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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삼국지 vs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


<삼국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이하 대망이라 표기)과 견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동급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결코 저는 아니라고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대망>이라는 소설은 제 인생에서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책이기도 해서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두 책을 다 읽은 저의 어조로 비교해드리지요.

<삼국지> 팬들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무슨 얘기가 또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만 <삼국지>와 <대망>을 다 읽어보고 왜 <삼국지>는 '청소년 필독서'에 올라가 있지만 <대망>은 '경영의 필독서'로 언급이 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내가 삼국지 팬이기 때문에 삼국지가 더 낫다는 그런 얘기는 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경영자의 눈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의미를 너무 모르시는 분이 많아서 이번에 맘먹고 비교를 해봅니다.


군국주의 vs 중화주의

우선 많은 분들이 언급하는 것은 바로 <대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쓰여졌는가 하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듯이 일본 패망 이후에 침체된 일본인들의 의식을 고무하기 위해서 적은 것이라는 것 또한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일본의 식민지라는 뼈아픈 과거를 가진 우리에게는 곱지 않게 보일 수 있겠습니다.

그럼 삼국지는 어떤가요? 중화주의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중국(中國)이라는 것이죠. 그럼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 역사와 전혀 무관한가요? <남한산성>을 보시길 바랍니다. 전혀 연관이 없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청이라는 나라는 한족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나라는 아닙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중국 한족이 아니라 이민족이 세운 나라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르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그 이전의 명나라, 원나라, 송나라, 당나라 등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와는 지리적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가 왜곡되고 날조된 것도 많지요. 제가 볼 때는 매한가지입니다. 한족의 정통성을 중심으로 쓰여진 <삼국지>나 일본 자국민들의 의식 고취를 위해서 쓰여진 <대망>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교를 해도 무엇이 더 낫다라고 판단하기가 힘듭니다.


나관중과 야마오카 소하치

이번에는 그 소설을 쓴 작가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 나라의 평역된 <삼국지>들은 대부분 나관중이라는 작가가 쓴 삼국지연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설입니다. 역사서가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래서 역사적 사실과는 괴리감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재해석이라는 관점으로 본다해도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하나인데 해석은 여러개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 또한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해석이 아니라 왜곡을 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고로 그것은 소설이라 하더라도 고증을 거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나오는 사건은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없는 사건을 만들어낸 허구도 많습니다.

그럼 <대망>을 볼까요? 아직 제가 정보력이 덜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망>을 쓴 작가인 야마오카 소하치가 보수주의 성향의 사람이고 극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들어본 바 있지만 <대망>이라는 소설에서 사실을 왜곡시킨 부분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적어도 야마오카 소하치는 일본의 3대 역사소설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자국 내에서 3대 역사소설가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그는 적어도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서 <대망>이라는 소설을 적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망>이 역사서냐? 그건 아니지요. 어떻게 <대망>에 언급된 그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심리를 알 수 있겠습니까? 역사서는 사실의 기록이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작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지요.

자 정리를 해봅시다. 나관중과 야마오카 소하치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소설을 썼다. 그러나 나관중은 사실을 왜곡시키면서 소설을 썼고, 야마오카 소하치는 고증을 해서 사실은 그대로 두되 작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등장하는 역사적 실존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서 작가만의 필치로 그려냈다.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야마오카 소하치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칩시다. 그런다 해도 나관중의 <삼국지>와는 매한가지입니다.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런 부분이 없기 때문에 <삼국지>와 <대망>을 비교하면 <대망>이 더 낫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들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심리 묘사를 작가의 생각만으로 지어낸 허구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그 심리를 유추해낸 것이기 때문에 나관중의 <삼국지>와는 비교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화려한 전쟁씬 vs 심리묘사

정사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이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사 삼국지 즉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삼국지를 읽어보면 나관중의 삼국지 즉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하는 화려한 전쟁, 전투씬은 사실과는 다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소설이니까 조금은 부풀릴 수도 있다는 부분 그 부분은 충분히 인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이가 없어했던 부분은 <대망>은 <삼국지>에 비해서 전투씬이 재미없다는 겁니다. 너무 현실적인 전투씬이라서 그런 거지요. 이 무슨 초딩적 발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분들에게는 <삼국지>가 아니라 무협지를 권합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기에 무협지와 <삼국지>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럼 <대망>은 현실적인 전투씬이 있어서 재미가 없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삼국지>에서는 엿볼 수 없는 맛이 있지요. 바로 심리묘사입니다. 그 심리묘사가 매우 리얼하기에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요.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영웅들의 입장 차이와 그 속의 심리적 갈등이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다보면 빠져듭니다. 빠져들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제가 너무 무례한 발언을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만 수준이 다릅니다. <삼국지>를 마치 무협지처럼 재미로만 보고 캐릭터 자체에 심취하는 것과 <대망>에서 각 영웅들의 심리 묘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대망>에는 철학이 녹아 있다고 생각하지요.



선과 악의 구도 vs 모든 이들에게 당위성 부여

<대망>에서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삼국지>는 매우 편파적입니다. 漢의 정통성을 살리기 위해서 유비는 선이고 나머지는 악으로 묘사가 되어 있지요. 물론 이는 작가의 관점에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역사적 왜곡은 분명 지적되어야할 부분이긴 합니다만 이걸 두고 뭐라할 꺼리는 아니지요.

그러나 무엇이 더 나은가를 두고 비교할 수는 있습니다. <대망>에서는 선과 악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들간의 갈등 속에서 역사가 기술이 됩니다. 승자의 기록이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대망>에서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승자와 패자는 갈리지만 저마다 그에 합당한 당위성이 부여됩니다.

단순히 사실만을 두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옳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겁니다. <삼국지>에서는 전혀 못 느낀 부분입니다. 제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인간 심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준 게 바로 <대망>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나에게 대망이란 소설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사람은 발전을 합니다. 경영자의 길을 걷다가 다른 길을 찾아야할 때 즈음에 독서 삼매경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오래전부터 아버지께서 권해주신 <대망>이라는 소설을 접했지요. 그러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졌습니다. 그 때 제 머리속에서 되뇌이던 생각들은 다음의 것들입니다.

- 리더란 무엇인가? 바람직한 리더상이란 무엇인가?
- 리더와 참모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바람직한 리더와 참모의 관계는?

너무나도 다른 세 명의 인물이 나오는 <대망>을 보면서 정말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바람직한 리더라는 것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상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등 사실 이 이후에 제가 리더십에 대해서 언급하는 많은 얘기들은 이 32권의 대하소설 <대망>에서 다 비롯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별로 변한 게 없지요.

<대망>을 본 이후로 저는 철학서를 접하게 됩니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 나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제가 <대망>이라는 소설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삼국지>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솔직한 저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삼국지>와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지요.

어떤 리뷰를 보니까 <대망>이라는 소설을 청소년들에게 읽히면 안 되겠다고 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었지요. 웃긴 것은 <삼국지>는 '청소년 권장 도서'라는 겁니다. 오히려 무협지에 가까운(무협지에도 수많은 멋진 영웅들 많지요.) <삼국지>는 청소년에게 권하면서 <대망>을 권하지 않는다니 이해가 안 가더군요.

물론 청소년 수준에서 <대망>의 깊이를 이해하기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었으니 그런 것이죠. <대망>보다 <삼국지>가 낫다는 겁니다. 전쟁씬도 화려하고 말이죠. 아주 초딩다운 생각입니다. 왜 경영자들이 <대망>이라는 것을 필독서로 일컬을 정도로 높이 치하할까요? 일본 우파 계열의 작가인 야마오카 소하치가 쓴 작품을 말입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문열 vs 김훈

제가 소설가 이문열씨를 그닥 높게 평가하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필이 있고 문학적 가치를 담은 글을 쓰는 작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만약 제 업(業)이 작가이고 역사소설을 쓴다면 저는 그렇게 쓰지 않았을 거 같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제가 알기로는 이문열의 삼국지는 평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역은 있는 그대로 번역을 한 것이고 평역은 가감을 가해서 역자의 관점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꼭 이문열 작가가 한국의 역사를 쓰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닙니다. 그 정도 글필로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쓴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말이지요. 그래도 김훈이라는 작가가 있어 다행입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소설을 평역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게 <삼국지>가 가진 힘이니까 말이죠. 의식 있는 작가라면 아니 제가 만약 그렇게 해서 <삼국지>를 쓴다면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얘기를 풀어나갔을 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원본 놓고 해석하면서 그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가감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이건 쉽죠. 그에겐 글필은 있으니 말입니다.

가끔씩 의식있는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문열 작가를 보면서 뭐가 의식이 있는 것인지 저는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출판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제가 이문열 작가를 두고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문열은 삼국지로 돈 많이 벌었잖아요. 평생 먹고 살..."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아니죠. 삼국지로 부자가 됐죠."

이 말은 원래 돈은 많이 버는데 삼국지를 통해서 부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이름이 있어서 돈을 번다고 한다면, 정말 자신이 의식 있는 작가라고 한다면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이문열 작가라는 사람을 그렇게 보지 않았던 것이 <삼국지>를 보면서 느꼈던 것이지요.

그에 반해 김훈은 좀 다릅니다.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글필로 우리 나라 역사소설을 쓴다는 것만 봐도 압니다. 의식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을 이렇게 결과로서 드러나는 거라 봅니다. 게다가 <칼의 노래>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만 <남한산성>과 같은 경우는 정말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필히 취해야 하는 부분을 갖고 쓴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제 리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리더와 참모, 리더십 등등에 대해서 언급된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리뷰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저는 인간, 리더십 등에 대한 부분을 역사 소설을 통해서 많이 배웁니다. 물론 그 근저에는 <대망>이라는 소설이 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남한산성>을 보면 <대망>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이들이 당위성을 가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추구했다는 겁니다.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리뷰는 시국이 어떠한 때인데 탁상공론을 하고 있느냐로 귀결이 됩니다만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대사 하나 하나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역사소설은 이래야 하는 겁니다.


나는 삼국지를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그럼 저는 <삼국지>를 폄하할까요? 아닙니다. <삼국지>를 좋아하긴 하지만 <대망>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맛이 다르다는 정도와 수준이 다르다는 것은 다른 겁니다. 그래도 삼국지 재미있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또 <삼국지>를 주제로도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기에 저 또한 <삼국지>를 좋아하긴 합니다. 단지 <대망>과 비교를 불허할 뿐이지요.

삼국지에 대한 기존에 적은 글들을 옮겨둡니다. '제 블로그 주요 글모음'이라는 공지에 보면 삼국지라는 란이 따로 있습니다. 그 란에 링크시켜둔 글들이지요. 이제 하나 더 추가가 되겠네요. 지금 이 글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