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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TV를 보다가 옛 은사님을 뵙다

風林火山 2009.01.31 04:06
어제인가 그저께인가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얼었다.
"어~ 어~" 하면서 손가락으로 TV를 가리켰었다.
내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화면에 나오는 거였다.
무슨 방송이더라. 지역별로 돌면서 나오는 거였는데...
암튼 그래서 부산쪽에 소식을 전하는데 나오는 거 아닌가?

그 선생님은 나를 알아봐준 최초의 선생님으로
그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내가 없었을 정도로
나에게는 은사님이신 분이다.
내 평생에 은사님은 딱 두 분 계시는데 그 중 한 분.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그 때 내가 반장을 하긴 했지만 내게 공부를 할
동기부여를 제공해줬던 분이셨다.

선생님은 담당 과목이 국어였고,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분이다.
항상 쉴 때는 책을 읽으셨던 선생님.
수업에서도 주입식 교육을 하기 보다는
자꾸 질문을 던지면서 참여를 유도했던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우리 나라 교육이 그러하듯이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있으면
질문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먼 산을 바라보며 지휘봉으로 교탁을 탁탁 치면서
질문을 하지 않는 그런 상태를 매우 탐탁치 않게 여기셨던 선생님.

나 또한 그 당시는 어렸기에 질문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선생님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해서 무작정 손들고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질문이라도 그 질문에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기에
그 다음부터 나 이외에도 질문을 하는 애들이 점점 늘어났었다.

어린 시절이지만 그 당시에는 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참 많았던 듯 싶다.
항상 시험을 치고 나면 짐을 싸서 전부 다 뒤로 보내고 난 다음에
1등부터 교탁 바로 앞에 순서대로 앉히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꼴지는 1등 옆에 앉혔다.

그게 경쟁 심리를 자극시키려고 그랬던 것이라 생각해서
나는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 옆에는 항상 꼴찌가 앉았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나더러 꼴찌 공부 좀 가르쳐주라고 하신다.
경쟁 심리 자극하려고 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어쨌든 가르치는 방식이 조금은 남달랐던 부분이 많았던 선생님이셨기에
이번에 방송에 나온 것도 동성고인가? 하는 곳에서 새롭게 도입한
교육의 효과를 방송하는 것인지라 충분히 수긍이 갔다.

사실 고등학교 때 삐딱한 길로 나가기 시작했던 지라
그런 것이 걱정되었던 어머니께서 선생님께 전화를 하신 적이 있었다.
아무리 선생님과 학부모의 관계였지만 남다른 애정으로 대해주셨기에
선생님과 학부모 그 이상의 관계였던 지라...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돈을 주고 하지는 않으셨다.
그랬던 어머니였기에 초등학교 때 나는 정말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았었다.)

어쨌든 그런 어머니의 전화에 선생님의 답변은 이러했다고 한다.
"어머님, 절대 걱정하지 마이소. 걔는 그냥 가만히 놔두면 지가 알아서 할낍니더."
항상 주체적인 사고로 행동했고 아니다 싶으면 물러섬이 없었고
고집 또한 쎘던 나였지만 선생님은 남자가 그래야 한다며
선생님의 아들들도 나같은 성격이었으면 한다고 얘기하셨단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셨던 선생님이기에
나는 선생님을 한 인간으로서 장단점을 따지기 보다는
내게는 은사님으로서 내게 주신 사랑만 기억할 뿐이다.

예전에 23살인가 24살 때 찾아뵌 적이 있다.
당시에는 대표이사였기에 성공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뵙지를 못했다.
사실 지금은 사회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예전보다 못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기에
충분히 떳떳하게 만나뵐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화면으로 보기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진 모습이어서 다행이다.
벌써 20년 전의 얘긴데 그 때 이후로 늙지도 않으신 듯. ^^
언제 부산을 내려갈 지는 모르겠지만
부산을 내려가게 되면 꼭 찾아뵈야겠다...
비록 예전만큼 겉으로 보여줄 것은 없겠지만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게 성장했다는 것만큼은 분명 느끼실 분이기에...
다음 번에 뵙게 되면 꼭 내 블로그 주소를 가르쳐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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