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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대로 쓰자! 한글 맞춤법 (5) 선릉역 발음 설릉역이 맞을까? 선능역이 맞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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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대로 쓰자! 한글 맞춤법 (5) 선릉역 발음 설릉역이 맞을까? 선능역이 맞을까?

風林火山 2012.09.30 17:30

아. 이건 정말 사연이 있는 거다. 얘기하자면 이렇다. 선릉역 인근의 공기업에 다니는 선배의 결혼식 때문에 선후배들이 모였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벌어진 일이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한 명은 결혼한다는 선배, 한 명은 KAIST MBA 나온 동기, 한 명은 교육기업에 다니는 후배, 그리고 나. 다들 발음을 선능역이라고 하는데 나는 설릉역이라고 했었다. 그러다 어떤 게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3명은 선능역이라고 하고 나만 설릉역이라고 해서 내가 잘못됐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발끈해서 니네들은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뭐했냐고? ㄴ과 ㄹ이 만나면 앞의 ㄴ이 ㄹ로 되는 거 모르냐고. 이걸 자음 동화라고 하고 그래서 선릉역 영문 표기를 보면 영문 표기는 발음대로 하니까 Seolleung이라고 하는 거라고 그랬는데 아니라고 하는 거다. 근데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아니라고 우기니 환장할 수 밖에. 그 때문에 나중에 누가 맞는지 뒤적거려봤었던 기억이 있다. 틀렸다 맞다를 떠나 어떤 근거를 대지도 않고 그냥 4명 중에 3명이 그러니까 나만 바보되더라는 거. 어이 없어서 참.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선능 X, 설릉 O

표준 발음법 제5조. 음의 동화
제20항. 'ㄴ'은 'ㄹ'의 앞이나 뒤에서 [ㄹ]로 발음한다.

내 말이 맞다. 자음 동화 현상으로 ㄴ과 ㄹ이 만나면 앞의 ㄴ이 ㄹ로 발음을 해야 한다. 이를 자음 동화라고 하고 비음인 'ㄴ'이 유음이 'ㄹ'이 되었으므로 유음화라고 하며, 앞의 자음이 바뀌었으니 역행 동화라고도 하고, 변해서 같은 자음으로 발음하니 완전 동화라고도 한다. 내가 근거를 갖고 얘기했던 그대로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단어들은 'ㄹ'을 [ㄴ]으로 발음한다.

의견란[의ː견난]
임진란[임ː진난]
생산량[생산냥]
결단력[결딴녁]
공권력[공꿘녁]
동원령[동ː원녕]
상견례[상견녜]
횡단로[횡단노]
이원론[이ː원논]
입원료[이붠뇨]
구근류[구근뉴]

선릉은 없지? 응? 그래서 설릉이라고 읽어야 표준 발음법에 맞는 거다. 됐냐고? 응?


근데 재미난 기사가 있다

위와 같이 표준 발음법에 맞는 발음 때문에 지하철 안내방송이 틀렸다고 지적한 1993년 7월 30일자 경향신문의 기사가 있다.


근데 1997년에는 선릉역을 선능역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신문 기사가 있다.


내용을 보니 국립국어연구원에서 4대째 서울에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 3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대상자 30명 전원이 지하철 2호선 '선릉'의 안내방송 '설릉'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는 거다. 그리고 제안한 발음이 '선능'이라는 것. 이거 보고 정말 어이 없었다. 표준 발음법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면이 없지 않다만 기준이 명확하게 있는데 그걸 지키지 않고 지 맘대로 부르면서 다수결로 따르자고? 이거 뭐 내가 택시에서 선후배랑 있었던 일과 똑같잖아?!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외래어 표기법에나 더 신경 쓰시라고. 나름 알게 되면 나도 고쳐쓰고는 하는데, 예를 들면 한 때는 '컨텐츠'로 표기했다가 알고 나서는 '콘텐츠'로 표기하는 식이 그렇다. 이 정도는 뭐 그래도 이해할 만한 수준이지만 어이없는 외래어 표기법 많거든? 갑자기 예시가 생각 안 나네. 가끔씩 포스팅하다가 찾아보곤 하는데 그러면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게 표기하지를 못 했던 경우도 있다. 좀 외국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 중심으로 표기하는 게 낫지 않겠어? 콘텐츠야 뭐 영국식 발음이라고 생각하니까 이해한다지만 말이지.

그런 거나 신경 쓰지 이미 정해진 규칙을 국어 공부 시간에 딴 짓거리 한 애들 말 듣고 그걸 따르자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8 Comments
  • 언어학도 2013.02.24 13:38 신고 재미있는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정답(?-사실 정답이란건 없다고 봅니다만)은 양쪽 다 맞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표준어 규정을 근거로 제시하신건 바람직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말/한국어 뿐만 아니라 어느 언어이든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세대에 따라서 (언어에 따라서는 성별에 따라서도) 언어현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어의 경우 표준어 규정에서처럼 'ㄴ+ㄹ', 'ㄹ+ㄴ'이 서로 동화되어 'ㄹ+ㄹ'로 되는 설측음화(舌側音化; lateralization)/설측음화에 의한 동화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세대 또는 주변 사람들의 말 (교육도 포함하여) 등에 따라서 관찰되는 바에 의하면 세대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설측음화 (ㄹ, ㄹ) 의 예외(?)로서 친구분들의 경우처럼 "설릉"을 /선능/으로 발음하는 분들도 나타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말씀하신 예외규정의 "의견란/의견난/", "횡단로/횡단노/"와 같은 두 개 이상의 형태소 결합의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 개 형태소 내부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듯 합니다.
  • Favicon of http://lsk.pe.kr BlogIcon 風林火山 2013.02.25 10:17 신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둘 다 맞다고 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데 말이죠. ^^; 둘 중 하나를 맞다라는 잣대로 들이대니까 근거를 댈 수 밖에 없게 되더라구요.
  • 공무원 2013.07.09 08:51 신고 표준 발음법에 따르면 [선능]이 틀리고 [설릉]이 맞습니다.
  • Favicon of http://lsk.pe.kr BlogIcon 風林火山 2013.07.09 23:41 신고 아 그런가요? 그럼 제 말이 맞는 게 되는군요. ^^;
  • 댕기동자 2014.03.05 23:25 신고 하하 저랑비슷한 경험있으시네요 저는 경상도 사람인데 설릉이라고 발음하니 서울토박이들이 모두 비웃더군요 선능이라고 ㅋ 틀린건 아니었군요 ㅎㅎ
  • Favicon of http://lsk.pe.kr BlogIcon 風林火山 2014.03.05 23:54 신고 어떻게 보면 서울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표준어를 쓰는 게 아니라 남들이 부르는 걸 쓰다 보니 그런 거 같습니다. 절대 틀린 게 아니지요. 근데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웃어대니 어이가 없을 수 밖에요.
  • BlogIcon 평창동 에이스 2014.12.02 15:36 신고 표준발음법이 뭔지 모르지만 문제가 있네요.
    한자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면.... 선조들은 宣자를 안썼을걸요.
    요즘 뉴스에서 올라인뉴스, 월룸... 들으면 짜증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거 정리가 늦어지면 우리문화의 혼돈이 우려됩니다.
  • 나도언어학돈데 2016.03.13 00:10 신고 나이와 세대에 따라 발음 달라지는 것은 문체론적 이형태를 말합니다. 그것은 이형태의 한 종류이지 선릉의 발음을 설명하는 절대론적 근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표준발음법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음이 바뀐다면 논의에 따라 둘 다 허용하거나 발음법을 바꾸겠지요. ㄴ+ㄹ과 ㄹ+ㄴ이 만날 때의 소리 변화는 수의적입니다. 선릉은 ㄴ과 ㄹ의 예이므로 ㄴ+ㄹ의 경우를 들면 ㄴㄴ이 되거나 ㄹㄹ의 소리변화가 있습니다. 음운론적으로 울림이 큰 것에 작은 것을 닮아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ㄴ이ㄹ로 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ㄹ이ㄴ이 되는 것이 예외적 현상이라는 거죠. 선릉의 경우 앞의 소리는 뒤의 소리보다 울림이 크거나 최소한 같아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 ㄴ을 ㄹ로 동화시켜 울림을 같게 만든 경우로 선릉이 설릉으로 소리나는 데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선능를 선능으로 내는 화자는 소리를 더 쉽게 내기 위해 울림이 큰 ㄹ을 ㄴ으로 동화시킨 예로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또한 위의 언어학도 분이 말한거처럼 음운론적 현상을 설명하는데 굳이 형태론적 근거를 끌어오고 싶다면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규칙화하고 싶다면 형태소 내부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일정하고 무조건적으로 일어나야합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우리 국어는 형태소 내부에서 일어나는 공시적인 음운현상은 없습니다. 표준발음으로 인정하지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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