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영화

12인의 노한 사람들: 참 많은 걸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걸작 (1957)


나의 3,131번째 영화. 매번 영화 꼴리는 대로 보다가 고전 명작들은 한 주에 하나씩 보고 연재하기로 맘 먹고 본 첫번째 고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전을 안 본 건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보기로 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는 거. <12인의 노한 사람들>에 대한 사전 지식 전혀 없이 일단 봤다. 내가 모아둔 고전 명작들 중에서 하나 골라서 말이다. 근데 어우~ 이거 걸작이다. 내가 걸작이라고 하는 건 단순히 영화사적인 의미가 있다 뭐 그런 거 아니다. 대중적이면서도 좀 깊이가 있다 즉 생각해볼 만한 게 있다는 거다.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지. 그렇다고 해서 어려우면 안 된다. 그러면 대중적이지 못하니까 말이다. 간만에 개인 평점 10점 만점을 준다. 참고로 아래 내용에 스포일러 없다. ^^;



유명 배우의 명연기? 그런 거 이 영화에는 없어!


<12인의 노한 사람들>에서 유명한 배우라고 하면 단연 헨리 폰다일 거다. <12인의 노한 사람들>로 1958년 11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인데, 사실 이건 내가 찾아봐서 알게 된 거고 <니나>, <위험한 독신녀>란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브리짓 폰다의 할아버지다. <12인의 노한 사람들>에서 주연이긴 하지만 헨리 폰다의 연기는 눈에 안 들어온다. 왜? 연기를 못 해서? 아니다. 그만큼 <12인의 노한 사람들>은 탄탄한 스토리의 전개에 집중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12인의 노한 사람들> 보면서 난 문득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떠올랐다. 고작 5명의 배우들로 만든 걸작 <라쇼몽> 12명의 배우들로만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스토리를 전개시키는데도 걸작이라고 할 만한 영화 <12인의 노한 사람들>. 뭔가 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만큼 나에겐 스토리가 중요하다. 재미있으면서도 울림이 있는 그런 스토리. 아,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감동적이거나 그런 건 아니다. 울림이라고 하는 건 슬플 때 우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공명, 메아리 그런 뜻의 울림이다.




모두가 'Yes'라고 할 때, 혼자만 'No'


<12인의 노한 사람들>의 영어 제목(원제)도 <12 Angry Men>으로 직역한 거다. 과연 12명은 왜 분노했을까?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그러니 제목 보고 유치하지 말고 영화를 보길 바란다. ^^; 서로 아웅다웅하는 과정 속에서 엿볼 수 있는 게 많다. 뭐 이런 거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오직 한 사람만이 '아니오'라고 하는 게(이걸로 광고도 있었지? 유오성이 나왔던 광고였나?) 줏대 있어 보일 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고 그에 대한 근거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나름의 논리를 갖추어야 하는 거다. 나는 논쟁을 굉장히 즐겨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게 없었던 듯 싶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논쟁해서 좋을 거 하나 없다 보니 그냥 조용히 지내면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데, 내가 예전에도 얘기했듯이 나의 의견과 반대 의견이라고 해서 싫은 게 아니라 논쟁의 자세가 안 되어 싫은 경우가 많다.

반대 의견이라고 하더라도 논리를 갖추고 있으면 들어볼 만한 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야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내 사고력도 향상되는 건데, 논쟁을 하면 대부분 꼬투리 잡기 식이고 상대의 흠집 내기에 급급하다. 나는 핵심을 여기에 두고 이런 얘기를 했는데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 잡으려고 핵심은 도외시하고 뭐 하나 걸려라는 식으로 별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을 끄집어 내어 화제를 돌리기나 하고. 이런 수준 낮은 사람들하고는 논쟁할 가치가 없다. 사실 수준이 되는 사람들끼리의 논쟁은 논쟁이 아니라 토론에 가깝다. 왜? 서로의 내공을 인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왜 내공이 높은 저 양반이 그런 판단을 했을지 궁금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거든.

고로, 틀려도 논리를 갖고 틀리는 게 중요하다. 몇 년 전에 내가 글로 남겼듯이 말이다.



가능성의 문제를 확신의 문제라고 보지 마라


이런 경우 정말 많다. 이건 내가 맞다고 믿는 순간부터 그렇게 되는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걸 강하게 얘기해버리면 자기가 한 얘기가 있기 때문에 자꾸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식으로만 해석하게 되는 거란 얘기.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과도 일맥 상통한다. <12인의 노한 사람들>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정말 잘 보여주는데 문제는 그래도 상대의 얘기를 경청해보고 자신의 판단을 그래도 바꾸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거.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영화니까. 여튼 여기서 중요한 건 헨리 폰다의 대사 속에서 잘 나온다. 이렇다고 확신을 하는 게 아니라 가능성 즉 possibility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자는 거다. 당신이 확신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가능성의 문제인데 왜 당신은 확신을 하느냐는 거지. 내가 잘 써먹는 건데. ^^;


똑똑한 사람 한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으면...


<12인의 노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12명 중에서 소신있으면서 오픈 마인드의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가 헨디 폰다가 맡은 배역이고. 그리고 나머지 중에서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다가 '음. 일리 있네'라고 생각하고 그의 얘기가 맞다는 게 아니라 일단 좀 더 들어보자고 했던 할아버지는 그 다음으로 소신있고 오픈 마인드의 소유자고. 나머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사람들이 반이고 나머지는 고집 피우는 사람 반이다. 듣기 싫다 이거지. 자신은 이렇게 확신하고 있는데 뭔 개소리냐는 거지. 이거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부류를 보면서 '군중심리'가 떠올랐고, 남의 얘기는 안 듣고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그러면서 자신들은 소신있다고 생각하지. 근데 오픈 마인드가 아닌 게 문제라고) 이들을 보면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떠올랐고.


나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한다. 누군들 선호하지 않겠냐만 똑똑하다는 기준이 좀 다르다. 좋은 학벌, 좋은 직장, 많은 연봉 이런 거는 똑똑함과는 거리가 멀다. 혹자는 똑똑하니까 현재의 사회적 기준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이나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할 수 있을 지 몰라도 그건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똑똑하지 못해서다. 그래서 나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얘기하기 보다는 내공이 깊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가끔씩 내가 적는 글에 '수준 낮은'이라고 하는 표현은 내공이 깊이가 얕다는 걸 말하는 거다. 문제는 나는 살면서 똑똑하지만 잘못된 생각 즉 가치관, 인생관을 가진 사람을 많이 봤다는 거다. 그래서 <12인의 노한 사람들>의 헨리 폰다 역을 보면서 <12인의 분노한 사람들>에서는 좋게 그려졌지만 이걸 이용하는 이들도 꽤 있다는 거(현실 세계에서 말이다) 그걸 지적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내가 소시오패스로 분류하는 이들. 그들은 자기만의 완고한 논리를 가진다. 그 논리를 내가 깨지 못해서 대응을 안 하는 게 아니다. 상종을 안 하는 거지. 그네들은 항상 대응 논리만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피해나가는 데에 필요한 논리만으로 무장을 한 이들이다. 똑똑해서 논리를 가진 게 아니라 항상 그런 것만 쫓다 보니까 경험상 터득이 된 건데 문제는 그 논리의 패턴이 몇 개 없다는 거다. 왜? 똑똑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사람들 즉 남을 속이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패턴만 있으면 다 먹히거든. 그러니 그 논리의 패턴들이 다양해질 수가 없는 거다. 몇 개만 갖고 있으면 대부분 대응이 가능하니까. 근데 정말 웃긴 거는 거기에 사람들이 넘어간다는 거다. 그게 문제인 거지.

사람들이 똑똑하지 못해서 당하는 게 아니다. 그네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남을 속이면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당하는 거다. 그건 똑똑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가치관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똑똑한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갖고 페이크해서 논리 정연하게 얘기하는 게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성적인 사고 그런 거 보다는 철학적인 사고를 더 중요시할 수 밖에 없는 거고. 즉 논리를 갖고 있으면 들어볼 만하다는 이성적인 사고의 접근보다는 저 사람은 어떤 의도로 논리를 만들까를 생각하는 철학적인 사고의 접근이 더 우선이라는 거다. 즉 그의 머리 속에서 나온 말의 논리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 머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즉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게지.

참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영화였다. 물론 그러한 생각들을 예전에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만큼 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해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건 쉽지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즉 생각의 깊이 차이는 있겠지만 <12인의 노한 사람들>을 보면 이러한 류의 생각들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단순한 재미로만 보기 보다는 재미있게 보면서 또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12인의 노한 사람들>을 제대로 만끽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사적 의미? 난 그런 거에는 전혀 관심 없다고. 강추하는 영화니 한 번 보길 권한다.


예고편



+ '고전 명작들' 연재는 매주 일요일에 연재할 예정이다.
+ 고전 명작들 리뷰들만 보기 → 리뷰가 있는 80년대까지의 고전 명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