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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 사고 파는 재미를 간접 체험하게 해준 책


독특한 이력의 저자가 도전을 감행한 것에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샀었다. 간만에 독서를 하는 지라 가볍게 읽어볼 요량으로 이 책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중에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를 받아서 중간에 독서를 중단하고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을 먼저 읽어보긴 했지만... 

처음에 책을 사고서는 저자가 무엇을 느꼈는지를 보려고 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사실 저자에게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해서든 여행을 시작시 갖고 있던 돈을 두배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강한 의지와 노력의 흔적만 엿보였을 뿐.

그렇다고 해서 전혀 얻은 게 없었던 건 분명 아니다. 아무리 얻을 게 없는 책이라고 해도 분명 얻는 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이런 책은 읽으면 안 되겠구나!', '다음부터는 책 선택을 신중히 하자' 따위의 생각도 얻은 거라면 얻은 거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류는 적어도 아니었다.

다만 처음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을 얻었다는 것일 뿐. 어쨌든 가볍게 재밌게 읽어내려갔다. 오늘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서는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이다. 사무실에 항상 비치되어 있는 오징어. 직원들은 모른다. 오징어가 비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


장사와 사업

나름 나는 장사와 사업을 엄밀하게 구분지었고 장사보다는 사업을 좀 더 우위에 두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여기서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힘들다. 다만 단순히 개인사업자, 법인 그런 것으로 장사와 사업을 구분짓는 건 아니다는 것만 얘기하고 싶다. 물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장사를 다소 하찮게 여기던 내 시각은 조금 다르게 해준 책이었다 할 수 있겠다.

가격 흥정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판매자는 흥정을 염두에 두어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지, 왜 구매자는 흥정을 염두에 두어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지가 이해가 안 갔다. 돈을 눈 앞에 두고 좀 더 이익을 내려고 하는 게 참 속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상 나도 흥정을 해보니 재밌더라는 거는 부인하지 못하겠다.

예전에 동대문에서 옷을 사러 갈 때면 두타보다는 밀리오레를 가곤 한다. 두타는 정가로 판매하기 때문에 흥정이 없지만 밀리오레는 흥정이 있기 때문이다. 흥정을 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가격 흥정은 하지 않는 나였는데 어떤 말 한 마디에 흥정하는 나로 바뀌었다.

"원가도 안 되는 가격이에요."

세상에 거짓말도 이런 거짓말이 어디있을까 싶었다. 원가도 안 되는 가격이라면 손해나는 장사 왜 하냐 싶었다. 어느 한 명이 한 말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러니까 그래도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달라는 대로 주자는 생각을 했던 내가 달라진 거였다. 그 이후로는 장사꾼의 말은 안 믿기로 하고 그들을 상대로 재미로라도 흥정을 하면서 가격을 깍곤 했다.

그런 흥정 행위를 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 그네들이 그렇게 대하니까 나도 그렇게 대하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장사꾼들을 하찮게 여겼다. 당장 눈 앞에 놓인 이익을 위해 이런 저런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 취급했었던 거다. 그래서 돈이 많아도 장사꾼들은 별로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돈 많으니 저리 딴 데 가서 골목대장하라고 무시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다소 달라졌다. 왜냐면 저자인 코너 우드먼이 그 수많은 나라를 돌면서 한 거래들 모두에 그런 흥정은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만국 공통어인 듯 말이다. 마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듯 여겨졌을 정도였으니까. 그게 이 책을 읽고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장사로 성공한 사람과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나름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은 장사로 성공한 사람인지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어떤 면에서는 장사로 성공한 사람이 더 나은 면이 분명히 있지만 소소한 데에서 이문을 따지는 그런 거를 보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이 책의 의문점

이 책 표지에 보면 TV 다큐멘터리 <80일간의 거래일주> 원작이라는 글귀가 있다. 그래서 나름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4부작 다큐멘터리인데 다큐멘터리 제목이 책의 원제와 같이 <Around the world in 80 trades>다. 근데 좀 의문점이 드는 게 아마존에서 도서 검색을 해보니 이 책이 출간된 거는 2009년 4월 3일인데, 다큐멘터리 첫 방송이 2009년 4월 9일이다.

정말 저자가 나름 뜻을 세운 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하면서 적은 책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원작이 나오고 방송사에서 섭외를 한 다음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책이 나오고 고작 6일 있다가 첫 방송이 시작되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저자가 책을 내고서 나름 출판사에서 방송사에 이런 책이 곧 출간될 껀데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게 어떠냐는 제의를 해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자신의 여정을 답습하고 다큐멘터리 방송일에 맞춰서 의도적으로 출간일을 그렇게 맞춘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방송사에서 먼저 이런 걸 기획하고 적절한 사람을 찾다가 코너 우드먼이 섭외된 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즉 원래부터 이건 의도된 기획 하에 여행을 한 게 아니냐는 거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저자 코너 우드먼 참 발 넓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수많은 거래 품목에서 도움을 주는 지인들이 있었으니까.

물론 책 한 권에 80일간의 여정을 담아내다 보면 며칠 간에 벌어진 일이 단 몇 줄로 요약되기도 하고 구구절절 얘기하지 못하여 중간 과정을 생략해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출간일과 다큐멘터리 방송일을 찾아보게 된 건데 말이다.

이런 의문점이 있긴 했지만 뭐 그닥 내겐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게 사실이든 난 책을 읽고 거기서 뭔가를 얻었으면 그것으로 족하니까.


총평

분명 나는 얻은 게 있다. 그러나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는 얘기하기는 힘들다. 책을 읽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나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내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해보기 위해서 읽는데 이 책은 지식보다는 정보를 줬고, 내게는 그리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는 못했던 듯 싶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다. 마치 <Man vs Wild>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라고는 소개하고 싶다. 그래도 나는 오랜만에 독서를 다시 하면서 가볍게 읽을 책으로 선택한 것인지라 거기에는 부합하는 책이었다고 할 수 있을 듯.

다큐멘터리를 1편 반 정도 봤는데 책 내용과 같다. 그래도 책이 더 자세하고 텍스트에서 느끼는 맛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다큐멘터리만 봐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다큐멘터리가 자막이 없다는 거. 그래서 영어로 들으면서 봐야한다는 거 그건 감안해야 할 듯. ^^;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갤리온
*  *  *

이 책은 기적의 책꽂이에 포함해서 같이 보낼 생각이다. 최근에 사서 읽었고 다소 따끈따끈한 신간이지만 내게는 소장 가치는 없는 책인지라 기부하는 책에 포함시킨다. 이제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을 차례다. 원래는 책 4권을 사면서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글이 잘 안 읽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가뜩이나 요즈음 책 안 읽는데 더 안 읽힐 듯하다는 생각에 워밍업으로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를 선택했었던 거다.

중간에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을 읽어서 두 권을 읽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게 되었지만 그래도 요즈음 독서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약간은 탄력을 받았으니 다음주까지는 다 읽지 않을까 싶다. 나름 기대 많이 하고 보는 책인지라 어서 읽고 싶은 마음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