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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지식인으로서의 기본 자세

최근 제 일기(전 일기와 같이 사적인 글은 RSS 발행 안 합니다.)에 달린 덧글을 보면서 아직도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고로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것인지를 알기에 항상 열려진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입장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 입장의 차이가 대립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입장의 차이는 있어도 상대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줄 알고 인정할 부분이 있으면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별로 알지도 못하고 남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는 지식인의 반열에 아예 올려놓지도 않습니다. 그냥 척 하는 류의 사람들이죠.

6월 초에 장장 6개의 글로 나누어서 크리스텐슨 하바드 교수의 인터뷰 기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예약을 걸어두고 하루에 하나씩 포스팅이 되도록 했는데, 그 글에 대해서 입장이 반대인 분과 온라인 상에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제 질문에 이런 저런 얘기를 통해서 제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인정하는 부분도 있었기에 추가적으로 글을 올린 것이 있습니다. 그 글이 바로 다음의 글입니다. 한 수 배우려고 먼저 얘기를 걸었는데 제가 오히려 배웠다는...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의 '고객을 무시하라'는 것은...>

근데 그 상대분은 저보다도 한참 어린 친구였습니다. 보통의 지식인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이런 자세로 일관합니다.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 지식이 더 많다.' 또는 '자신은 좋은 대학의 박사까지 했으니 내가 아는 게 더 많다.'는 식입니다. 역시 저는 이런 것을 보면 똑똑함은 많이 아는 것과 다르다는 제 입장이 더욱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정량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철학적이 되어야 인간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 알아봤자 뭔가 일이 안 되는 것은 다 사람 때문이지요. 경영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어떤 것이든 안 그렇겠습니까?

지식은 실로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누구의 소유가 될 수도 없으며 누구의 판단이 무조건 옳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제대로된 지식인이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을 미리 읽고 그것에 대해서 어떤 합리적인 견해를 도출하는 것이 남들보다 빠를 뿐입니다. 저는 그것이 통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은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며, 나이나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에 걸맞게 꾸준한 노력을 통한 지식의 습득을 해야하겠지요.

제 일기에 달린 덧글에 사연을 읽어보면서, 덧글을 적은 분에게 '너 이거 아니?'라고 묻는 사람은 이건 지식인이라고 볼 수 없는 매우 우매한 질문입니다. 세상에 인터넷이 발달한 요즈음에 알고자 하면 모를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정보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지금 시대에 말입니다.

정보를 아는 것보다는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안다는 것 그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 홍콩 가봤니? 나 가봤는데' 이거랑 똑같은 겁니다. 그게 지식인으로서 지식을 뽐내는 하나의 자기 표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착각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좋은 약이 있습니다.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모르니까 니가 설명해봐라'는 식으로 계속 질문을 던지면 정보의 한계로 인해 결국 말이 꼬이고 결론이 이상하게 나버리게 됩니다. 왜냐면 그들은 해석하지 못하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물어보면 해석이 꼬여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정보로서 얻는 한계라는 것입니다. 정보를 아는 것보다는 그것에 대한 해석이 지식인의 깊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그런 분들은 이리 저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 만나서 얻은 정보 저 사람에게 얘기하고 저 사람 만나서 얻은 정보 이 사람에게 얘기하는... 근데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는 아는 게 없고 자기 견해에 대해서는 다 들은 이야기고. 주체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흔치 않은 요즈음이라 해도 '너 이거 아니?'라는 식의 태도는 매우 곤란한 자세인 것입니다.

간혹 정말 똑똑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 중에서는 많은 책을 읽어서 자신의 주체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책 속의 견해를 마치 자기가 하는 얘기인 양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책을 많이 읽어서 가진 지식인들의 견해가 그들에게는 정보가 되어 자기의 입으로 전달하면서 그것을 지식이라고 얘기를 하는듯 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의 얘기를 수용하기 힘듭니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고 저 책에서는 이것을 저렇게 얘기하는 입장의 차이를 자신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하지 않고서는 남들에게 얘기하기 곤란한 것이지요.

한 때 일본 역사소설을 읽기를 좋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지보다는 대망(한국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번역된 솔의 32권짜리 완역판이 나와 있지요.)을 한 수 위라고 평하고 있는데(이것은 지극히 주관적 견해입니다.) 그 중에 대망의 저자가 적은 또다른 역사소설 <사카모토 료마>라는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知에 이르는 자세는 바로 無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지식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은 내가 지금껏 아는 해석으로만 받아들이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칫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견해로 빠져들기 쉽고 지식의 방대함을 인정하지 않고 내 지식으로만 해석을 하려고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무조건 옳다는 것을 추구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면 한도 끝도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 해석적인 견해를 밝히되, 그것의 반대되는 견해가 생길 경우 설득력이 있고 수용 가능한 부분이라면 인정할 줄도 알고 고칠 줄 아는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식인으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자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