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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vs 대망에 대한 덧글의 답변 본문

지식/독서

삼국지 vs 대망에 대한 덧글의 답변

風林火山 2009.01.28 04:02
원래 덧글에 대해서 답변을 달았는데 확인을 누르니 에러 나는군요. 엄청 길었는데 말입니다. 허무하네요. 그래서 포스팅으로 적고 대신합니다. 이 글은 다음의 제 글에 대한 덧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어차피 덧글 전문이 이 글속에 담겨져 있겠지만 말이지요.



비교의 기준

1. 대망이 삼국지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에 우월한 소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봅니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에는 분명 허구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부분들은 이미 상당부분 밝혀져 있구요. 하지만 이게 삼국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보지 않습니다. 삼국지의 허구성이나 대망의 리얼리즘이나 각자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글쓴이님의 글은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우선 생각해봐야할 부분이 이것입니다. 저는 삼국지의 가치를 폄하하려고 적은 글이 아닙니다. <삼국지>와 <대망>을 비교하려고 한 것입니다. 즉 <삼국지>의 가치가 낮다는 것이 아니라 <삼국지>보다 <대망>이 더 가치있다고 저는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제 나름대로 비교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우열을 가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긴 한데, 그렇다면 무슨 기준에서 우열을 가렸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한 번 생각을 해봅시다. 이 책과 저 책이 있습니다. "이 책 보다 저 책이 더 나아"라고 얘기를 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그 판단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면 그것이 왜 문제가 있는지를 지적해야 하는 겁니다. 허구가 많은 <삼국지>, 역사적 고증을 많이 한 <대망>을 비교할 때의 제가 비교한 기준 중에서 그런 것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다음을 보겠습니다.


허구 vs 사실

물론 이 외에 다른 기준들도 제시가 되어 있습니다만 이것만 놓고 생각해봅니다. 허구라는 것과 역사적 고증이라는 것을 두고 저는 허구보다는 역사적 고증이라는 것이 더 낫다고 주관적 판단을 했습니다. 제가 허구를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소설은 다 무시해야하는 거니까요.

지금 비교되는 소설들은 역사소설입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구보다는 역사적 고증을 통한 이야기가 더 낫다라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허구가 역사적 고증보다 더 낫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셔야 하고 그게 아니면 기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 겁니다.

물론 <삼국지>와 <대망>이라는 것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기준을 제시하면서 비교를 했기에 단순히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 비교 기준이 왜 무의미한 지를 얘기해줘야만 하는 겁니다.

저는 입에 발린 소리, 듣기 좋은 소리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제 주관이 너무나도 뚜렷해서 입장이 강한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얘기에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 논리를 도외시하고 주관적이라는 말로 치부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건 이것과 똑같습니다. 위의 덧글을 남겨주신 분은 다른 이들과 얘기를 할 때 비교를 안 하십니까? "이 책 읽지마. 저 책이 더 나아." 아니 하다못해 "삼국지도 이것보다는 저게 더 나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것과 똑같은 문제입니다.

다만 제가 블로그에 공개를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지요. 사석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공개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름의 논리를 갖출 수 밖에 없기에 저는 비교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역사적 배경

더불어서 대망은 그 소설이 태어난 연대적 상황을 말씀하시면서 삼국지는 그러한 소설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언급하지 않으신거죠? 삼국지 역시 원나라라는 이민족의 지배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명나라가 새워졌을 때 씌여졌던 것입니다. 당연히 자국의 '역사의식' 혹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대망에게는 역사적 맥락상 이런 소설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강변하시면서 삼국지에게는 이러한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으신건 불공평한 비교라고 생각합니다.

<대망>에서 소설의 시대적 상황을 언급한 것은 <삼국지>보다는 <대망>을 읽은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망>이 정말 어떤 순수한 의도에서 적혀졌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군국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부분이라는 얘기가 있고 저도 그렇게 알고 있기에 그렇게 적은 겁니다. 아무리 <대망>이 더 낫다라고 해도 인정할 부분 인정하자는 의미에서지요.

이게 왜 문제시되는 것인지는 제가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 분명 그런 비교를 할 때는 "군국주의 vs 중화주의"라고 하면서 어느 것이 더 낫다라고 할 수 없다고 했거든요. 제가 <대망>을 편파적으로 더 낫다라고 얘기한다면 굳이 소설이 나온 시대적 상황을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급했지요. 왜? 나름 제 기준에서 짚을 것은 짚어보자는 의도입니다.

오히려 그런 시대적 상황을 얘기한 <대망>은 자칫 잘못하면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대망>에는 한국이 언급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켰지요. 그러니 <대망>을 읽다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겁니다. 조선침략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소설이다. 군국주의적 발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얘기한 이유는 짚고 넘어가겠다는 뜻입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가요? 삼국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나관중이 원나라에서 명나라때의 소설가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당연히 자국민들의 의식 고취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제 글의 "군국주의 vs 중화주의"라는 제목에서 포함된 내용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비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교를 해도 무엇이 더 낫다라고 판단하기가 힘듭니다.

제 결론은 그런 것으로는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대망>이라는 소설을 우위에 두기 위해서 한 얘기가 아니라 <대망>에서 지적할 부분을 언급한 것인데 다르게 해석을 하신가 봅니다. 그 말은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팬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듯 한데 그 반론이 그다지 논리적이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삼국지>가 더 낫다는 얘기인가요?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면에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면 중국에서 자국민의 역사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 날조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 또한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면에서 칭찬해야할 일이 되니까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언급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얘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논리적 비약

글쓴이께서는 대망을통해 철학서를 보셨겠지만 저는 삼국지를 통해 역사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각자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층위'가 다른 것일 뿐 어디가 더 우월하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저 역시 대망에 나오는 다케다 신겐, 켄신 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쓴이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대망이 삼국지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하시는 것은 '비약' 아닐까요?

각자에게 동기부여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저 또한 공감합니다. 그 부분을 뭐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뭐라할 꺼리가 아닙니다. 덧글을 다신 님께서 삼국지를 통해 역사서를 들여다 보았다는 것도 책이 주는 크나큰 이로움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삼국지>와 <대망>의 비교가 비약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약이라는 말논리에 문제가 있을 때 하는 얘기입니다.

제가 글을 적은 순서를 보겠습니다.

군국주의 vs 중화주의
나관중과 야마오카 소하치
화려한 전쟁씬과 심리묘사
선과 악의 구도 vs 모든 이들에게 당위성 부여
나에게 대망이란 소설은...
이문열 vs 김훈
나는 삼국지를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작가의 의도, 작가관, 치중한 부분, 전반적인 내용에서 보이는 면을 비교하면서 그 이후에 제 얘기인 "나에게 대망이란 소설은"이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 얘기하신 부분은 제 주관적인 경험이 개입된 부분을 얘기하면서 제가 비교한 부분을 얘기하시는 겁니다. 비교한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얘기해주셔야 제가 납득이 되지요.

아무리 봐도 제 글에서 비약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군국주의 vs 중화주의"는 무승부 판결을 내렸고, "나관중과 야마오카 소하치"에서는 작가관에 있어서 야마오카 소하치에 우세승을 내렸습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무엇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가 있겠지요. 그러면 그것을 얘기해야지 비약이 심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전에서 비약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시고 용어를 적절히 선택해서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관적인 경험만 가지고 <대망>이 <삼국지>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부분은 "나에게 대망이란 소설은..." 부분 밖에 없으며, 이는 비교를 끝내놓고 나서 제 개인적인 견해를 적어둔 것입니다. 물론 비교 속에도 제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비교할 때는 나름 기준대로 비교를 했습니다.

상대의 논리를 언급할 때는 그 핵심을 잘 보고 자의적 해석으로 앞뒤 연결하면서 얘기하기 보다는 그 논리에 맞는 논리로서 얘기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아니면 말싸움 밖에 안 됩니다. 저는 그런 지적인 논쟁이나 담론은 매우 즐기는 편이니 논리적으로 얘기를 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오히려 비약이라고 하는 것은 덧글을 단 님께서 하신 듯 합니다.

그리고 <대망>을 완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키 겐신은 <대망>의 초반에만 나오는데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망>에서 비중있게 다룬 사람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입니다. <대망>을 얘기할 때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키 겐신을 언급하는 분은 처음 본 듯 합니다.

사실 <대망>에서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키 겐신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야망패자>라는 역사소설을 봤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다케다 신겐에 대해서 <대망>에서 비중있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비중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느꼈지요. 게다가 제 닉네임인 風林火山이라는 문구를 쓰게 된 것도 이로부터 생각한 것이기도 하구요.


논리에는 논리로

3. 저의 결론은 '삼국지나 대망이나 글쓴이의 초점이 다른 스타일이 다른 글이다' 라는 것이죠. 삼국지의 허무맹랑함은 서민들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는 대중소설로서 매리트를 보여주었고, 대망의 현실적이고 치밀한 심리묘사는 우리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줍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글쓴이의 초점이 다른에서 초점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요?
2) 스타일이 다른 글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요?

왜 이 질문을 드리냐고 하면 이미 다 고려해서 비교에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질문입니다.

1) 삼국지가 서민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 대망이 우리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준다는데 무슨 문제의식이지요?

저는 <삼국지>를 읽으면서 심각했지 웃어본 적이 없어서 질문을 드리는 것이고, <대망>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해본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게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들이라서...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책이 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를 하시고 싶은 건가요? 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 비교를 잘못이라고 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왜 어디에서 발표한 필독서나 추천서 항목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어떤 것이 필독서고 추천서냐 하는 것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생기는 겁니다. 문제는 저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유도 없이 기준도 없이 제시된 필독서나 추천서에는 맹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비교를 하는 부분에 있어서 제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지요. 제가 어찌 감히 <삼국지>를 두고 폄하하는 발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로 제 비교는 비교의 기준이 들어볼 만하다 하면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 하고 생각하셔야 할 문제이고 그게 아니라면 제 논리에 상응하는 논리로 얘기를 해주셔야 합니다. 님의 덧글 하나에 이렇게 긴 글을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 생각을 온연히 담기에는 글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답변을 주시려면 제가 적은 글들을 꼼꼼히 살펴보시고 적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논리적으로...


기준의 중요성

더군다나 두 소설은 서로다른 국적(중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서로다른 생각과 문화를 지니고 있고, 소설은 이를 반영하는 매개라면 두 소설의 우월함을 따지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독자들이 느끼는 주관적 초점(포인트)가 다를 뿐입니다.

삼국지가 재미있으면 삼국지가 재미있는 것이고, 대망이 재미있으면 대망이 재미있는 것 뿐입니다.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적혀지고 작가가 다른 나라(문화와 민족성 등등의 것들이 다른) 사람인지라 비교가 의미가 없다는 것인가요? 조금 설득력 있게 얘기를 해주셔야 할 듯 합니다. 그럼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랑 중국에서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랑 비교를 할 수가 없는 거겠군요. 왜? 문화가 다르니까.

그러나 비교가 가능한 이유가 뭘까요? 둘이서 동일한 시험을 쳐서 우열을 가릴 수 있습니다. 즉 기준이 동일하면 비교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수학 시험과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 번 쳐서 점수가 낮다 해서 그것을 일반화시킬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몇 번의 시험을 쳐야 그 둘을 제대로 비교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도출하게 되지요.

님께서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시는 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잘 읽는 분야의 책 중에서 이거보다 이게 낫다는 것이 스스로 판단되는 경우는 없는지요? 저는 단지 그것을 제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삼국지>가 낫다고 한다면 그것을 두고는 뭐라할 꺼리는 안 되지만 제 얘기에 문제를 삼을 때는 다음처럼 얘기하셔야 합니다.

1) 기준이 잘못된 부분에 대한 논리적인 얘기
2) 주어진 기준에서 판단이 잘못된 부분에 대한 논리적인 얘기

이래야 저도 아 그 부분은 저도 인정하고 충분히 님의 얘기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얘기가 다릅니다. 물론 맞는 얘기를 하신 부분이 있지만 그 부분은 제가 항상 얘기하는 남들이 듣기 좋은 소리, 입에 발린 소리의 일반적인 얘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얘기 너무나도 많이 들었고 그런 얘기의 허점이 무엇인지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면이 어떤지 잘 압니다.

너무 나쁜 면만 보고 자라서 그런지 그런 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님이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제가 그런 성향이다 보니 그런 얘기에 저는 인정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인색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논리에는 논리로 대응을 해주셔야 합니다. 가끔씩 의도적으로 감정을 드러낸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적어도 <삼국지>와 <대망>에 대한 비교는 가급적 감정 배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만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제가 <대망>을 우위에 두었기 때문에 편파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는 점은 제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그럴 경우에는 제 논리에 문제가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시고 그 부분에 대한 지적과 함께 얘기를 이끌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많은 삼국지 평역본

4. 마지막으로 김훈과 이문열 작가를 비교하시면서 대망과 삼국지를 비교하셨는데, 삼국지 역시 여러 작가들이 번역한 판본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지 '이문열'이라는 평역자의 판본만으로 삼국지와 대망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몇가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1) 제가 여러 작가들의 번역한 판본들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2) 그 판본들이 대부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기초로 하고 있지 않나요?
3) 우리 나라에서 <삼국지>해서 하나만 책을 꼽으라면 어떤 책이 꼽히나요?

제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두고 얘기한 것은 대표성입니다. 대표성을 띈 <삼국지>이긴 하지만 비교를 할 때는 삼국지연의를 두고 얘기한 거나 매한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문열과 야마오카 소하치"를 비교한 것이 아니라 "나관중과 야마오카 소하치"를 비교한 것입니다.

만약 정사 삼국지를 언급하신다면 제가 비교한 것은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연의입니다라고 얘기 드릴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금 마지막 질문은 이해가 안 갑니다. 실제 제 글에서도 정사 삼국지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음 부분입니다.

"정사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이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사 삼국지 즉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삼국지를 읽어보면"

그럼 제가 그 수많은 평역들을 비교해야 하는 건가요? 김홍신의 <삼국지>, 황석영의 <삼국지> 그러면서 말입니다. 그 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삼국지>끼리 비교한 게 아니거든요. 삼국지연의 즉 원본 소설을 비교한 겁니다. 다만 대표성 때문에 이미지에는 이문열의 <삼국지>를 올려둔 것이지요. 안 그랬으면 왜 제가 "나관중과 야마오카 소하치"라고 단락을 나누었겠습니까?

그리고 김훈과 이문열 작가를 비교하면서 대망과 삼국지를 비교한 게 아닙니다. 대망과 삼국지를 비교하면서 김훈과 이문열 작가를 비교한 것이지요.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왜 이문열과 김훈 작가를 비교했겠습니까? 따로 포스팅을 해도 되는데 말이지요. 그것은 제가 역사소설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비교를 한 것입니다.

그것은 위에서 비교 기준을 제시하고 비교에서 제가 판단을 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즉 제 판단이 왜 이렇게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저는 역사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문열 작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드러낸 것이구요.

* * *

덧글이 길긴 했습니다만 제 답변은 그 몇 배나 길게 얘기를 드린 것은 어느 정도 이런 피드백이 올 거라는 것을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강한 어조는 되도록 자제를 했습니다. 아시는 분들 아시겠지만 저는 공격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 물러섬이 없습니다. 끝을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지요. 허나 그 이전에는 가벼운 터치로만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상했던 바이기에 그리 기분 나빠할 것은 없습니다만 가급적 논리적으로 지적을 해주시면 화두를 던진 저로서도 생각치 못한 부분을 생각해볼 여지도 생기고 다른 논리를 읽어보면서 또 저만의 대응 논리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그런 것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아무리 저를 비판하는 글을 쓴다 해도 그 글이 논리적이라고 하면 저는 충분히 들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이지 않은 글에는 사실 답변을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대응이라고 얘기를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소한 대응을 하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그러나 제가 화두를 던졌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라고 생각하면서 길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어떤 지적이라도 상관없습니다만 조금은 들어볼 만한 얘기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좀 더 들어볼 만한 답변이 나왔으면 저로서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더불어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하게 해주신 "약수"라는 닉네임을 다신 분에게는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누군가는 분명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얘기라고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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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 약수 2009.01.28 13:58 신고 새벽에 제 개인적인 소견을 줄줄줄 늘어놓다보니 오해도 많고 그릇된 표현들이 많이 있었나 봅니다.

    저의 이런 변변치 않은 댓글에 장문의 글로 답변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1.소설의 우위를 판단하는 기준에 '역사적 고증'이라는 기준이 성립 될 수 있는가?

    글쓴이께서는 역사소설의 우위 내지는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역사적 고증의 충실도'를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자면 '역사적 고증'이 그 역사소설의 장점은 될 수 있지만 다른 소설을 비교하는 '객관적 잣대'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문학작품 간의 객관적인 비교 자체가 어렵다고 봅니다. 여러 문학평론가 내지는 학자들이 소설 혹은 시를 보고 평론을 하며, 과거의 작품들을 보고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다'와 같이 다른 작품들과 비교를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죠. 당대에는 전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작품들도 얼마든지 그 가치가 후대에 의해 밝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소설이던 시던)간의 비교는 다분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고 개인의 '취향'이 반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저의 견해를 바탕으로 글쓴이께서 지적한 '역사적 고증'문제를 이야기 하자면 혹자는 삼국지의 허무맹랑한 역사소설을 좋아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대망의 사실성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 하고 싶습니다. 글쓴이께서는 의도하신 것처럼 명확한 기준을 세우셨지만 독자인 저에게는 다분히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장점이 삼국지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말씀하시고 계신듯 합니다.

    삼국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제갈량이 조인을 편지 한장으로 죽게 한다는 장면이라던가 상대방의 마음까지 읽어내서 책략을 짜는 장면이라던가 하는 부분은 글쓴이께서 보기엔 대망보다 낮은 평가를 하게 만드신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삼국지가 대망보다 높은 평가를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차라리 저는 '삼국지의 장단점은 이러하고, 대망의 장단점은 이러하다. 두 소설의 가치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라는 글이 더 낫지 않았나 봅니다.


    2. 역사적 배경과 소설

    역사적 배경에 있어 글쓴이께서도 '판단하기 힘든 문제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다만 제가 댓글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글쓴이께서 문두에 '대망에서 소설의 시대적 상황을 언급한 것은 삼국지보다는 대망을 읽은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고 서술하고 계시는데, 이 말씀은 타당하지만 삼국지가 탄생하게된 역사적 배경 내지는 시대적 상황을 아는 사람 역시 적다는 부분을 간과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망이던 삼국지던 그 소설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자인 우리로서는 군국주의 혹은 중화주의적 사관에 매몰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대망이나 삼국지는 거기서 거기라는 글쓴이의 견해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3. 스타일이 다르다?

    나관중과 소하치는 분명 글쓰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그래서 나관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재미 내지는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소하치는 사실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런 작가관에 글쓴이께서는 소하치의 우세승을 주신 것에 대해서 저는 '나관중의 작가관에 우세승을 주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잠깐 언급을 하자면 대망에서 주인공이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런 유명한 인물들 보다는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다케다 신겐 이라던가 켄신과 같은 사람들에 주목한 것입니다. 마치 삼국지에서 제갈량, 사마의와 같이 익숙한 인물들이 삼국지의 주된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그 와중에 등장하는 왕평, 등애와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 부분을 가지고 대망을 완독하셨은지 궁금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니 저로서는 좀 씁쓸하네요)


    4. 글쓴이께서 제기하신 질문들

    1) 글쓴이의 초점이 다르다고 표현한 부분은 나관중과 소하치의 소설이 보이는 경향성을 의미합니다. 나관중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보다는 야사 내지는 흥미위주의 소설을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삼국지는 수호지/서유기와 같은 반열에 들고 있지요. 소하치의 소설이 가지는 경향성 내지는 특징은 앞서 글쓴이께서 설명해 주셨으니 이 부부은 제외하겠습니다.

    2)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은 문체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소하치의 소설에서 보이는 문체가 있을 것이고, 나관중의 소설에서 보이는 문체가 다를 것입니다.

    추가적인 질문1) 제가 고등학교를 다녔을 당시 '임진록'과 같은 소설들을 교과서에는 '병자호란으로 인한 울분을 토로한 작품이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소설을 통해 느꼈던 것이죠. 삼국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삼국지 자체가 그렇습니다. 남송시대 주희는 위/촉/오 삼국의 정윤논쟁에 깊숙히 개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남송이 북방 이민족에 밀려 남쪽으로 도피해있었던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죠. 남송의 주희가 지식인들간의 치열한'정윤논쟁'을 통해 촉나라의 정통성을 인정하였다면 나관중의 삼국지는 서민들에게 그 특유의 필체를 통해 서민들에게 어필하였던 것입니다. 매일같이 조조에게 쫓겨다니며 방랑생활을 하던 유비가 한중전투에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한 장면은 분명 독자층에서 통쾌함을 주기에 충분한 장면이었습니다. 제갈량이 번번히 사마의의 대군과의 접전에서 승리하였던 장면 역시 그러하구요. 남송시대 주희서부터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까지 수호지/삼국지와 같은 소설이 등장하고 그보다 앞서 지식인간의 정윤논쟁이 일었던 것은 그만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지식인이던 서민층이던)에게 공감을 불어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점을 '서민층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고 표현한 것에 불과하지요.

    추가적인 질문2) '문제의식'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제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만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쓴이께서 대망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표현하셨는데 저는 이 부분을 '문제의식'이라는 잘 못된 표현을 적은 듯 하네요 오해가 있으셨다며 죄송합니다.


    5. 기준은 명확하지만 판단은 그렇지 못합니다.

    글쓴이께서는 '일본에서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랑 중국에서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랑 비교를 할 수가 없는 거군요' 라는 비유를 들으셨는데, 이는 잘못된 비유입니다. 어찌 문학과 수학이 같을 수 있는 것인가요? 수학은 그 엄밀하고 치밀한 증명이 필요하고 공리와 정리를 사용한 풀이과정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잣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그런 객관적인 기준잣대가 있을까요? 저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일한 시험문제를 주어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글쓴이께서 전편의 글에서 제시하신 기준이라는 것이 다분히 대망의 장점들에 치우진 판단을 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오히려 반대로 제가 '소설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파급력'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대망과 삼국지를 비교했더라면 당연히 삼국지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분히 글쓴이의 판단들은 그저 글쓴이의 취향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주관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구요. 이러한 기준들이 명확하긴 하지만 글쓴이의 판단은 다분히 대망을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이 점에 있어 저는 '삼국지'를 옹호하는 것일 뿐이구요. 객관적인 기준잣대가 아닌 주관적인 기준잣대로 대망이 우월하다 삼국지가 우월하다 따질 수 없는 문제입니다

    '화려한 전쟁씬 VS 심리묘사'라는 부분에서 대망은 삼국지와 차원이 다른 전쟁씬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차원이 다르다기 보다는 '층위'가 다르다는 것 아닐까요? 초딩스러운 전쟁씬이라는 비관적 시선보다는 스펙타클한 전쟁씬 이라고 보실 순 없는 걸까요? 글서 글쓴이의 평가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대망을 편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의 구도 VS 모든 이들에게 당위성 부여' 이 부분 역시 그렇습니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극악한 캐릭터로 나옵니다. 하지만 초반부에 '치세의 능신이오, 난세의 간웅이다'는 부분에서 조조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한편으로는 허소의 무례한 발언을 넘기는 장면이라던가 조조가 행실이 불량한 곽가를 예의바른 공융보다 중용한 부분들을 비롯해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장면들은 독자들에게 '아~ 조조는 진짜 영웅이구나'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악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단순한 선악구도로만 삼국지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평가 아닐까요?

    '나관중과 야카오마 소하치' 라는 부분 역시 그렇습니다. 소하치가 일본에서 손꼽히는 역사소설가라면 나관중은 중국에서 손꼽히는 소설가입니다. 자국 내에서 손꼽히는 소설가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그는 적어도 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중적인 소설을 적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지는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관중은 어느정도 각색이 필요했겠지만 전체적인 역사적 줄거리는 왜곡시키지 않았습니다. 삼국지에서 사실과 허구의 비율이 7:3 정도라면 대망은 2:8 정도일 것입니다. 저는 위와같은 정도의 차이가 대망이나 삼국지나 오십보백보라고 본 반면 글쓴이께서는 중요하게 부각시킨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단 주된 요지는 님께서 제시하신 기준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지적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을 바탕으로 대망에 편들어주기 식으로 글을 적으셨기에 저는 삼국지를 편들어주기 위함입니다. 글쓴이께서 기준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기준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6. 평역의 한계.

    1) 제가 여러 작가들의 번역한 판본들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부분은 저로서 황당한 질문이네요. 글쓴이께서는 본 글에 이문열의 삼국지 외에 다른 삼국지 번역들을 언급하지 않으셨는데 제가 글쓴이께서 다른 삼국지 번역본을 알고계시는지 모르고 계셨는지 알 도리는 없습니다.

    2) 그 판본들이 대부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기초로 하고 있지 않나요? 이 질문은 당연히 '네'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네요.

    3) 우리나라에서 '삼국지'해서 하나만 책을 꼽으라면 어떤 책이 꼽히나요? 물론 지금 현시점은 이문열의 삼국지가 가장 유명한 책이긴 하지요. 하지만 이문열의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는 엄연히 다릅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글쓴이께서 지적하셨지만 '평역'입니다. '직역'과 다릅니다. 우리나라에는 김구용 선생이 번역한 삼국지 '직역본'이 있습니다. 단지 대표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평역'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에도 이문열의 삼국지와 소하치의 대망을 비교한 것은 그릇된 비교 아닐까요?

    글쓴이께서 엄밀하게 '나관중의 삼국지와 소하치의 대망을 비교한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면 이문열의 삼국지는 언급하지 않으셨어야 했습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정확하게는 모종강본)를 다시 꼬아서 내놓은 것이거든요. 이문열의 삼국지 = 나관중의 삼국지 라고 하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7. 글을 마치며...

    저도 갑자기 장문의 글을 쓰려고 하니 손이 아프네요. 평소 글을 쓰지 않은 탓인가 봅니다. 혹시 제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 있거나 혹은 그릇된 문법을 사용하여 글쓴이께서 오해를 하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표현을 잘못한 탓일 겁니다. 앞서 말씀하신 '문제의식'이라던가 '역사적 배경'이야기와 같은 부분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겠죠. 이 부분은 저 역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lsk.pe.kr BlogIcon 風林火山 2009.01.29 00:27 신고 긴 덧글 잘 읽었습니다. 답글 또한 길어질 듯 한데 오늘은 시간이 안 될 듯 하고(물론 시간이 되면 새벽에 길게 적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저랑 사뭇 다른 견해를 갖고 계신 듯 합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일단 다음의 제 글을 링크시켜 둘 터이니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제 답글은 또다른 글로 포스팅하겠습니다.


    http://lsk.pe.kr/entry/요코-이야기-어떻게-봐야-하나
    http://lsk.pe.kr/entry/나관중의-삼국지에는-허구가-많다-1
    http://lsk.pe.kr/entry/역사에-대한-관점에서는-조심스럽게-봐야할-마리-앙투와네트
    http://lsk.pe.kr/entry/우리가-역사-소설을-바라볼-때-가져야할-자세
  • 직전신장 2009.02.09 21:13 신고 야아 이거참 지식인들의 불꽃튀는 논쟁이군요...... 개인적으로 중국의 삼국시대와 일본전국시대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두분의 의견표출을 상당히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어차피 이런 얘기는 사실 자신의 역사관과 문학관이 견지되어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의견을 강복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두분도 그걸 알고 계시는것 같은데... 제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어쨌든 두 책은 씌여진 시기와 역사적 문학적인 가치가 다르므로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재미가 주된 목적인 소설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책을 보고 좀더 깊이 성찰하게 된다 라는 것은 이차적인 목적으로(물론 그것자체에 목적을 두고 소설을 읽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이해하는 사람의 개인차에서 발생되는 부산물인것 같아요. 씌여진 목적, 의도 이런것은 관계없이 독자가 즐겁게 읽고 물론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부가적효과도 얻으면 좋겠지만 분명 소설을 읽는 이차적인 목적인 개인차에서 발생되는 부가적효과들과 역사소설이 역사와 관계없는 허구를 지나치게 끼워넣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소설'의 가치비교를 하는것은 넌센스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지연의가 고전소설로써, 정사삼국지가 역사서로써 이제까지 수백년동안 읽혀왔던 이유가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망, 오다노부나가, 삼국지연의, 삼국지등 몇권 읽어봤지만 그 소설들의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음, 정말 가치가 높은 역사소설들이군, 정도였지요. 흡입력을 비교하면 모르겠지만말이죠. 아무튼 두분의 문학적 지식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자주 놀러올게요ㅋㅋㅋ
  • Favicon of http://lsk.pe.kr BlogIcon 風林火山 2009.02.10 16:56 신고 긴 덧글 잘 읽었습니다. 직전신장님의 그런 생각도 일리가 있습니다. 허나 직전신장님이 보시는 것은 3인칭 관점이고 그것은 한 가지 관점에서는 충분히 수긍을 하나 1인칭이나 2인칭의 관점이 되면 또 관점이 달라집니다. 어떤 관점을 적용해도 제 관점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비교를 한 것이기에 그 점을 잘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님의 관점으로는 다른 역사소설에서 한국을 이상하게 그린다 하여 그 소설을 뭐라할 수가 없겠고 그렇다면 '요코이야기'에 우리가 발끈하는 것도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며, 많은 분들이 이러한 점에서 자신의 관점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바라본다고 생각하기에 적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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