 수 없다.

영화는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테리 모티브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건은 분명 하나인데 사람에 따라 자기 중심적 입장에서 달리 증언한다. 거기서 핵심 주제인 인간의 이기주의와 진실의 상대성을 읽을 수 있다. 구로자와는 각색과정에서 원작에 나타난 허무주의적이고 인간에 대해 냉소적인 관점을 휴머니즘으로 변화시키고자 후반부에 (원작에 없는) 어린아이를 등장시켜 인간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제시한다. 휴머니즘, 인간에 대한 탐구와 따뜻한 애정은 구로자와 영화 전반에 나타나는 주제의식이다. 그는 카메라로 해를 직접 찍는 것을 금하던 당시의 틀을 깨고 숲 사이로 비친 해를 과감히 찍음으로서 조명의 새로운 미학적 효과를 창출했을 뿐 아니라 몽타주의 적절한 사용, 정교한 카메라 움직임, 고전적인 일본연극의 인물배치에서 착안한 화면구도, 서양음악을 재해석한 음악과 음향효과의 적절한 사용 등으로 영화미학을 진일보시키는 데 공헌했다.

<라쇼몬>은 당대 일본영화의 대가들인 오즈나 미조구치의 영화들과 비교해 서구적 스타일의 영화로 자주 언급된다. 물론 카메라 움직임이나 복합적인 스토리 구성, 음악 등에서 서구적 영향이 많이 나타나긴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숨어있는 일본적인 구도나 이미지를 간과해선 안된다. 특히 재판관을 생략한 채 증언자들만 보여주면서 그들을 양식화된 화면구도로 잡아내는 법정 장면이나 일부 정적인 분위기들은 순전히 일본적이다. 구로자와에게는 서구적 기법을 자신의 일본적 이미지 속에 융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그는 또  '단순화는 현대예술의 중요한 미학적 테크닉의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최소한의 등장인물(엑스트라 포함 9명)과 단 몇군데의 공간(라쇼몬, 법정, 숲속, 강가)만으로 경제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필자: 이정국/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