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얘기가 있었는데,
선생님들도 옥상에서 1:1 다이다이(서울 말로는 맞짱)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때에는 그런 경우는 없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통(서울 말로는 짱)은 어느 선생님이라는 것이었고
우리 또래의 통도 그 선생님께는 고개를 수그렸다는...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놀아본 적도 없는데 선생이라는 신분으로
아이들이 함부로 못 덤비니까 마치 자기가 무슨 뭐 되는양
애들 때릴 때 무식하게 때려서 일명 쌍코피, 피바다 식의 별명이 붙었다.
그 별명을 의식해서 그런지 때릴 때는 일부러 더 심하게 때리는 선생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겪어보면 그런 피래미들은 사실 싸움 못한다. 싸워본 적도 없고...
수학여행 때 독종으로 통하는 선생님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상고에서 부산대 영문과를 진학할 정도로
뭔가 한다면 하는 독종의 성격이었고
수업도 특별반(전교 1등에서 50등까지)에 영어를 가르치는 실력 좋은 선생님이었다.
상고 출신이라서 그런지 우리를 잘 이해하고 술 꺼내라 해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야 새끼들아~! 자 새끼들아~!" 하면서 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별명 피바다.
갑자기 우리랑 같이 술먹다가 일어나는 선생님. 달려나가더니 날라차기 한다.
"니가 뭔데 새끼야 애들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노"
그러나 여기까지 언급된 선생들은 죄다 마이너다.
진짜 메이저는 따로 있었는데 우리 학교의 전설로 통하는
일진 클럽 "청바지파" 멤버 출신의 선생님들이 있었다.
어떻게 우리 학교에 선생으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사립학교다. 빽 있으면 된다는 소리다.
어쨌든 그 멤버 출신의 선생님들의 과목은 체육, 음악, 미술과 같은 예능 쪽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음악 시간이었다.
음악실로 내려가니 이 음악 선생님은 매번 뒤에서 녹음한 테이프 틀어두고
따라 불러라고 하고서 뒤에서 다른 선생님들이랑 이야기 하곤 했다.
심심하잖아~ 그래서 또 내가 장난을 쳤지.
마치 음치와도 같이 음정 무시하고 발음도
"아~~으~~~어~~~"하면서 불렀더니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다.
"누구야!"
조용히 다시 제대로 불렀다.
조금 있다가 다시 그랬다.
한참 재밌어서 웃으면서 그러고 있는데 얘들이 노래를 안 부른다.
뒷덜미가 서늘하다.
그래서 뒤를 돌아봤더니 음악 선생님이 서 계신 거다.
소위 말해 X됐다.
"니가 음악을 무시햇!"
앞으로 나가라고 그러더니 엎드려 뻗쳐라는 거다.
음악실 여건이 좋지가 않아 바닥은 울퉁불퉁한 시멘트.
뭐 워낙 그런 벌이나 매에는 이골이 난지라 엎드려 뻗쳤다.
구두발로 옆구리를 차는 거다. 넘어지면서 손에는 피가 났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 덕분이다.
그렇게 몇차례 맞고서는 수업 시간 내도록 그렇게 있었다.
내 성격상 그냥 넘길 내가 아니다.
수업 끝나고 찾아갔다. 체육 선생님 둘이랑 모여서 얘기하고 있었다.
음악 선생님이 그런다.
"뭐?"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뭐 이 새꺄"
순간 체육 선생님 둘이랑 음악 선생님 일어선다.
그러더니 서로 말린다.
"행님 제가 하끼예"(형님 제가 할께요)
음악 선생님이 선배인지라 후배인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거다.
국어 선생님한테는 논리적인 말싸움으로 대들고
힘 좀 쓴다는 선생님들에게는 매를 맞아도 대들고 했던 나라
사실 선생님께 대드는 걸로는 유명했다.(맞아서 기절한 적도 있으니)
근데도 이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들었다.
그러다 결국 체육 선생님이 내 머리를 휘어챈다.
그리고 홱 돌리더니 코너로 몰아부친다.
뒤에는 체육 선생님이랑 음악 선생님 따라온다.
그 체육 선생님 이렇게 얘기했다.
"니가 성격 왜 그런줄 알아?"
머리채가 휘감겨져 얼굴을 하늘로 보고 있는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
"죽도록 안 맞아봐서 그래."
난 아직도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따지겠다 생각하고 가서 그랬던 거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그 때 맞으면서 공포를 느껴봤다.
때리는 선생님들이 세 명이었으니 정신이 없었다.
사실 또래들과 싸울 때도 제대로 한 대 맞으면 잠깐 정신이 없어진다.
소위 말해 별이 보이는 순간인 것이다. 근데 그런 것과는 격이 좀 달랐다.
뭐랄까 공포를 느꼈다. 공포. 그 때 들었던 생각이 이거였다.
'살아야겠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만 달라.'
소위 말해 양아치 부류였던 나였기에 삐딱하게 대드는 경우도 분명히 있었지만
때로는 좀 심하다 싶은 선생의 행동에 꼭 내가 당한 게 아니라도 대신 나서서 대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이거 좀 뭔가 아니다 싶으면 항상 뒤쪽에 앉아 있는 나를 애들이 돌아보곤 한다.
대들어라는 신호다. 또 나는 그런 분위기면 호응을 해줘야 하는 성미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선생님께 대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경우가 생기면 애들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계속 신호를 보낸다.
양아치들과 같은 경우는 말빨이 안 되던지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께 대들지 못하니 나를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날 음악시간이 4교시 때라 점심 시간에 몰매를 맞아 점심도 먹지를 못했다.
너무 점심 시간 늦게 들어간 것도 그렇지만
선생님들한테 몰매를 맞았다는 사실에 억울하기도 해서 입맛이 없었던 것이 더 컸다.
그런 감정 이면에 선생님의 그 말이 계속 생각났던 것이다.
그 말은 그 날 이후 내 머리 속에 깊이 박혀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싸움 좀 안 해보거나 안 맞아본 사람은 모르는 게 있다.
보통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하곤 한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법으로 하면 되지...
그런 논리대로 하자면 내가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전세금을 못 돌려받아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하루만에 받아줬을까?
물론 전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말이다.
그들의 논리로는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법을 어겼을까? 결코 아니다.
그럼 부동산에 관련된 법을 너무 잘 알아서?
그 때의 상황은 집주인이 법을 어긴 상황이다. 안 주고 버티는 거였다.
법을 알아도 작정하고 안 주겠다는 거다. 왜? 상대가 만만하거든.
세상에 법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만 믿고서는 모든 일이 해결될 꺼라는 것은 착각인 것이다.
사실 나를 아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똥 오줌 못가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하는 소리가 있는게 그게 그 선생님의 말이었다.
"니가 왜 그런줄 알어? 죽도록 안 맞아봐서 그래."
그저께 일산 블로거 모임에서도 얘기를 했지만 요즈음 내 안의 파괴 본능이 자꾸 생기는 거 같다.
나름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하면서 꼴 같지 않은 경우가 생기면
많이 참는 요즈음이다 보니 이게 자꾸 쌓이는 듯 하다.
이런 것을 어디 풀 길은 없고 인내를 하면서 배워간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은 정말 스트레스를 한 곳에 해소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