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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항우는 왜 유방에게 졌을까? "항우와 유방 3"

항우와 유방 3 - 10점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달궁

2007년 10월 3일 읽은 책이다. 시리즈 3편 중에서 1편보다는 2편, 2편보다는 3편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항우와 유방이라고 해서 너무 극단적으로 대조를 하고 한쪽으로 몰아가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책에서야 나름 객관적 시각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 두 인물을 거론할 때 말이다.

항우도 장단점이 있고 유방도 장단점이 있다. 다만 결과적으로 유방이 승리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배울 점은 배우지만 그것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강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스타일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스타일을 버린다는 것은 약점을 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강점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약점만 지적해서 마치 사람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듯이 보이나 그 약점이 치명적인 것이라면 고쳐지게 되어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가 손해면 결국 고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한 법이다.

시리즈지만 지금까지 읽은 시리즈들과는 다소 내용이 적은 3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라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항우와 유방에 대한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나름 느낀 부분들도 있지만 사실 그 부분들 마저도 다른 역사 소설에서 느껴본 것이라 신선하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는 점 그게 항우와 유방, 초한지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항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껏 들어온 항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서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번도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었기에 초군에게는 거의 신적으로 추앙되었고 항우가 나서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낳게까지 한 것을 보면 항우라는 인간은 장수로서는 그 어느 역사 소설에서도 보기 힘든 입지전적인 인물인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직 힘으로만 사람을 제압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 병사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전투를 통해서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면도 있겠지만 항우라는 인간이 정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왜 1번의 패배로 모든 것을 망쳤을까? 나는 그 핵심에 항우의 성격이나 적과 아군을 나누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성격은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심(民心)을 잃었기 때문인데 내가 볼 때는 항우는 민심을 얻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던 듯 보인다. 전투에서 자신의 병사들을 생각하듯이 민심을 생각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을.

전투 하나만은 능했으면 그것 외에는 다른 이들의 말을 들을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도 큰 잘못이다. 좋은 사람들 주변에 두고서 그들의 능력을 10분 발휘하도록 하지 못했던 부분도 결국 그는 장수로서는 가장 이상적이나 국가 경영을 하는 리더로서는 부적합한 상이었던 것이다. 상대가 비록 적장이라 하더라도 대우를 해주고 높이 사는 것들을 보면 그는 적어도 전투 하나만큼은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다. 근데 문제는 그게 다다.

이는 <야망패자>에서 보이는 다케다 신겐과는 사뭇 다른 부분인 점이다. 당시에 떠오르는 샛별인 오다 노부나가도 그 무용을 두려워했던 다케다 신겐은 적어도 항우와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방

항우보다는 매력적이지 않지만 그가 성공했던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고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보아야할 것은 유방은 그만큼 아는 게 별로 없었고 특별난 구석이 그리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청을 하고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역사 속에 무명의 농민 신분으로 황제까지 오른 유일한 사람이 유방이다. 또한 그의 젊은 시절은 시정잡배에 지나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학문적 소양이 있을 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포용력이 클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출신에서도 보이듯이 그 또한 일반 농민이었기에 민심에 대해서는 잘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이 항우와 비교해서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외에는 그리 인간적인 매력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줏대도 없고 비굴한 모습도 보이고. 그래도 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은 당대를 살았던 내가 아니지만 분명 뭔가 리더다운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 본 유방의 모습은 항우보다는 확실히 매력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패권을 장악하게 된 것도 결국 자신을 따르는 사람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항우가 만약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유방이 천하를 손에 넣는 역사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역사 때문에 '강함은 유함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하지만 너무 이분법적인 사고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항우가 장수이면서 리더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신

3편에 언급된 인물들 중에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인물이다. 사실 유방에게 한신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하는 가정을 해보면 천하를 논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한신은 유방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그런 한신이 시정잡배인 유방처럼 자신의 제국을 세우겠다는 생각만 했어도 혼란을 틈타 충분히 이룩할 수 있었던 타이밍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참모가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한신이 제국을 건설하게끔 독려한 참모가 있었음에도 그를 인정해주고 기회를 줬다는 것 하나 때문에 유방을 뛰어넘을 수 있었으나 배신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는 참 이해하기 힘든 발상이다. 그만큼 유방이라는 존재가 따를만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한신이 항우 밑에 있었기 때문에 항우가 그런 인재를 일찍 발탁해서 중요한 데에 쓰지 못했다는 점이 항우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 한신이라는 인물에게 괴통이라는 참모가 있었는데 그의 말이 참 의미심장하다.

한 제국이 성립한 후, 찌르레기와 직박구리 무리 속에 어떻게 독수리가 섞일 수 있겠는가. 독수리는 반드시 중상모략으로 죽게 될 것이다.
독수리는 한신을 뜻한다. 그만큼 한신은 뛰어난 사람이었다. 물론 책 속에서 보이는 작가의 해석에는 그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되어 있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볼 때 한신이 누구에게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고 스스로 패권을 차지할 여건이 충분히 될 정도로 세력을 형성했던 인물이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그런 독수리가 평화 시대에는 찌르레기와 직박구리 무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인데, 그게 실제 현실이 되어 버린다. 훗날 여태후(유방의 부인)의 모략에 휘말려 목이 날아가는데 그 때 한신은 괴통의 말을 떠올리며 후회를 했다 한다. 혼란의 시대와 평화의 시대에는 그 시대가 지향하는 인물이 다를 것이다. 그것은 진의 작위제도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너무 뛰어나도 무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갖은 모략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보면서 참 인간세상이라는 것이 이리도 각박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이 어울려서 사는 세상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