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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년 전 신입생 OT 때, 마지막 날 돌렸던 롤링 페이퍼

風林火山 2015.11.30 07:30

0.

일전에 내 블로그에 적었던 적이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정리벽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그렇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보니 그렇더라는.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정신병이라고까지 할 정도. 그래도 그런 정리벽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게 많다. 언젠가부터는 디지털화해서 갖고 있는데, 문득 뒤적거리면서 추억을 되새김질 하다 하나 공개한다.


1.

20년 전에 신입생 OT 때였다. 재수를 하고 들어간지라 동기들이 OT 때만 해도 나를 형, 오빠라 불렀다. 95학번 보고 나이가 같으니까 말 트자고 하고 그랬던. 그 때만 해도 먼저 대학 들어간 게 뭔 벼슬이냐 싶었었지. 한 가지 일화를 얘기하자면, 대학 가기 전에 나더러 머리 스타일 바꾸라고 했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아마 내 기억하기로 당시에 펌을 해서 가스 배달하던 애들이 하던 머리 스타일을 했었는데, 대학교 가서 친구들 사귀고 그럴려면 머리 스타일 바꾸라고 했었지. 그게 바로 정식이다. 베트남스토리 대표. 


2.


나 진짜 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형 같은(말 잘 하는) 사람 처음입니다. 대학교 가서 잘해봅시다. - 강태길


태길이. 대학교에서 가장 끝까지 나를 형으로 불렀던 동기. 대학 생활에 적응하면서 동기끼리는 다 말 트기 시작했는데 가장 늦게까지 나를 형으로 불렀던. 아마 고등학교 때 전교회장했었던 걸로 알지. 현재 삼성전자 과장. 재작년까지는 그래도 모임도 하고 그랬었는데,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네. 갑자기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전공 과목 시험이었는데, 다같이 놀고 시험 치러 들어갔었지. 문제지 받아보니 다 주관식이더라. 그래서 문제지 받자마자 나는 제출하고 나왔지. 문제지 다 돌리지도 않았는데, 그러니까 좀 있다 나가라더라. 그래서 좀 있다가 제출하고 나왔지. 근데 태길이는 계속 있더라고. 어차피 모를 거 빨리 나오라고 밖에서 그랬지. "태길아~ 나와라~" ㅋㅋ 그래도 태길이는 학점 좋지?


*


너 이승건 임마! 나 경수수인데 내가 실수했어도 제 정신 아니니까 이해해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너는 점점 알면 알수록 더 괜찮은 놈인 거 같다. 너와 나의 대학생활이 행복하길... B.P 좀 진동으로 해.


내 기억으로는 아마 경수가 아닌가 한다. 이 녀석도 재수를 해서 나랑은 말 텄었지? 근데, 정작 OT 이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지? 그만 뒀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

이 형! 사나이다워!!


누고? 기억이 안 나네. 글씨체만 보고 알 수 있나.


*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음. 승건이 오빠 cap!!! -민정


김민정. 어찌 사는 지 궁금하네. 나중에 자퇴하고 다른 학교 갔지? 학부 400명 중에 여공대생 8명. 쉽지 않았지. 그래도 반도 같은 반이라 항상 내 옆에 붙어다녔는데.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


승건아. 술 한 잔 하자. - 욱향


94학번 권욱향. 욱향이형이랑은 대학교 2학년 떄 추억이 많다. 키 191.6cm. OT 중간에 왔었는데, 가죽 코트에 장신이 들어서자 '저건 누구?'했었던. ㅋㅋ 94학번 중에 참 우리 코드에 맞는 선배들이 많았지.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추억을 공유한 형이고 사회 나와서도 이따금씩 봤던. 마지막 봤던 게 아마 미국으로 가기 전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만났었던 건데, 보고 싶다고 대전에서 택시 타고 강남에 왔었지? 나 작년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올해부터는 점점 옛사람들이 생각 나. 그런 나이가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더라고. 아마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욱향이형은 나더러 친구처럼 지내자며, 사람들 없을 때는 말 놔라고 했던 그런 형이다. 그만큼 나를 후배라기보다는 친구로 대해줬던 형. 데킬라를 가방에 넣고 다니고, 술 못 마시는 나 데리고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얘기하길 좋아했던 형.


*


최고로 멋있어요. - 은수


은수. 생각나네. 안경쓰면 영심이. 안경 벗고 꾸미니까 그래도 오~ 달라졌어 했던. 그래도 과에서도 인기가 좀 있었지? 내 기억으로는 그런 걸로 아는데. 은수도 결국 자퇴하고 다른 학교 갔지? 민정이가 약대 갔나? 은수가 약대 갔나? 여튼 둘 다 버티지 못하고 결국 다른 데로 갔던. 그래도 과대가 되어 조인트를 해야만 하는 숙명에 놓였던 나였기에, 조인트 해서 신나게 놀고 민정이나 은수 같은 경우는 별도로 내가 초콜릿 선물 해줬던 기억 난다. 미안하잖아. 공대 여자의 숙명이 그러하니.


*


앞으로 즐거운 대학생이 되길 빕니다.


누구지?


*


군대 언제 갈 지 기대가 되는군 - 찬


이거 호찬이재? 이 새끼. 옆 고등학교(혜광고였지?)였던 동기인데, 같이 재수했었지. 사실 재수할 때까지는 그리 친하지 않았는데, 대학교 오니까 그래도 많이 보던 얼굴이고, 고향도 같으니 친해질 수 밖에. KAIST MBA 가서 거기서는 과댄가 뭔가 했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 현대캐피탈에 있다. 연락 좀 해라. 이 씨댕아. 너는 진짜 그라마 안 돼에~ 응? 연락해라. 내가 먼저 연락하리? 응?


*


승건형! 어제도 말했듯이 형 최고에요.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 페인트공


페인트공? 페인트공? 기억이 안 난다. 페인트공이라. OT 때 각 조 장기자랑할 때 뭔 페인트공 역할을 했나 본데, 기억이 안 나네. 아 존나 미안하다. 기억이 안 난다. ㅠㅠ


*


재미있는 일 있으면 끼워주세요. - 요한


요한. 기억난다. 착하게 생겼던. 이후로 한 1년동안은 재밌는 일 있었는데, 함께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ㅠㅠ


*


터프하고 화끈한 게 부산 사람답습니다. 지지합네다! 


누구지?


*


형. 참 활달한 게 참 좋아요! 자주 자주 연락 바라면서 - 영욱


미안하다. 기억 안 난다. ㅠㅠ


*


제일 멋있는 사람인 것 같군. 동기들과 허울없이 친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명심 - 조영규


ㅋㅋ 95학번 기계공학과 조영규 선배네. 조영규 선배도 잘 놀지. 나름 튀니까 눈여겨 봤을 거 같은데, 내가 재수해서 다들 형, 오빠라고 부르니까 그게 대학 문화랑 안 맞아서 이런 얘기를 한 듯. ㅋㅋ 지금 보니까 말을 돌려서 잘 했다는. 


3.


어쩜 그렇게 내 친구와 똑같을 수 있을까. 신기하다. 


누구?


*


형님! 맘에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신세 많이 질 것 같습니다. 잘해주세요.


아. 참 내가 이렇게 옮겨 적으면서 드는 생각. 맞춤법 틀린 새끼들 많네. 이건 누군지 모르겠다.


*


아~ 부산! 짜슥 만나서 반갑데이. 리더쉽이 대단하던데... 우리 잘 지내자. 같은 고향 사람끼리. -현


주현이. 황주현. 이름 떠올린다고 잠깐 생각했다. 내겐 권해효. 권해효랑 좀 닮았어. 지금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살면서 직장 다니던데. 대학 이후로는 본 적이 없는 듯 싶다. 사실 내 대학 생활이라고 하는 게 1-2학년 때가 고작이었지만. 아. 3학년 1학기도 있긴 하구나. 그 때는 그래도 공부만(?) 했었지? ㅋ



우리의 기분파 승건이형! 형의 화끈함에 나의 얌전함이 미쳐버렸습니다. 우리 재미있게 지내봐유~ -충천도 희동


기억난다. 희동이. 근데 많은 추억이 없다. OT 때 같은 조라 해도 반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 반이 달라지면 친해지기가 쉽지 않지. 뭐 하숙방이 같거나 하면 몰라도. 


*


리더쉽이 참 강한 게 진짜 장점! -재상


미안하다. 기억이 안 난다. ㅠㅠ


*


이런! 글씨하고 너하고 매치가 안 되서 깜짝 놀랬다. 열심히 젤 시나게 논 너의 모습 올해에도 계속 보여주길 기대할께! -훈


지훈 선배인가 그럴 거다. 95학번. 보자마자 "몇 살?" "76?" 그럼 나이 같으니까 말 놓을께 했던. ㅋㅋ OT 이후에 형이라고 불렀지. 캬캬캬. 잘 생겼는데. 키도 크고. 근데 신입생 때 빼고는 본 적이 거의 없는 거 같다. 뭐하고 살라나...


*


멋있긴 뭐가 멋이고, 무슨 CAP... 수염만 덥수룩해가지구. 지저분+개김성+알파+베타. 너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승건아. 나도 선배란다. 선배 대접 좀 해주라. -누님


ㅋㅋ 누군지 알겠다. 효영이 누난가? 최근에 선배들이랑 만난 자리에서도 언급이 되었었던. 지금은 약사 되서 약국 두 개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ㅋㅋ 왜 그래요 누님. 저는 기억합니다. 그 때 분명 저보고 그랬죠. "너 섹시하다." 나는 기억하는데. ㅋㅋ 하도 개겨서 그런 거. 내가 좀 개김성이 강하지. ㅋㅋ 


4.

글 적으면서 재밌네. 옛날 생각 많이 나고. 다들 이제는 저마다의 영역에서 잘 살고 있겠지. 언제 한 번 나이 들어서 모이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5.

이걸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20년 전에는 정말 쪽팔리고 그런 거 몰랐었던 거 같다. 체육대회 때도 보면 우리 과가 밀리거나 응원에서 열세이면 내가 투입되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사기 복돋워주고 했었던.(그런 추억들이 있기 때문에 또 91학번 명섭이형-내 신입생 때 자동화공학과 회장-이 나를 좋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 생각난다. 나는 당시 나를 삐에로라 생각했다. 남들은 나를 보면서 웃는. 뭐 지금에서야 그런 모습이 잘 안 보일 지 몰라도 내가 좀 웃겼거든? 그러니 동기들이 개그맨 해보라고 했을 정도. 그러나 젊을 때 사업하고 하면서 조금씩 변한 게 아닌가 한다.


나 다운 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어떠한지 참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밤이다.(글이야 예약을 걸어두니까 낮에 되겠지만 글 쓰는 건 밤이니까.)


6.

기억 나는 한 가지. 당시 OT 때 학내 그룹이 와서 불렀던 노래가 Helloween의 'Future World'였다. 기억할래나? 너무 Helloween과 음색이 비슷한 보컬에 깜짝 놀랐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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