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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라탈랑트: 장 비고의 유작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프랑스 고전 (1934)


나의 3,155번째 영화. 고전 명작을 보고 연재하기로 한 이후에 본 다섯번째 영화다. 사실 고전 명작과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의 배경을 좀 이해하고서 봐야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라탈랑트>와 같은 경우는 1934년작인데 그 당시에 나온 대부분의 영화는 어떠했는지를 모르면 평하기 힘든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를 100년 뒤에 보고서 정말 CG가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라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여타의 CG에 비해서 완성도가 높고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 영화인데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영화사를 모른다. 영화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영화사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그건 영화를 예술로써 볼 때는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난 예술로써 보는 게 아니라 스토리 중심으로 보거나 재미, 감동을 목적으로 보다 보니 그렇다. 그래서 <라탈랑트>가 영화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건 다른 글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나는 현재 시점에서 보고 어떻다는 데에 충실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견해를 줄 만한 입장이 못 된다고 본다. 단지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 중에 하나이고 리뷰를 많이 적는다는 것일 뿐이지.


그럼 <라탈랑트>를 나는 어떻게 봤나?

1934년작이니 그 당시의 다른 영화들은 어떠했는지를 감안해서 평해본다. 1930년대에 내가 본 영화들은 <M>, <품행제로>, <42번가>, <39계단>, <게임의 규칙> 정도다. 더 있는지 모르겠지만 리뷰로 정리된 것은 이 정도. 이 영화들의 리뷰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내가 본 느낌 그대로 충실히 적는다. 영화사적 의미가 대단하다 한들 내가 재미없으면 평점 박하다. 그리고 나는 스토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스토리 중심으로 영화를 본다. 그런 관점에서 <라탈랑트>의 스토리는 정말 허접하기 이를 데가 없다.

조금 열받았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저렇게 내팽겨치나? 말도 안 되지. 뭐 그런 거다. 영화는 영화로 보고 이해해라고 해도 좀 심하잖아. 게다가 내팽겨친 사랑을 찾는 과정도 정말 개연성 없다. 그 넓은 파리라는 도시에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저렇게 쉽게 찾아? 말이 안 되잖아. 1934년작이니까 그러려니? 1934년도에는 저렇게도 사람을 찾나 보지? 그런 부분들은 사실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그냥 영화사적 의미만 듣고 <라탈랑트>를 알흠답게 리뷰하는 건 내가 볼 때 평론가들의 글을 보고 겉멋든 사람들의 리뷰라 생각하거든.

그러나 촌구석에 살던 여인네가 라탈랑트라는 배(그리 크지 않다)의 선장과 결혼하여 세계를 누비고 다니다 보니 생기게 되는 에피소드들은 충분히 이해한다.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자라던 그 조그만 시골 마을을 벗어나 여자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는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는데 밤 중에 길거리를 안 누벼보고 싶겠냐고. 최근에 본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파리를 얼마나 낭만적인 도시로 묘사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내 주변에도 프랑스 파리 하면 미치는 여자들 몇 명 있고. 그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그리워 하다 재회하게 되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는 못했다.


그러나 충분히 볼 만했다



비록 러브 스토리가 참 허접했다고는 보지만 볼 만했던 건 아무래도 비쥬얼한 부분이 있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왼쪽 장면. 사랑하는 여인을 내동댕이치고 난 후, 그녀를 그리워하는 남자 주인공이 그녀를 그리워하며 물 속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과 그녀가 디졸브(한 화면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다른 화면이 점차 나타나는 장면 전환 기법)되는 부분은 애틋한 그리움을 잘 표현한 거 같다. 

<라탈랑트>를 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물 속에서 눈을 뜨고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보인다고 했던 그 말을 기억하고 그런 거다. 그래서 그녀를 내동댕이치고 난 이후에 이 남자 주인공의 행동을 보면 물에 머리를 쳐박는 장면이 많다. 감독은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하기 위해서 여자의 대사를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는. 그렇게 볼 만한 장면이 또 하나 더 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다소 욕정으로 표현한 것인데 잠자리에서 상대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한 번은 남자, 한 번은 여자. 디졸브되면서. 뭐 솔직히 이 장면 보면서 나는 다소 웃기다는 생각을 좀 하기도 했다. 1930년대에 이 장면을 찍기 위해서 배우들은 잠자리에서 상대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몸을 만지는 연기를 해야 했을텐데 얼마나 웃겼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특히나 남자 같은 경우, 자신의 가슴을 만지면서 그리움을 표현하는 게 큭큭. 여자라면 뭐 가슴이 다소 중요한 부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남자가 자기 가슴을 만지면서 몸을 비비 트는 건 좀. ^^; 그러나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비쥬얼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 만큼은 나도 인정~! 이런 비쥬얼적인 요소는 지금 시대의 잣대로 보기 보다는 1930년대의 잣대로 보고 나름 생각해본 거다. 지금 봐도 오~ 괜찮은데 하는 걸 1930년대에 이렇게 표현했다니 뭐 그런 의미지.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장 비고의 마지막 작품

장 비고 감독.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고 <라탈랑트>가 그의 유작이다. 이른 나이에 요절했기에 찍은 영화가 별로 없다. 게다가 나머지는 다 다큐멘터리고 상업 영화라고 할 만한 거는 <라탈랑트>가 유일한 듯. 그의 작품 중에서 그래도 <품행 제로>는 나도 봤는데 <품행 제로>는 별로였다. 그가 유명한 이유를 살펴보니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이다. 추상에 가까워질수록 예술의 영역이라 나는 그 영역은 절대 넘보지 않는다. ^^;

프랑스 감독이다. 알겠지만 프랑스 영화가 참 난해한 게 많다. 한창 영화라는 거에 눈을 떴을 때도 유일하게 소화가 안 되는 영화가 프랑스 영화였고. 그 때 봤던 <퐁네프의 연인들>은 내 개인 평점이 2점이다.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는 작품이었지. 지금 보면 또 모르겠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봤던 때가 20년 전? 정도니까. 근데 공교롭게도 <라탈랑트>가 <퐁네프의 연인들>에 영향을 줬단다. 아~ 그래? <퐁네프의 연인들>을 다시 보면 영향을 줬다는 게 느껴질라나? 볼까? 말까? 볼 영화 많은데... T.T 그래도 <라탈랑트>는 난해하지는 않다. 다소 스토리에 개연성이 없어서 그렇지 충분히 볼 만했다고.

난해하다고 하면 이 영화를 두고 이러저러한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마치 난 글을 썼는데 다른 이가 시적인 해석을 하는 것처럼 시와 같이 표현한 글들이 난해하다면 난해하다 하겠다. 도통 뭔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신기하고. 그런 거는 예술의 영역이다. 그래서 그 영역은 난 절대 넘보지 않는다. 문학을 거론하고 시를 거론하면 난 졸립다. 어~ 그래. 너 쵝오~! 인정할께 하고 그냥 돌아선다. 나는 그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아이폰 5나 아이패드 미니에 대해서 시적으로 해석해주길 바란다. 꽤나 재밌을 듯 하거든.

아~ 평점을 안 줬네. <라탈랑트>는 개인 평점 7점 준다.


고전 명작들 보면 보이는 공통적인 연기 패턴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서로의 눈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러다 갑자기 끌어안는다. 그리고 키스를 한다 해도 머리를 이리 저리 돌리면서 과하게 액션을 한다. 지금 보면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마치 우리가 이수일과 심순애를 보는 마냥. 그러나 그 당시의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다. <라탈랑트>에서도 마찬가지고. 그 당시에 만약 지금과 같이 자연스럽게 끌어안고 키스하고 그러면 그게 파격적이지 않았을래나?

예고편



영화 초반에도 나오지만 장 비고 감독의 <라탈랑트>는 필름 원본이 수없이 훼손되었고 복원 작업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고 한다.


<라탈랑트> 풀영상



근데 자막이 영어가 아니네. ㅋㅋ 참고로 이렇게 고전 명작들 중에 풀영상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의 저작권공표된 때(작품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때)부터 50년 동안만 유지된다. 만들어놓고 공표되지 않은 작품들은 창작된 시점부터 50년간이다. 그래서 올려놔도 이건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 '고전 명작들' 연재는 매주 일요일에 연재할 예정이다.
+ 고전 명작들 리뷰들만 보기 → 리뷰가 있는 80년대까지의 고전 명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