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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로스트 라이언즈: 명분없는 전쟁에 대한 다양한 시선


나의 2,725번째 영화. 영화는 그다지 재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사를 음미하면서 무슨 뜻인지를 꼽씹다보면 그리 만만하게 볼 영화는 아니다. 대사를 몇 번씩 반복해서 볼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영화였다.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대학교수, 저널리스트, 상원의원, 대학생들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는데 서로 다른 시선들 속에서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건 무엇인지를 넌지시 얘기하는 듯 하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 작품.


원제: Lions For Lambs

1차 대전 당시 독일 장교가 영국군을 보면서 했던 얘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양이 이끄는 사자를 뜻한다.(용맹한 전사를 이끄는 우둔한 장교들을 뜻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하면서 자신이 믿는 바를 보여주고자 했던 두 대학생을 사자로 표현했고 전쟁을 정치로 바라보는 상원의원을 양으로 묘사했다. 퍽이나 안타까웠던 건 자원 입대하는 건 아니라면 말리는 대학교수가 Lions for lambs를 얘기하며 설득하자 이런 대답을 한다.

우리도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요.

두 대학생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고 이를 두고 뭐라할 수는 없다. 좀 더 깊고 넓은 시야를 가진 대학교수가 하는 얘기에 수긍을 하면서도 반박을 하는 그들의 논리를 이해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건 그들이 비록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가진 똑똑한 대학생들이긴 했지만 보이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한계에 있다. 보인다고 그게 다 진실은 아니다. 그게 안타까웠다.


시스템 그리고 자본

영화 속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사들이 꽤나 많았다. 이 영화가 비록 미국의 현재 자화상을 보여주는 영화인지는 몰라도 비단 미국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속박하게 만든 자본을 양산하는 시스템.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이 시스템 덕분에 우리는 이 시스템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나 또한 이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그 시스템과 제도를 전복시킬 만한 강력한 힘을 만들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는 생각 밖에는... 아마도 죽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듯 싶다.

8학년의 50%가 쓰기나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
노동자의 25%가 제 기능을 못하면 대공황이라고 부른다.
50%의 학생이 제 기능을 못하면 그걸 뭐라고 불러야하나?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하기 이전에 발표를 하면서 했던 말인데 정말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가진 대학생들이다. 틀린 말 하나 없고 그들의 열정과 정신을 높이 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대하기에는 너무나 맑았고 순진했다. 그게 그들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발표하면서 자유롭게 비판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교육이 너무나 부러웠다. 권위 앞에서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상아탑 속의 일부 교수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하면서도 위트로 가볍게 넘기기도 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저널리스트와 정치인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을 몰아낸 거나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그렇듯이 명분을 어거지로 만들어내가면서 전쟁을 벌이고 이를 정치에 활용하는 정치인과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의 단독 인터뷰 취재를 맡은 한 여성 저널리스트와의 대화를 보면 다소 지루하긴 하지만 정치에서 말하는 명분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야망을 위한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영화에서 저널리스트는 비록 단독 취재라는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 그게 자신의 야망을 잘 드러내도록 선전하라는 것임을 눈치채고 기사를 적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전장에서 피를 흘려봤나요?
정치인: 정보부대에서 6년이나 있었어요.
저널리스트: 보병은 아니었잖아요.
정치인: 전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했어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자국민들을 희생시켜가면서 명분을 만들어내야 하고 야망을 위해서 쓸데없는 희생을 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 그 시스템 자체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마치 워 게임을 하듯이 책상에 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모습과 참전한 두 젊은이가 장렬히 전사하는 모습이 교차되면서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교수와 학생

영화 속에서는 교수와 한 학생의 대화도 매우 비중있게 다룬다. 그 누구보다 정곡을 찌르면서 토론에 적극적이었고 수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한 학생이 갑자기 수업에 무관심해진 이유를 알기 위해 교수는 그 학생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얘기를 한다. 내가 볼 때 이 학생 매우 똑똑한 친구다.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그것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며 굳이 시스템을 바꾸려하기 보다는 순응하면서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그와 교수의 마지막 대화가 인상깊다.

교수: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싸우는 사람도 많아.
학생: 시도해보고 실패하는 것이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거죠?
교수: 그래
학생: 하지만 그 자리에서 끝나면 어쩌죠?
교수: 최소한 뭔가를 한 거지.


누굴 탓할 수 있으리요?

*  *  *

생각해볼 대사가 많은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는 다소 지루한 편이다. 너무 잔잔하고 몇몇 사람들의 대화로만 영화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뭐랄까? 토론이라 하더라도 열띤 토론이라기 보다 조용히 전개되는 토론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개인 평점 7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