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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남한산성 - 10점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주화파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매우 냉정한 시선으로 개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를 두고 우리가 해석을 할 때는 결과론적인 해석이 되기가 쉽다. 이미 우리는 과거에 대한 많은 해석을 알고 있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김훈 작가는 매우 냉정하게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기에 어느 누가 옳고 그르다 무엇이 더 나았다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작가 나름대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견해는 있을 것이나 오히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견해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독자가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그 상황을 그만의 필치로 매우 적나라하고 냉정하게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에게 생각해보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작가는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그른가 라는 것보다는 우리의 역사에 이러한 치욕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을 하는 것 같다.

어떠한 의도에서 이 소설을 적었든지 이것이 꼭 과거의 역사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라는 것은 반복의 산물이고, 과거의 사실로부터 배운 교훈을 현실에 접목하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과거는 객관적인 자아로서 접근하지만 지금 닥친 현실에서는 이해관계와 감정, 이념등의 여러 주관적인 생각들이 개입되기 때문이 아닐까?

당시에 처한 상황에 나라면이라는 주관적 생각을 접목시켜서 이해한다면 단순히 주전파, 주화파들이 말장난과도 같은 말싸움이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꼭 이런 얘기를 통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좋은 얘기를 통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 상황에 대한 묘사와 말들이 너무나도 잘 그려내었고 매우 냉정하게 우리 역사에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치욕적인 사건을 잘 그려내었기에 꼭 한 번 필독해라고 권하고 싶다.


참모의 역할

적어도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누가 옳다라는 견해를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소설에서 보여준 대립 속에서도 매우 양쪽이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얘기를 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도록 작가가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 초반에 인조와의 대화 속에서 어느 누구던지 핵심을 벗어난 얘기로 그들이 말로만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또한 책의 머리말에 작가는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이로 인해 결국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참모들로 인해서 이런 치욕적인 결과를 도래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끔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치 않는다. 초반에 보이는 부분은 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고 만약 그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소설을 진행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들 때문에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볼 수도 없다. 아무리 우리가 강한 국력을 갖고 있는 나라라 하더라도 세계 최고가 아닌 이상 그런 상황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기업이 매우 드물듯이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항상 강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더 강한 민족이 침입하여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서 그들의 말이나 행동이 어떠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그들이 믿는 바대로 주장을 폈을 뿐이다. 또한 한 쪽으로 쏠림을 한 것도 아니고 첨예한 대립을 통해서 서로의 논리를 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조직 생활을 할 때도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면 리더로서 선택의 폭은 좁아지게 마련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그들이 그런 논리를 펴고 싸우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보인다.

우리가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도 얼마든지 겪는 일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주장을 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들이 믿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주장을 폈을 뿐이다. 단지 우리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해석하려고 하면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저런 말장난을 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결국 인조가 삼전도에서 예를 올릴 때는 주전파의 예조판서 김상헌이든 주화파의 이조판서 최명길이든 모두 다 패배자였던 것이다.

패배자였지만 그들은 참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리더의 판단을 위해서 자기가 믿는 바를 주장했고 그 믿는 바가 결코 사사로운 이익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함이었다는 것이기에 결론적으로 모두 다 패배자였을 지언정 그들의 말과 행동을 두고 누가 뭐라할 수 있는 꺼리는 아니라고 본다.

결국 어떤 누가 옳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함도 아니고 말싸움이 허튼 짓이라고 얘기하기 보다는 이러한 치욕적인 역사적 사실에 있다고 더 포인트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삼전도에서 인조가 누르하치에게 행했던 예를 매우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냉정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는데 누르하치와 인조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읽는 이로 하여금 매우 치욕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도록 잘 그려내고 있다.


인조의 리더십

소설에서 보이는 인조를 보면 줏대없이 신하들의 얘기를 들으려고만 하는 나약한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리더다. 리더가 너무 강한 카리스마를 소유하고 있으면 신하들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되고 아부하는 신하들이 생기기 쉽상인 것이다. 어느 얘기던지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리더로서 매우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보이는 인조라는 인물은(역사적 평가의 인조는 도외시하고서) 매우 사려가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부분들이 꽤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신하들에게 의지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자신도 깊은 고민을 한 후에 최종적으로 삼전도로 나가겠다고 하는 결의를 한 것은 그만큼 그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런 리더십이 지금 시대에도 요구되는 리더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소설이기에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작가가 그려낸 허구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읽었다. 그래도 소설 속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김훈이라는 작가의 필치로 다시 그려낸 그 때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리얼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위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수어사 이시백이나 대장장이 서날쇠등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면서 매우 객관적으로 그 때의 상황을 묘사하려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객관적이다 못해 우리의 치욕적인 과거를 매우 담담하고 냉소적인 표현들로 그려내고 있어 오히려 더 치욕적으로 느껴지는 듯 하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자칫 국가라는 영토의 테두리에 포함된 우리만을 위한 국수주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준비를 하고 힘을 기르는 이유는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런 치욕의 과거를 통해서 작가가 얘기하고자 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