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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주관을 밝히는 것이라 남들과는 충분히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것은 내 생각이 나는 더 낫고 충분히 더 많은 사람에게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점이라는 최악의 점수를 준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사랑이야기인가? 사랑과 집착에 대한 영화인가? 도대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유로운 사랑이야기? 뭐? 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재미도 없다. 차라리 미국 영화에서 아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그 어떤 것을 봐도 이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영화에 1점을 준 데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줄과 짐이 사랑한 한 여인 까트린이라는 여인의 사랑 행각이 더럽고 이해가 안 되서이다. 한 여자의 사랑 행각을 위해서 부부이면서도 친구로서 아내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애인이 되는 것을 바라만 보는 남자 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이면서도 연인으로 발전하는 짐. 그리고 자신의 남편에게도 떳떳하게 다른 남자들과 교재를 하는 까트린. 생각 같아서는 머리끄댕이 잡아서 그냥 확 패죽이고 싶은 년이다.
나 또한 자유분방하다. 까트린이라는 여자의 행각을 이렇게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유분방해서가 아니다.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아내로서의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지 않은 자유분방함은 방종이라는 것이다. 또한 남편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다른 남자를 꼬시고 교재를 맺는다는 것 또한 이 년이 얼마나 사상적으로 더러운 년인가를 보여주는 셈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스포일러성이 되겠지만 마지막에 짐과 함께 차를 타고 자살하는 것은 마지막에 짐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질투심에서 그러하지 않으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영화를 죽 지켜보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도무지 이 영화에서 뭐를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그러니 사랑을 이렇게 하면 종말이 이렇게 된다는 것인가?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더럽게 영화를 만들어야 되는가?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는가? 영화보고 기분 드러워 죽겠네...
다음은 "영화 매니아라면 봐야할 영화 100편"에 있는 논평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이다.
1953년, 73살의 앙리 피에르 로셰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첫 소설 <쥘과 짐>을 발표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당시 21살, 랑글루아가 만든 시네마테크의 악동이자 앙드레 바쟁의 <카이에 뒤 시네마>로 평단에 입문한 그는 이 소설을 언젠가 반드시 영화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61년, 트뤼포는 기어코 그 꿈을 이루게 된다. <쥘과 짐>은 두 남자와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상투적인 멜로드라마에서 닳고 닳도록 써먹은 소재다. 그러나 트뤼포는 진부한 삼각관계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여성의 자유와 그에 대한 남성의 반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쥘과 짐>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쥘이나 짐이 아니라 카트린이다. 쥘 그리고 짐과 친구이자 부부, 연인의 관계를 유지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카트린은 이상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누구에게 이해를 바라기보다는 행동으로 여성의 '해방'을 쟁취하려 했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문화적 순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불안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유럽의 시대, 사회적 배경은 그가 설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사실 카트린이 이루려고 했던 자유는 쥘과 짐이 스스로에게 던진 과제이기도 했다. 그 과제를 카트린만이 목숨을 던져가며 쟁취하는 것이다. <쥘과 짐>에서 가장 강력한 나름대로의 자기해방이기도 하다. 그래서 카트린은 쥘과 짐에게, 아니 트뤼포에게 아나키스트이며 동시에 대지의 어머니다. 이처럼 60년대 그의 영화 속의 여성들은 매우 지적이며 또 남성들에 비해서도 훨씬 당당하고 진취적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여성을 이해하는 척 하려 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려 한다. 트뤼포의 관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삼각관계는 필연적으로 소외를 야기하는데 트뤼포는 이를 언어의 문제로 파악한다. 쥘의 독일식 액센트는 그를 타자와 분리시키고 쥘과 짐은 다른 트뤼포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언어가 가장 중요한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카트린의 문제는 언어로는 풀리지 않는다. 확실히 트뤼포는 같은 랑글루아와 바쟁의 아이면서도 고다르처럼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성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쥘과 짐, 카트린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가장 기초적인 정치집단, 즉 가정에 대한 관심의 일면이기도 하다. 정치란 가정에서 시작되며 따라서 사랑 이야기는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결혼이 불완전한 제도임을 인정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에 대한 대안도 부재한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카트린의 죽음은 '성의 정치'에 관한 항거다. 르누아르로부터 일상적 삶의 시각적 표현에 대한 열정을, 히치콕으로부터 영상의 힘과 감각을 배운 호모-시네마티쿠스 트뤼포는 이러한 그의 주제의식을 때로는 서정적 스타일로 또 때로는 낯선 사진적 효과와 편집효과(스톱 프레임, 스위시 팬, 점프 컷 등)로 엮어나간다. 말하자면 대중성을 충분히 갖추면서도 누벨바그의 실험적 정신을 잃지 않는 조화로움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쥘과 짐>은 누벨바그 영화를 따분하게 생각하는 대중들에게조차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 <필자: 김지석/영화평론가·부산예술학교 교수> |
나 참 이 평론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뭐랄까 이런 것 같다. 실제로 감독이 그런 의도로 만든 것이 아닌데, 누가 이 영화는 대단하다 하면서 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니 감독도 정확하게 봤다 내 의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식으로 맞장구를 치는 격이랄까? 도무지 이 평론을 agree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어느 장면 또 어디를 봐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참 인간의 뇌는 신비하나 또 이런 것들이 평론이라 칭하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우선 까트린을 무정부주의자인 아나키스트, 이상주의자라고 본다. 물론 이 평론을 읽고 생각을 그렇네라고 긍정으로 바꾸면 그렇게도 보인다. 그럼 내 평론가에게 얘기하고 싶다. 니 마누라가 자유분방하게 남과 교재하고 다니면 아나키스트고 이상주의자냐? 가족이라는 것을 정부라고 생각하고 어떠한 제도라는 틀이라고 생각해서 벗어나려고 그런다면 너한테는 그게 아나키스트로 보이냐? 지랄같은 소리인 거다. 웃기는 얘기인 거다.
벌써 여기서부터가 틀렸기 때문에 나머지는 볼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것을 전제로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좋아하네. 까트린이 목숨을 바쳐서 쟁취하고자 한 거? 좋아하네. 나 참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한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놓고 그 외에 3남자와 관계를 가지고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짐이라는 친구와 또 사랑을 하게 되고, 짐이 돌아서자 자살을 택하는게 도대체 뭘 쟁취하고자 하는 건데? 짐이라는 남자와의 사랑? 뭐?
또 이 영화는 누벨바그 영화라고 하는데, 누벨바그라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누벨바그 : 1957년경부터 프랑스 영화계에 일어난 새로운 물결
핵심은 이거다. 젊은 영화인들이 전통적인 영화에 대항하여 새로운 영화제작을 시작한 것. 젊은 영화인이라는 것과 전통적인 영화(그 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영화 속의 일관된 사상)에 대항하여 만든 영화라는 것인데, 그럼 그 시대에 젊은 사람이 만든 포르노가 누벨바그가 되겠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게 누벨바그라고 명명하고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하는 것도 결국 영화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만들어 놓은 하나의 허상일 뿐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영화로서 감흥이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서 메시지를 주고 감동을 주고 그럼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행동이 바뀔 수 있다면(좋은 쪽으로) 그게 영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각박한 시대인 요즈음에는 재미라는 요소 흥미라는 요소도 중요하게 작용을 하지만 말이다.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영화다. 그래서 1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자의 그런 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아내가 그런다고 내 친한 친구가 맞장구 쳐주는 그런 남자새끼 용납 못 한다.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애 거의 최악의 영화가 아닌 듯 싶다. 1점은 내 평생 5손가락 안에 속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