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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삶의 끝자락에 선 7명의 사랑과 행복 이야기


나의 3,102번째 영화. 요즈음 영화 선별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나로서는 이런 영화가 반갑다. 내 생각만큼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줬기 때문. 삶의 끝자락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인도의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 온 7명의 노인네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사랑이 주제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게 사랑과 무관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범위를 남녀간의 사랑으로 국한짓지 않고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다면야 몰라도) 내가 만약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네들이 되어 내 인생을 멀리서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 즈음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내일 죽는다고 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아웅다웅하는 게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잠시. 속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이 또다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아웅다웅하고 산다. 그게 삶이다. 어쩔 수 없는... 그러나 분명한 건 언젠가 우리도 늙게 되고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식들이 아웅다웅하고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거다. 나도 저랬는데 하면서 말이지.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을 볼만하고 추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록 온전히 그네들이 그렇게 한 이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을 지 몰라도 그네들을 통해서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네들은 가상의 인물 아닌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은 <These Foolish Things>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희한한 게 원작 소설의 제목만 보면 영 감동적이지는 않을 거 같은데... ^^; 개인 평점 9점의 추천 영화.

*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나지만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 리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저마다 이유는 달랐지만 한 곳에 모인 7명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의 설정에서 중요한 점은 저마다 인도를 방문하게 된 목적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그들은 남은 여생을 차분히 준비할 연령대라는 점이다. 나이도 제각각이고(외국은 존댓말 없이 다 반말이니 누가 더 나이가 많은지는 알기 힘들다.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살아온 환경도 제각각이지만 여생을 준비하는 과정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는 공통 분모를 갖는다. 그들이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영화는 어떤 태도가 더 나은가라는 관점을 갖지 않고 그저 그네들의 일상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 속에 로맨스도 분명 있다. 이는 남녀들이 모이다 보면 벌어지는 매우 자연스런 부분에서 이해해야지 로맨스가 이 영화의 주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해소의 공간으로 본다. 저마다 온 이유가 어쨌든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머물면서 저마다 살아오면서 갖고 있는 자신만의 아픔을 해소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7명의 캐릭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의료비 때문에 왔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캐릭터


비싼 의료비 때문에 인도에 치료를 목적으로 방문한 뮤리엘. 자신은 젊은 사람에게 아낌없이 뭔가를 전수시켜줬지만 나중에 다 전수시켜주고 나니까 젊은 사람을 고용하고 자신은 팽 당하더라는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캐릭터다. 비록 치료(인공관절 수술인 거 같다) 때문에 방문했지만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호텔 운영을 하는 부매니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듯 인생은 계획한 대로(자신의 뜻대로) 풀려가지도 않지만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일이 쉽게 풀려가기도 한다.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온 동성애자 판사


영국에서 판사로 은퇴한 그레이엄. 그는 심장질환으로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 죽기 전에 자신의 첫사랑을 찾기 위해 인도로 온다. 근데 상대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거. 동성애자였던 거다. 그렇게 수소문해서 찾은 첫사랑은 이미 결혼해서 다른 여인의 남편이 되어 있었지만 첫사랑의 아내 또한 자신의 남편이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 그들의 재회를 인정해준다. 그렇게 재회한 날 오후 그레이엄은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 정원에 놓여진 흔들의자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한다.

비록 판사라는 직업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긴 했지만 항상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은퇴 후에 삶을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인도로 와서 첫사랑을 찾는 거였다. 결국 찾아내고 평생토록 마음 한 켠에 갖고 있었던 그리움을 해소하지만 동성애자라서 그런지 그리 와닿지는 않더라는 거. ^^; 영화 속에서는 첫사랑과 헤어지게 된 애절한(?) 사연이 나오긴 해도 말이다. ^^;

다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첫사랑의 추억이 강렬했고 그게 여자라고 대입시켜서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더라는 거. 나도 살면서 죽기 전에 한 번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은 이가 한 명 있기는 하니까.


남편을 떠나 보낸 후에야 빈 공간을 느끼는 부인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의 주연이라고 하면 단연 주디 덴치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캐릭터는 조연급 주연이라고 하는 건 아니다. 사실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기 때문에 누구는 주연이고 누구는 조연이다 하기 힘들지만 굳이 그 중에서 가장 메인이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는 거다.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주디 덴치는 남편을 떠나보낸 지 얼마되지 않은 에블린 역을 맡았다.


어찌보면 에블린은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식들에게 기대려고 하지도 않고 홀로 인도에 와서 직장을 구하고 새 삶을 꾸리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에블린은 판사 그레이엄의 첫사랑을 찾는 과정에서 그레이엄의 첫사랑과 결혼한 아내(동성애자니까 첫사랑이 남자라 그렇다)가 자신의 남편이 동성애자였고 남편 또한 첫사랑이었던 그레이엄이란 남자를 잊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충격을 먹는다.

그게 부부라는 건데. 비밀 없이 다 알고 있는. 그런데 자신은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에 대해서 남편의 빈공간을 크게 느끼고 남편에 대해 미안해한다. 원래 소중한 사람은 잃었을 때 그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부부 관계라는 게 그런 거 같다. 평생 못 볼 거 다 보면서 살다가 늙어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음을 맞이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먼저 가게 되면(대부분 남자겠지만) 그동안 쌓였던 수많은 추억(이 때는 아마 살아 있을 때는 맘에 안 드는 부분까지도 추억이 될 듯)에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싶은... 살아 있었다면 그 사람은 이랬을텐데 하는...

그러나 그런 감정도 잠시.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 찾아온 부부(정말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부부다.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까 싶은) 중에 남편과 진지한 만남을 갖게 된다. 그렇다 하여 그게 보기 싫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감정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 들어서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는 작업이 아니라 남은 인생의 여정을 같이 갈 수 있는 동반자라는 느낌이 들었기에...


맞지 않는데 부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부부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있다면 더글라스 부부였다. 남편은 전혀 문제가 없다. 부인이 문제지. 정말 이런 부인을 두면 인생이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극성 맞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오만 짜증에 인생을 매우 비관적으로 살아가는... 아으~ 왜 이혼하지 않고 부부로 남았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지만 결국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 지내면서 영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헤어진다. 결국 앞서도 얘기했듯이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이라는 공간은 해소의 공간이라니까. ^^;


배우들 정보 보면 주연에 있지도 않다. 그만큼 비중이 적다. 그리고 등장할 때마다 짜증만 내고. 근데 웃긴 거는 이 여자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온 판사를 사모해서 따로 만난다. 물론 나중에 남편도 에블린(주디 덴치)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게 되긴 하지만 남편은 로맨스라 생각되는데 이 여자는 로맨스가 아니라 불륜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그만큼 캐릭터가 별로다 보니 그렇게 생각이 되는 듯. 그러나 식사를 하러 나간 자리에서(나름 여자는 데이트라 생각했는데) 판사가 동성애자라는 걸 밝히자 잊어버린다. 지는 그랬으면서 남편이 에블린에게 관심 있어 하니까 뭐라고 한다. 참...


육신은 늙었지만 사랑에 대한 열정은 젊은 캐릭터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가장 재밌는 캐릭터들이다. 남자, 여자 각각 한 명씩 나오는데 어찌보면 사기꾼 같기도 하고 그렇다. 남자(맨 오른쪽)나 여자(맨 왼쪽)나 자신을 속이고 이성을 꼬시는 데에만 관심을 가진다. 다만 좀 차이가 있다고 하면 남자는 사랑에만 목적을 두지만(그래서 영국에 있을 때는 나이를 속이고 젊은 여자들과 만나려고 한다. 다 실패하지만) 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꼬시려고 하는 데에 있는 듯. 그래서 그런지 남자는 이국 땅에서 집안 좋은 여자(사진의 중간)와 사랑에 빠진다.

첫만남 후에 바로 같이 살게 된 걸 보고 여자가 어이 없어 물어보니 사랑에 빠진 집안 좋은 여자가 하는 말이 재밌다. 나이가 드니까 뭔가를 빠르게 결정하게 되더라는.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이것 저것 따지고 재기 보다는 일단 행동? 남자가 이 집안 좋은 여자에게 작업 걸 때 하는 말도 재밌다. 돌려서 얘기하지 않고 얘기하겠다. 나는 누구고 외롭다. ㅋㅋㅋ 여자가 대답한다. 나는 누구고 나도 마찬가지다. ㅋㅋㅋ 어차피 알 거 다 아는 나이에 겪을 거 다 겪어봤으니 이심전심이라~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마지막까지 인연을 못 만나는 건 여자 쪽이다. 남자는 이미 집안 좋은 여자와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살기로 했는데 말이다. 그건 아마도 사랑없이 돈을 목적으로 상대를 만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도 굳이 잘 되는 스토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 유일하게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 와서도 일이 풀리지 않는 캐릭터.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 데브 파텔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호텔 매니저로 나오는 인도 배우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이었던 데브 파텔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 싶었다. 매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도 청년으로 나오는데 그의 대사가 정말 재밌다. 너무나 긍정적이라는... 잘 되면 잘 된다고 긍정적이고 잘못 되면 잘못 된다고 긍정적이다. 자기 맘은 이렇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여 부정적이지 않는 모습이 참 천진난만했다. 게다가 얼마나 행동파인지 생각과 동시에 행동을 한다.


지나가다 우연히 에블린(주디 덴치)를 만나 조언을 듣고 뭔가 깨달았는지(깨달았다는 표현을 쓰기는 뭐하다. 워낙에 즉흥적이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캐릭터인지라) 바로 행동에 옮긴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생각나면 바로 실행이다. 그래서 재밌는 캐릭터인 거다. 그에게는 꿈을 이룩할 공간인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에서 뮤리엘이란 투숙객을 만나 투자도 유치하고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게 되니 그에겐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이 해소의 공간이 아니라 희망의 공간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듯 싶다.


예고편



요즈음 영화를 많이 보는 나인지라 어지간해서는 감흥이 별로 없다.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이런 단점이 생기기 마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밌다. 재밌으면서도 강렬하진 않지만 잔잔한 감동도 있다. 아름답다? 따뜻하다? 포근하다? 뭐 그런 느낌의 감동이 아니다. 삶을 한 번 즈음은 돌아보게 만드는 여운이 있는 감동이다. 한 번 시간 내서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