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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한 템포 느리게 사는 법

예전에는 의식하지 못했을 때는 안 보이던 것이 어떤 상황에 처하다 보니 의식적으로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 템포 느리게 사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면 더욱더 그럴 것이고 블로그에 보이는 나라는 사람은 전혀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근데 글을 적기 위해서 제목을 그렇게 적은 것은 아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항상 "한 템포 느리게 사는 법"을 추구하는 내 삶의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가 물건을 사는 방식이다. 그 중에서 특히나 디지털 기기를 사는 방식이다. 즉 여기서 "사는"이라는 용어는 "live"가 아니라 "buy"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디지털 기기를 살 때는 최신형을 사려고 한다. 즉, 구매 시점에서 최신형을 사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기존에 봐두었던 제품이 있다 하더라도 구매 시점에서 최신형과 비교하게 되고(그게 자의든 타의든) 최신형에 메리트를 느끼게 되면 지름신이 작용하는 경우 많다.

뭐 사실 예전에 여유가 있었을 때는 나 또한 상술에 휩쓸렸든 어쨌든 코트 하나에 300만원을 질렀던 경우도 있었으니 나 또한 예전에는 똑같았었지만, 지름신이 작용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겪어보면서 무언가를 구매할 때는 우선 생각하고 비교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 때 생각한 것이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다.

우선 사람의 심리가 견물생심이라고 좋은 것을 보게 되면 가격에 민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로 내가 살 수 있는 액수를 정해두고 그 속에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일단 디자인이 좋든 성능이 좋든 그게 맘에 들면 액수는 어떻게 해서든 맞추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잘 이용하는 곳이 E-mart 다.

사실 이전의 나같은 경우에는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이것 저것 찾아보고 기다리면서 신경쓸 시간에 그냥 돈주고 사버리고 잊어버리겠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게 이런 거 아니겠냐?" 아마 부족함이 없었던 시절이라 그런 얘기를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에는 TV 볼 시간에 그런 비교를 하고 좀 더 싸게 사면 경제적이고 비교하는 그것 자체도 하나의 재미라 생각이다. 없는 사람들의 재미... ^^

지금은 그렇게 쪼들려서 생활하는 때가 아니지만 디지털 기기 구매는 여전히 "한 템포 느리게 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컴퓨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컴퓨터는 쓰지 않는다. 그것은 최신형 컴퓨터는 그 때 많이 팔지 않으면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때의 가격은 마진이 많이 들어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사실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컴퓨터를 구매하고 나면, 최신형이든 신형이든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똑같은데, 비교를 하면서 최신형에 눈이 가게 되는 것이 사람 심리이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이면 그렇게 구매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기는 대부분 이렇다. 제품 주기가 짧고, 새로운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고, 한 번 사면 일단 반값 취급을 받는... 최신형이라고 사서 쓰고 있다가 보면 내 기기는 똥값이 되어 있고 더 좋은 최신형들이 즐비하다. 그렇다고 또 최신형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구매하려고 하는 그 시점에 최신형이라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선적으로 내가 왜 사려는지 목적을 분명히 하는 편이다. 그 목적에 어긋나면 디자인이 좋든 제품이 싸든 일단 제외시킨다. 그 목적에 부합하는 것 중에서 디자인과 가격을 보고 구입을 하는 편인데, 어느 정도 합당하다 생각하면 구매한다. 보통은 중고부터 검색하고 신품을 검색하는데 일단 최신형이면서도 가격이 적당하고 목적에 부합하면 구매한다.

디자인이 정말 맘에 들어서 이것을 구매하고 싶은데, 가격이 너무 비쌀 경우는 포기한다. 안 사고 잊어버린다. 싸면서도 디자인 봐줄만한 것들 많다. 굳이 그거를 사서 몇 달 쓰다 식상해지는 디자인은 내게는 우선순위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디자인 무척 신경을 쓰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구매하려는 목적과 가격이 내게는 더 중요하다.

가끔씩 마트를 간다. 마트를 갈 때는 둘러보다가 괜찮은 거나 세일하는 거에 아주머니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곤 한다. 난 마트를 가면 항상 살 것만 정리해서 메모하고 그것만 사고 나온다. 다른 것은 안 본다. 물론 장을 보는 우리 시대의 어머님들이야 찬거리 때문에라도 이것 저것 보게 되긴 하지만 난 마트에서 이것 저것 사본 적이 없다. 살 리스트만 적어서 그것만 산다. 설령 두 번 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