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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해석하기에는 혼동스러운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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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포토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개봉일 1960,이탈리아,프랑스
별점
전반적인 리뷰

2007년 9월 25일 본 나의 2,685번째 영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248번째 영화.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La Strada)>에서 보여줬던 인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길(La Strada)>에서는 하층민의 삶 속에서 인생이라는 의미를 보여준 듯 하지만
이 영화는 상류층의 삶 속에서 인생이라는 의미를 보여줬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얘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똑같은 얘기를 해도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줄스 앤 짐>을 내가 매우 싫어했던 이유도 이와 맥락이 같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60년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이런 얘기를 하도록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개인적으로 <길(La Strada)>에서 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길(La Strada)>보다 리뷰를 길게 적게 만든 영화다.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영화인데 어떤 감흥에 의한 생각이 아니라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영화다.
영화적 해석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그 의미들이 혼동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고로 이 이후부터는 영화를 본 사람이 읽어야 이해가 갈 듯.

나는 영화를 보고 내가 해석을 많이 해야 하는 영화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점은 그리 높지 않다. 또한 추천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길(La Strada)>이 훨씬 더 낫다고 본다. 그래서 평점은 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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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에 대한 비난

친구 스타이너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매우 심플해질 듯 하다.
달콤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주인공 마르첼로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타이너가 자살하는 것 때문에 갑작스럽게 내 머리가 혼동스러워졌다.

주인공 마르첼로와는 대조되는 삶을 사는 스타이너.
그가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고 자살을 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영화 속 대사를 가만히 보다 보면 스타이너와 마르첼로의 대화 중에
마르첼로가 자신의 환경을 바꿔야 겠다는 데에 스타이너가 이렇게 답변한다.

자신을 집에 가두는 게 구원이라고 믿지는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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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와는 대조되는 스타이너도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만족을 못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급기야 자식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달콤함을 쫓는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의 비극적 종말.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게 따지면 달콤한 인생을 사는 게 오히려 더 나아 보이기 까지 한다.

스타이너를 건전한 상류층의 모델로 생각해도
마르첼로가 스타이너를 부러워하는 것은 상류층이라서가 아니다.
즉 자신이 가지지 못한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 생활을 부러워하는 것이지
상류층이라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마르첼로라는 재밌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 인물이 그런 현실에 개입을 하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것을 통해
상류층들의 모순된 모습과 방탕한 생활을 꼬집는 영화라고 봐야하는가?
그렇다면 "달콤한 인생"은 상류층을 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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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달콤한 인생"

만약 "달콤한 인생"이라는 것을 상류층을 뜻하는 것이든지
주인공 마르첼로가 사는 방탕한 삶이든지 상관없다.
우선 페데리코 펠리니는 마르첼로라는 주인공을 통해
방탕한 상류층과 모범적인 상류층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의 현실에 개입을 시킨다.
시종일관 방탕한 상류층과 어울리는 마르첼로이기에
"달콤한"은 방탕한 삶을 쫓는 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정작 마르첼로는 방탕한 삶을 살고 있어도
그가 바라는 "달콤한 인생"은 친구 스타이너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이 "달콤한 인생"이라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타이너의 비극적 자살로 인해 이런 해석 마저도 꼬아버린다.
그러면 어떠한 삶을 살던지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달콤한 인생"을 뜻하는 것인가?
스타이너와 마르첼로의 대화 중에 스타이너의 다음 대사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가끔 밤이면 이 침묵과 어둠이 날 무겁게 짓누른다네
이 평화가 그 무엇보다도 날 두렵게 만들어
평화는 단지 가면일 뿐
그 속엔 지옥의 얼굴이 있는 것 같아
미래의 내 아이들이 겪을 일들을 상상해 보게
세상이 아름답다는 건 어떤 관점에서지?
마지막 대사를 하고 바로 장면 전환이 일어난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보다는
자신이 관객들에게 묻고 있는 듯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너무 어렵게 접근하고 있나? 너무 혼동스러운 영화다.


끝장면

이 영화의 마르첼로는 <길(La Strada)>이라는 영화에서의 잠파노와 비슷하다.
그러나 <길(La Strada)>에서는 마지막에서 분명하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이 영화는 매우 애매하게 끝내고 있다. 즉 메시지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혼동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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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의 실마리를 갖고 있는 소녀다. 바닷바람과 파도소리 때문에
대화를 하지 못하고 몸짓으로 서로 얘기를 하는데
이 소녀는 마르첼로가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던 해변가의 음식점에서 등장했던 소녀다.
이 장면은 위에서 스타미너의 의미 심장한 대사를 한 바로 다음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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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와의 몸짓 대화에 주인공 마르첼로의 마지막 액션이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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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와 파도소리 때문에 못 들어서 "이해 못하겠다"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끝장면이 뭐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마무리를 하는 것 아닌가?

마르첼로가 식당에서 이 소녀를 처음 보고 대화를 할 때 이런 얘기를 했다.

넌 옴브리아 지방 교회의 벽화에 있는 천사를 닮았구나

그렇다면 천사를 닮은 소녀를 등장시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대사도 없이 서로의 몸짓에 어떠한 해석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해석이 가능하고
특히나 주인공 마르첼로가 어떤 의미있는 액션이라고 한 것이 고작
"모르겠다"는 식의 윗장면이니... 뭐라고 이해를 해야할지... "뭐 어때?" 이건가? :)
이 영화는 이렇게 혼동스러운 점이 많은 영화다.

결국 개인적인 생각에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 영화를 통해서 다음에 얘기하는 것처럼
종교나 상류층을 비난하면서 인생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어떤 방향이나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만 가볍게 던져주는 듯 하다.
친구 스타이너의 의미심장한 대사의 마지막에서 질문을 던지는 거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르첼로가 "모르겠다"는 식의 제스쳐를 한 것이나
이 모두가 감독이 어떤 결론을 짓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첫장면

첫장면은 헬리콥터로 예수상을 옮기는 장면이다.
예수상을 옮기는 것을 취재하는 마르첼로는 다른 헬기로 뒤따르고 있고
이 예수상이 지나가는 곳에는 옥상에서 썬탠을 즐기는 상류층 여성들 몇몇이
예수상을 보고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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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수상을 내려놓는 장면에서는 예수상을 클로즈업하고 난 다음에
바로 상류층의 파티 모습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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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보면 성모마리아를 본 어린아이들의 취재 얘기가 나온다.
부모들이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고
아이들은 여기에 성당을 짓지 않으면 성모마리아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고
사람들은 성모마리아를 통해 자신의 병을 치유하려고 그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마도 카톨릭에서 이 영화에 대해서 항의를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것과 연관지어서 생각한다면 아무런 이유없이 첫장면에서 예수상이 나오지는 않았을 듯.
마치 예수상이 주는 상징성(종교)와 상류층을 동격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이 동격화라는 것은 "상류층에 대한 비난=종교에 대한 비난"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평론

이게 평론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의 뉘앙스를 보았을 때 그런 듯 한데 어느 블로그에 올려져 있었다. 읽어볼 만하여 인용을 하는데 해당 블로그 주인장이 쓴 건가???
이런 의미에서 평론도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재밌는걸...

< 출처 : 네이버 블로그 Traumnovel >

(전략)

<달콤한 인생>은 예수 조각상을 매단 헬기 한 대가 도시 상공을 날아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헬기에 위태롭게 매달린 대롱거리는 예수 조각상의 모습은 이 도시에는 이제 더 이상 신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이 버린 성서 속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처럼 이 도시 역시 선악의 기준을 잃고 도덕적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2차 대전 이후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로마는 곳곳에 무너진 건물들이 서있고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황량하고 절망적인 도시에서 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신흥 부르주아들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절제한 환락을 추구하는 화려하고 경박한 도시로 변해있었다. 상류사회 귀족들은 가볍고 무분별한 열애에 열중하고, 밤새 술파티를 벌이면서 나태와 쾌락에 빠져있었고, 지식인들은 이상과 신념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었다. 이처럼 윤리적 판단 기준이 사라져버린 당시 로마 사회에 대한 펠리니의 비판적 시각흥미로운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썩은 고기에 몰려드는 파리떼처럼 줄지어 상류사회의 사람들은 따라다니는 신문기자들의 모습이나 가짜 성모 출현 소동 때 뚜렷한 근거도 없이 무비판적으로 이를 추종하던 대중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퇴폐적이고 무기력한 삶은 가십 타블로이드 지의 기자 마르첼로의 시선을 거쳐 낱낱이 드러나는데 마르첼로 역시 여러 연인들을 전전하는 바람둥이로서 어느 곳에서도 만족과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마르첼로 발걸음을 따라 에피소드 식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각 장면들은 한결같이 다소 위험스러우면서도 유혹적인 영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략)

영화의 마지막은 밤새 음란한 파티를 즐겼던 인물들이 바닷가로 나가 어부들이 잡아 올린 거대한 가오리를 구경하는 장면이다. 마르첼로는 건너편 백사장에서 한 소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는 것을 본다. 더없이 맑고 순수한 얼굴의 소녀는 마르첼로에게 애써 무슨 말인가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마르첼로는 결국 소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백사장을 떠나고 만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헬기를 타고 가던 마르첼로가 수영복 차림의 아가씨들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들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했듯이 소녀와의 의사소통에도 실패하는 것이다. 이로써 영화는 마르첼로를 비롯한 상류사회 사람들이 빠져있는 '달콤한 인생'에 더 이상의 진실이나 구원은 없을 것이라는 암담한 결론으로 끝이 난다. 마르첼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은 아마 그를 둘러싼 온갖 쾌락의 권태로움 속에서 좀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기타

1. Award
1960년 제13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1961년 제27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1962년 제34회 아카데미 의상상

2. This Film
- 1960년 이후 미국에서 개봉된 외국영화들 가운데 흥행수익 2위를 기록한 작품
- 동성애 묘사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
- 카톨릭교를 은근히 비난했다고 카톨릭계의 공개적인 항의를 받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