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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디지털

[집단지성의 이해 VI] 집단지성의 유토피아 (시리즈 마지막편)

아마도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이하 집단지성 표기)의 이해라는 명목하에 적는 시리즈의 마지막편이 될 듯 합니다. 집단지성을 알고서 피에르 레비 교수의 책을 꼽씹어 읽으면서(아마 아시는 분들 아시겠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 눈에 잘 안 들어오지요.)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집단지성 그 자체를 두고 논하는 것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useless 하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지적 욕구의 자극에 의해 알아야 하겠기에 집단지성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다 보니 제가 쓴 글이 시간적인 순에 따라 견해가 약간은 다른 부분도 보입니다.

블로그의 한계라고 생각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제가 리퍼러 로그나 방문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고정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검색을 통해 어떤 글을 보고 나가는 경우가 아직 절대 다수이다 보니(그건 어느 블로그나 어느 사이트나 마찬가지겠지요.) 저의 예전 글을 읽고서 잘못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이 글을 적고 난 이후에는 예전 글들의 수정이 불가피 할 듯 합니다.

이번 마지막에서는 제가 예전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피에르 레비 교수의 집단지성은 매우 유토피아적이며 파라다이스다라는 견해에 대한 피에르 레비 교수의 얘기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책 내용이 이해하기 힘들다 보니 꼽씹어 읽어야 볼 수 있었던 부분을 제가 놓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레비 교수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인지를 하고 있었던 부분이 책 속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집단지성 프로젝트가 '유토피아적'인가, 아니면 '현실적'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아마도 토론에서 얘기를 나누는 과정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얘기를 했을 겁니다. "왜 그런가요?" 비현실적이며 유토피아적이라고 얘기했던 저였기 때문이지요. 그에 대해서 이미 책 속에 답이 나와 있었습니다.

집단지성은 불안정성과 다원성의 유토피아이다. 그것은 선의 도덕에 부응하기보다는 최상의 윤리에 부응한다. 정적이고 결정적이며 상황을 벗어나는 선은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선험적으로 부과된다. 반면에 최상(가능한 최상)은 상황에 의해 결정되고, 상대적이며, 역동적이고, 잠정적이다.
정말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구문입니다. 왜 제가 이러한 문구를 뒤늦게야 알게 된 것일까요? 매우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지금껏 읽어본 여러 책들 속에서 제가 가진 어떤 제 사상이나 철학과도 일치하는 말입니다.

전 항상 better than best 를 추구합니다. 왜냐면 상황 논리가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절대적인 진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매우 현실주의자입니다. 다만 무엇이 옳은가를 상황에 따라 생각하는 현실주의자일 뿐입니다.

여기서도 이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용어가 다를 뿐이지요. 선의 도덕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최상의 윤리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되고 변한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즉 집단지성은 선의 도덕 즉 이게 절대적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윤리 즉 그 때 그 때에 따라 가능한 최상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집단지성이 "유토피아"적 견해라고 보기 보다는 "인류의 바람직한 방향"에서 해석을 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집단지성은 매우 유토피아적인 견해라고 지금껏 얘기를 했었지만 그만큼 또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고 지성의 힘을 믿었던 사람이었기에 결국 제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생긴 잘못된 이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토피아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집단지성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등에 대해서 피에르 레비 교수는 통찰력을 갖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은 달라지지 않지만 최상은 어디에서나 다르다. 선은 악에 대립되고, 그것을 배제한다. 반면에 최상은 악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최상은 최소한의 악과 동등하며, 악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책의 대부분을 유토피아적인 견해로 이끌어오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라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의 유토피아라는 것이지요.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유토피아(제가 말했던 유토피아)와는 괴리감이 있습니다. 악을 최소화하는 최상이라는 것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집단지성의 유토피아였던 것이었습니다.

집단지성의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것, 그것은 진보 혹은 항상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전진의 신화를 연장하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선조적 진보의 개념은 집단에 의한 환경의 전적인 통제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히 선택 기준의 항구성과 획일성을 가정한다.
이 말로 집단지성과 대중의 지혜에서 엿보이는 여러 견해들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고 보입니다. 저 또한 다수의 지적인 상호 교류가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온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지만 여기서 레비 교수는 그것에 대해서 조차도 아니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 선조적 진보[각주:1]라는 것 자체는 환경에 대한 통제 없이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는 결국 지금까지 얘기한 집단지성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지요. 환경에 대한 통제를 누가 하느냐? 그것 자체가 이미 집단지성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게 위키노믹스(Wikinomics, 이하 위키노믹스 표기)에서 말하는 협업지성(Collaborative Mind, 이하 협업지성 표기)과는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레비 교수의 유토피아에 대해서 제가 약간은 이해를 못했다는 부분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 입장에서 고수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은 레비 교수의 집단지성은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읽었던 <인류의 미래사>에서도 앨빈 토플러의 미래학과 비교를 하면서 얘기했지만 인문학적인 견해는 그 사고의 깊이에 대해서 놀라면서도 "So What?"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못해주고 있다는 것이 한계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던 것입니다.

위의 문구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보이는 것은 선조적 진보가 환경의 전적인 통제로 가능하다면 굳이 그것을 집단지성이 아니라고 하여 피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사실 의문의 여지가 많이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집단지성의 개념보다는 위키노믹스의 협업지성이 조금은 현실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집단지성보다 협업지성이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집단지성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고 협업지성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의 견해로 보게 된다면 Google 의 PageRank 알고리듬도 사실은 집단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환경에 대한 통제가 일부 소수에 의해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집단지성을 현실에 접목하면서 해석할 때는 그것을 바라보는 범위가 어디까지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많이 있으며 그것에 대해서는 레비 교수의 집단지성 그 어느 곳에서도 사실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또한 집단지성을 그렇게 접목하는 것 자체나 그로 인해 집단지성이냐 아니냐는 것 자체는 무의미하다는 견해 또한 여전합니다. 다만 매우 유토피아적인 견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레비 교수의 답변이 대신하고 있듯이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라는 것이 제가 말한 유토피아와 괴리감이 있었다는 것이죠.

결국 피에르 레비 교수의 집단지성은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맞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토피아적인 견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제가 본 집단지성이라는 책이 1994년도에 나온 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고의 깊이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살펴보았듯이(제가 이해 부족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 우리가 그것을 보고 그 논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어떤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가를 두고 보았을 때는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단지성의 이해 시리즈는 여기서 마치고자 합니다.

+ 집단지성과 협업지성 그리고 군중심리 등에 대한 더 읽을거리 → 집단지성? 협업지성? 군중심리?
  1. 계속해서 진보하는 것을 말함. 즉 굴곡없이 양의 기울기를 갖고 진보하는 것을 말하는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