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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독서학] 독서 권수가 중요할까? 질이 중요할까? (1편)

독서 붐이 생기는 바람직한 현상 속에서(자기계발 붐) 일부 언론에 노출되면서 마치 독서를 엄청 하는 양 비춰지는 것을 보면서 우스워서 한 마디 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TV 에서 어린 애들이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벌써 1,000 권 넘게 읽었다고 하는 그런 기사 내용을 보면서 참 재밌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독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나, 진정한 독서를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다.

한가지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그 어린 아이가 1,000 권을 읽었다면, 기껏해야 동화책일 것이다. 그럼 지금 내가 동화책 1,000 권을 보면 1,000 권 읽은 것이네? 숫자의 허와 실이다. 그래서 숫자에는 단순히 그 숫자 이면의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독서에서는 권수와 질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독서 권수의 의미

나도 권수를 체크한다. 그리고 인생에서의 목표도 있다. 겨우 1,500 권 수준이다. 내 블로그에 가장 초판에 적었던 내 소개 페이지를 확인하기 바란다. 이는 내가 책 리뷰나 정리를 DB화 시키면서 세운 목표로 그 이후 한 번도 내 인생에서의 목표 권수는 변함이 없다.

내소개 : 생활 관련 사항

나는 이 정도는 읽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 나름 평균 속도도 구하고 60살 정도라는 숫자를 이용해서 따져본 것이다. 지금껏 내가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책을 전혀 안 읽다가도 때로는 몰아쳐서 읽고 하는 평균을 따져봤을 때 이 정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 의식을 가지고 계산한 것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살았을 때 평균이 그 정도 되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의 권수는? 공식적으로 집계한 내 자료에 근거하면 현재 이 글을 쓰는 지금 413권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공식 집계한 자료이니 그 이전에 읽은 책은 내 공식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고, 내가 쓴 책은 공식 집계에 반영하지 않았으며(1권이지만 ^^),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IT 전문 서적들(영문이든 한글이든)은 집계 자체가 안 된다. 시중에 나오지 않는 책들도 있으니...

적어도 내가 IT 국제공인자격증을 20개(과목은 몇과목인지 모르겠다.) 갖고 있는지를 안다면 내가 적어도 그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몇 권의 책을 봤어야 했는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카테고리 : Intro/Cert

권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숫자라는 것을 갖고 얘기를 한다면 우선 기준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1은 0으로부터는 1만큼 떨어져 있지만 3으로부터는 2만큼 떨어져있다.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실 숫자는 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세운 1,500권에 대한 기준은 내 블로그에 명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식적으로 집계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나도 선호하고 그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그 진정한 의미는 숫자에 재미를 붙이면 1권 1권 읽어서 숫자가 올라가는 데에 대한 재미가 독서의 습관으로 순방향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독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난독증에 걸린 환자에게는 글을 읽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정신난독증 증세다.

근데 나는 오히려 그런 선천적인 난독증이 아닌 정신난독증이 더 문제라 본다. 정신난독증이라는 병명은 없다. 난독증이 아닌데 난독증 현상을 보이는 것을 나는 정신난독증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글을 읽고서도 그 글이 무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정신난독증이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도올의 말을 빌면 "해석(Interpretation)은 이해(Understanding)에 도달하는 과정이다"라고 되어 있다.

도올의 <도올논어> 정리 참고

이해를 하려면 해석을 해야 한다. 근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해석이라 함은 주관적인 것을 뜻한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 역사에 대해 얘기할 때는 사실은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되는 것이고 해석은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듯이 해석이라 함은 자신의 주관이 반영이 되는 것이다.

주관이 반영된다 함은 자신이 지금껏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의 총체적 현재의 자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남들과 같을 수는 없다. 물론 사람이기에 같은 의견을 같은 견해를 밝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전제조건은 바로 자신 스스로 생각을 해보고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깔려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독서의 질이다. 그 책의 내용이 쉽다 어렵다는 사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라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다독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독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면 동화책으로 권수를 채우기 바란다. 속독으로 읽으면 하루에 엄청난 분량(지금껏 살면서 읽었던 책들보다 더 많은)을 읽을 수도 있다.

권수에서 질을 따지는 단계

다독은 습관을 기르는 데는 좋다. 그러나 쉬운 책 다독해봤자 깊이가 없어진다. 혹시라도 운동을 해 본 사람들(헬스를 말한다.)은 알 것이다. 보통 5세트를 하는데, 마지막 세트에 힘이 다 빠져 있는 상태라도 온 몸에 힘을 집중해서 끝까지 들어올리는 순간 가장 근육이 발달되는 순간이다.(근육을 파열해서 새로 생성시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지만)

자신에게 조금은 어려운 책을 접하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에 미/적분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해하기가 쉬웠을까? 도대체 이것을 왜 배우는지도 모른채 해야만 하기에 했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이 짧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지식이 짧다는 것은 깊이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힘들어도 읽고 해석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자신의 지식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영화도 똑같이 처음에는 흥행 위주의 영화만 보다가 아카데미 수상작을 보게 되고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영화 고르기를 하는 단계인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다. 베스트셀러를 보다가 추천서적을 읽게 되고 조금은 어렵지만 관심있는 책을 선별해 나가는 눈을 길러나가는 단계로 발전되어 나가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사람은 처음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게 마련이다. 그렇게 많은 자기계발 서적(요즈음에 한창 붐이 되는 분야인)에서 변화에 적응하라고 외치건만 왜 스스로는 그런 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했을 때 행동이 변하는 법이다.

문제는 적절한 멘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보다도 더 고수가 있겠지만 적어도 언론에 노출된 일부 사람들과 같은 저급은 적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은 항상 아버지가 공부를 했기 때문에 환경적 요인도 컸고, 독서를 시키기 위해서 만화책부터 읽게 했던 아버지였기에 나름 길들여진 독서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에게는 독서에 멘토가 있었다. 내게는 은사님이신 분이셨다. 책을 추천할 때는 항상 이런 애기를 해주셨다. 왜 이 책이 좋은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사람인가? 보통 책을 추천해주는 경우에는 그런게 없다. 왜 읽어야 되는지도 모른채 그냥 추천한다. 방향 설정이 없이 그냥 추천하니 읽는 것이다.

물론 멘토를 해주는 은사님과 같은 경우는 핵심을 꿰뚫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난 참 다행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 혼자가 되었을 때는 뭔가를 읽어야겠는데 무엇을 읽을 지 몰랐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나씩 하나씩 골라가면서 스스로 터득해 나갔다.

대학교 시절이었던가? 이런 책도 읽었다. "대학생 창업시대가 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내용이지만 당시에는 책 고르는 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서를 골랐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단계가 아닌가 한다.

근데 문제는 적절한 멘토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붐을 조성하는 사람이지 책에 대한 멘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정말 내가 생각하듯이 상대의 경험과 배경을 모르고서 추천하면 상대에게 도움이 될 지 안 될 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상대와 나의 생각이 다르고 독서의 패턴이 다르고 관심 분야가 다르기에 해석의 과정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적절한 멘토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적어도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아니라고 본다. 다독이라는 미명하에 책만 읽었지 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생각이야 누구나 갖고 있지만 그 정도의 책을 읽고 그 정도의 생각이라면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멘토할 만한 인물이 아닌 사람이 멘토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웃긴 것은 멘토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까? 글을 읽어보면 안다. 글이 길지가 않다. 그리고 글 속에 뼈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1:1로 대화를 하면 바로 드러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내가 그렇게 보이는가? 그럼 언제든지 연락하기 바란다. 만나서 얘기해보겠다. 내가 인정할 만하면 고개 수그릴 것이다. 그러나 먼저 글을 써라. 글 속에서 다 드러나니... 내가 인정한다고 지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알아서 도움이 되고 내가 증명하면 가르쳐줄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된다. 부의 결과는 결코 생기지 않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