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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노잉: 무작위성과 결정론, 운명과 개척을 생각하게 한 영화

風林火山 2009.04.09 19:11

나의 2,814번째 영화. 뭘 알길래(영화 제목이니까) 개봉시에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을까 싶어서 봤는데 그럭저럭 볼만했던 영화였다. 물론 결말이 너무 SF적인지라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지극히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근저로 하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 서양틱한 전개를 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깊이가 있다거나 생각을 해볼 만하다기 보다는 재미 위주로만 볼 수 밖에 없었던 듯.

예견의 객관화, 숫자


영화 속에서는 미래에 벌어질 일을 숫자로 표현한다. 이 또한 서양적인 표현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보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서 좀 더 객관적인 지표로 숫자를 생각한 듯 하다. 그건 그런 대로 좋다. 단지 나는 그것 자체가 서양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꼬마들이 나온다. 그 중에 한 명이 니콜라스 케이지(MIT 대학교수)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보면 무당 같다. 신내림을 받은 사람이 자기를 통해서 영의 세계의 얘기를 들려주듯이 어떤 소리를 듣고 거기에 빠져 미친듯이 표현해댄다. 단지 다르다고 한다면 영화에서는 외계인에게 듣는 것이 다르고 표현을 숫자로 한다는 것이다. 나름 미지의 영역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듯 보인다. 서양적인 사고방식이 이렇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까? 타고난 운명일까?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통해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식의 얘기만 들어왔다. 최근에 유행한 베스트셀러인 <시크릿>도 그런 류의 책이고, 그 이전에 좀 더 깊이 있게 그것을 다룬 책들도 있었고 말이다. 게다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에서는 그러한 것을 꽤나 과학적인 영역에 끌어들여서 설명하려고 했던 부분도 있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운명은 개척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아무리 그것을 뒤바꾸려고 해도 뒤바꾸려고 하는 것조차 자신이 타고난 운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운명론자냐? 개척론자냐?

사람들은 설득력 있는 그럴 듯한 얘기에 그냥 믿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좀 더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서 알아보는 과정 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밸런스다.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는 법이다.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내 인생에서 일부의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었다.

논리와 합리 그리고 지성을 중요시하는 나이긴 하지만 나름 그러한 것들을 논리적으로 파헤쳐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거다. 주어진 운명 속에서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운명은 개척할 수 있는 꺼리는 아니다. 개척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답지 않은 생각이라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시간을 할애해서 파헤치고 난 결과가 그렇다.

단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서양적인 사고방식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굳이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을 뿐이다. 서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서는 뭔가를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단지 해석했다고 믿을 뿐이다. 아무리 내가 논리와 합리 그리고 지성을 중요시한다고 해도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지극히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근저로 하는 사람이다.


무작위성 vs 결정론

요즈음 나오는 영화들 중에는 이러한 것에 관련된 영화가 꽤 있는 듯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생각해볼 만한 것이라고 한다면 니콜라스 케이지가 MIT에서 천체물리학(맞나?)를 가르치면서 했던 대사에 있다. 바로 무작위성과 결정론에 대한 얘기다. 대사 속에서 나온 무작위성과 결정론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결정론
- 앞서 발생한 일이나 자연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어 발생하는 사건
- 모든 일은 어떤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뜻
- 만물은 목적이 있으며 예정되어 있고 결정되어 있음

무작위성
- 모든 사건은 단순한 우연에 의한 것
- 우리라는 존재는 순전히 복잡성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음
- 의미라는 건 없으며 목적도 없음

그럼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떨까? 결정론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보자. 왜 결정론으로 끝을 맺었을까?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여도 거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무슨 이론인가?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이다. 그것은 과학처럼 들리니까 믿고 운명은 믿지 않는다고 하면 내가 볼 때는 모순이다. 단지 운명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지 못하니까 그런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런 맥락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본다. 단지 그 전개가 지나치게 과학의 영역을 끌어들이려고 노력을 한 게 아쉽다는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 재난 영화가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이었던가? 내가 본 영화 중에 그런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떠오르는 영화는 없다. 대부분 해피엔딩이니까.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이 생기기 이전에도 옛사람들은 이러한 것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것을 문헌으로 남긴게 많은데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변하는 것만 쫓아가는 듯이 보인다. 나는 과학의 영역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근원이고 베이스가 될 수는 없다고 보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다.

천자문에 보면 율려(律呂)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주 삼라만상이 무작위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절기가 있듯이 어떠한 일정한 법칙을 갖고 움직인다는 뜻이다. 뭐하고 똑같은가? 카오스 이론이다. 카오스 이론이라 명명되기 전에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과학의 영역이라 해서 믿고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해서 믿지 않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뭐든 하나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게 바로 道이다.

이런 의미에서 운명은 받아들여야할 것이지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바로 서양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동양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 반면에 서양은 자연 조차도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이에 대해서는 무수히 할 말이 많지만 이 정도만 하려고 한다. 어쨌든 나는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근저로 하고 있는 사람이다. 왜? 그게 더 포괄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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