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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 대한 재밌는 논란

최근에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조정래의 "아리랑"을 두고 이렇게 비난했다.

일개 소설가가 이런 엄청난 허구의 사실을 그렇게 당당히 역사적 사실로 소리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영훈 교수와 조정래 작가의 얘기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든다.
(물론 기사로 난 내용만 읽은 것이라 이영훈 교수의 비판과
조정래 작가의 반박 내용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리랑"이라는 소설은 시대적 배경을 과거로 했을 뿐 창작물이다.
역사 소설이라 하더라도 등장 인물이 실존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리랑"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실제 역사 속의 한 부분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실 여부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왜냐면 독자들은 그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이 아니니까 기본 전제를 허구라고 생각한다.
다만 역사적 배경을 사실로서 받아들일 뿐이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의 지적은 그런 역사적 배경이라는 맥락도 아니다.

김제만경평야는 19세기까지 수리시설이 전혀 없던 갈대밭
결국 이영훈 교수가 지적한 사실이 아니라는 부분은
"아리랑"을 읽는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부분이다.

너무 많이 알아서 보이는 부분이지 사실 독자들은 "아리랑"을 다 읽고 나서
그러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소설은 책을 덮고 나면
스토리와 인물 중심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영훈 교수가 사실이라고 한 부분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데서는 크게 무리가 없다는 점이다.
만약 등장 인물이 실존 인물이라면 얘기가 다를 수도 있다.
독자들이 역사 소설에 나온 내용을 사실로 인식하기 쉽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조정래의 반박 내용을 보면
이영훈 교수의 말이 무조건 맞다라고는 못할 부분도 있다.

백과사전과 교과서에 대규모 저수지였던 사적 11호 벽골제는 1천 500여년 전에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이영훈 교수가 조정래를 비난하면서 비교한 인물인
시바 료타로(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저자다. ^^)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보았을 때 이영훈 교수의 비판은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두고 비판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관련기사 : 조정래, 소설 `아리랑' 비판 교수에 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