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

역사 왜곡에 있어서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

이 글은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를 읽고 리뷰 형식으로 적는 시리즈 중의 하나로 아래의 글과 연결된 시리즈이다. 제목을 바꾼 것은 이 글의 내용은 리뷰라고 보기보다는 광개토대왕비문 변조설에 대한 내 생각들로만 채워져 있기에 이렇게 바꾼 것일 뿐이다.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김병기 지음/학고재


'요코 이야기'

얘기를 하기에 앞서서 일전에 논란이 되었던 얘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한 때 국내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요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블로그에 내가 쓴 글이 하나 있다. 바로 다음 글이다.


이 때 쓴 글을 보면 감성에 기반한 주장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근거가 중요하다는 學의 관점에서 얘기를 한 듯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것도 중요하고 이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같이 나가야 할 것으로 얘기를 했다. 바로 이거다. 치우치면 안 되는 법이다.

사실 '요코 이야기'와 광개토대왕비문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을 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근대사와 고대사라는 시간적 간극에서 오는 부분도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이 조금은 다른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요코 이야기'에서 얘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충분히 개연성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일제 치하에 당한 설움을 복수하기 위해서 너희도 당해봐라 식으로 행동했던 사람이 전혀 없었을까? 있었을 거라고 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아니던가?

중국에서 인민 재판을 위해서 벽에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얘기를 늘어놓으면 그것을 보고 그 사람을 불러들여 인민 재판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손해본 것도 아닌데 뭔가 꼬투리를 잡아서 험담하는 글귀를 적어두면 인민 재판을 받게 되어 그 모습을 보고 통쾌했던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물며 일제 치하에 온갖 핍박과 설움을 당한 사람들이면 오죽하랴? 분명히 모두는 아니지만 '요코 이야기'에서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사실에 가까운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사실을 가리는 것은 이런 데에서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에 가까운 얘기지만 역사학자들은 오직 문헌에 근거해서만 얘기한다. 인간으로서 아주 지극히 당연히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오직 기록된 문헌에만 의존한다. 역사학자들에게는 직관이나 통찰보다는 오직 문헌 근거만이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있다 없다는 프레이밍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자 그럼 그렇게 해서 모든 사실을 밝혔다고 해보자. 어떤 사실은 나에게 부끄러운 과거가 되는 것이고 어떤 과거는 자랑스러운 과거가 되는 것이다. 항상 나에게 자랑스러운 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사실을 인정하자.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고 한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코 이야기'를 바라보자. 설령 '요코 이야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교과서로 채택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제 치하에 자행된 일본의 만행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부분만을 얘기했던 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서 결코 올바른 시각을 길러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 지언정 왜 역사에는 일본의 침략만을 중심으로 얘기할 수 밖에 없냐고 하는 것은 자명하다. 애초부터 그런 잘못을 저지른 일본의 책임이 더 크고 그러한 일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후대에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요코 이야기'는 부분을 얘기하면서(편협한 시각) 자칫 멋모르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역사 의식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었다고 해도 그것만을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그 전에 일본의 수많은 만행들을 얘기해야만 한다. 그래야 밸런스 있는 역사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근거를 갖고 사실인지를 고증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그것만 갖고 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요코 이야기'의 사례를 보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요코 이야기'와 같은 경우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감성이 풍부해서 단시간 내에 바람직한 해결을 유도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방법이 능사는 아니지만 말이다.
 

두 다른 프레이밍: 學 vs 爭

사실 논쟁이 되었던 것은 이 책의 내용이었지만 그 내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두 가지 다른 프레이밍이 존재했다고 본다. 로빈님은 이를 學적인 관점에서, 나는 爭이라는 관점에서 접근을 했다. 어느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황적 판단이 필요한 법이다.

진실을 밝힌다는 미명하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 즉 고증을 하는 것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Part I 에서 제시했듯이 그들이 의존하는 문헌 자료가 미비할 때에는 무엇을 정설로 할 것인데? 근데 퍽이나 웃긴 것은 그렇게 한 번 정설이 되면 그것을 완벽하게 뒤집을 만한 무엇이 나오지 않는 이상 바뀌기는 정말 힘든 것이다.

정말 바뀌기 힘든 지 나는 잘 모른다. 단지 인간 세상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學을 하는 사람들의 습성(꼭 그렇다기 보다는 인간의 심리에 기반하여 생각해보면 그렇다)을 고려할 때 그럴 것 같다. 이렇게 역사는 만들어지게 되는데 거기에서 사실 운운하는 것이 때로는 퍽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감성에 기반하여 선동하지 말고 사실을 파헤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들은 자기네들에게 허락 받아라는 식의 말과 똑같다. 내 전문인데 니들이 뭘 아느냐는 식인 것이다. 내가 볼 때는 둘 다 필요한데 말이다.

근데 웃긴 것은 學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보다는 즉흥적인 선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대한다. 그러면서 감성적으로 대하지 말고 사실 여부를 따져보자고 한다. 결국 외부와 爭을 하는 이들을 우리네 사학자들은 내부적으로 爭하려 드는 꼴이다.

또한 그네들이 얘기하는 근거라는 것이 대부분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만의 고유한 뭔가를 만들어서 얘기를 하기 보다는 대부분 외국의 것을 뒤져서 살펴보고 자기 스스로 설득이 되어가는 듯 느껴지는데 그것을 고증이라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내가 비하해서 얘기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광개토대왕비문이 변조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변조설을 부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긴 하나, 그것을 모든 역사학자들이 수긍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한국에서는 40% 정도만이 그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아래 기사 참조)


이것을 제시하는 사람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외국 사학자들은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럼 그게 學계에서 인정되는 것이라는 말인가? 왜 우리 사학자들의 60%는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부각시키지 못하는가? 역사학을 많이 아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머리가 좀 나쁜 듯 하다.

이런 사학자들이 많으면 아무런 얘기없이 항상 공부만 하고 자료만 축적하다가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고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게 되는 거다. 그나마 우리 나라 국민들이 감성이 풍부해서 그러한 것을 버텨주고 있는 것이지 역사학자들의 그런 논리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두고 사학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치밀한 계획 하에 막대한 자본과 막대한 인력이 투입된 작업. 결국 돈과 인력이 없어서 못한다는 소린가? 사학자들의 논리는 사실 여부를 가리는 데에 있는 것 아닌가? 그럼 무슨 상관인가? 사실이 아닌데...

자기네들이 유리한 것은 취하고 불리한 것은 없애버리는 그런 역사 왜곡이 자행되고 있음에도 우리 내부에서 뭔가 새로운 시각을 들고 나온 얘기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목소리 높이는 것도 사실 웃긴 얘기다. 밖에서는 큰 소리 못 치면서 집에 와서 큰 소리치는 소인배의 짓거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우리에게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라면 면밀히 검토하면서 보완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 그네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잣대를 들이대봐? 도대체 무슨 문헌으로 당신은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 문헌이 왜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그런다고 해서 學계에서 인정받았다고 해서 그냥 믿어버리는 것이 學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될 자세야?

한도 끝도 없다. 얼마든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얘기는 할 수 있다. 타임머신이 생겨서 과거로 돌아가서 직접 그것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진실이 무엇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단지 설득력 있는 것을 정설이라고 믿고 따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는 정치가 개입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왜? 누구 하나 바꾸려 드는 사람 없이 그렇다고 믿고 있을 것이므로. 그것이 설령 진실과 간극이 큰 것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닌 문제 즉 광개토대왕비문이나 독도, 동해표기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學적인 관점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爭의 관점도 중요하고 때로는 學보다는 爭으로 대처해야할 필요가 있는 법이다.


얼어죽을 선비 정신을 버려라!

세상에 전쟁, 싸움에 룰이 있는가?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논리도 전쟁 앞에서는 적이기 때문에 죽여야 된다고 달라지는 게 바로 爭이다. 상대는 죽이려고 덤벼드는데 나는 내 룰을 지키겠다며 고집피우다가 죽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훗날 기억되기를 바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엄청난 수의 사학자들과 엄청난 액수를 쏟아부으면서 수년 동안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작업이다. 그들이 이러는 이유는 아주 심플하다.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에는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약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서서히 그 틈새를 크게 만드는 것과도 같다.

일본이 어거지 논리를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볼 때는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도 말이다. 우리나 관심을 갖는 일이지 사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그네들이 어떤 얘기를 먼저 들었느냐에 따라 진실은 왜곡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일제 치하에서 자행된 일들 중에서 한글을 못 쓰게 하고 이름을 바꾸게 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왜곡된 역사 교육을 가르친 것도 그 때에는 진실을 겪어온 세대와 공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구세대는 몇 십년 내에 죽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들이 기득권이 된다. 그것을 알기 떄문에 그랬던 것이다.

최근에 동해 표기를 두고 이런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동해와 일본해로 같이 표기하자고 했고 일본은 일본해로만 표기를 해야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얼어죽을 선비 정신은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경계해야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먼저 그럴 필요는 없다. 상대가 어떠냐에 따라 때로는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하는 법이다. 물론 진실은 승리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믿는 바대로 하다보면 이루어진다는 말들 다 좋다. 그리고 나도 그걸 믿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꼭 그렇게만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 기본적인 마음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그게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學적인 관점에서 고증을 하는 것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상대는 역사 왜곡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그것을 정설이 되도록 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자료만 모으고 떠들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나는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爭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협상에서 보면 원래 내가 바라는 것이 5라고 한다면 초기에는 협상을 위해서 그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고 양보를 하면서 5에 타협을 하는 식의 방법이 있다. 어찌보면 웃긴 얘기기도 하지만 먹힌다는 게 중요하다.

이를 역사 왜곡이라는 것에 적용해보면 상대가 뭐라 얘기해도 우리 만의 논리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고증의 한계를 잘 안다면 그 고증의 한계를 잘 이용해서 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우리 나라는 침략을 받았지 침략을 해본 적이 없다. 북벌을 하던 때도 어떤 명분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었다. 결국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선비 정신이 깊게 밴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 선비 정신도 시대에 맞게 달라질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적어도 역사 왜곡이라는 글자를 앞에 두고서는 그런 선비 정신은 잠시 접어두는 게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