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주변에서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 추천해서 산 책이다. 과연 하바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 불리울 만큼 값진 책이었다. 명불허전. 이런 책은 세대가 바뀐다 하더라도 읽힐 가치가 있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책으로 다소 어렵게 보이고 두꺼워 보이지만 쉽고 술술 읽혀서 읽다보면 어느새 다 읽어버린다. 따라서 책을 읽지 않는 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좋은 책은 한 번 즈음 읽어보길 바란다. 내가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을 권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하면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물론 어느 책을 읽어도 생각없이 읽지는 않겠지만 내가 말하는 생각이라는 건 적극적인 생각으로 영어의 listen과 hear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연속된 정-반-합) 사고 속에서 오랜만에 참 재밌고 알찬 독서를 한 것 같다. 필독서라 권하고 싶은 도서다.
이 책을 권하는 세 가지 이유
① 세상살이 정답은 없다. 왜 그런지를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들이 반복된다. '어 그렇네' '어 아니네' 무엇이든지 일장일단이 있는데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지금껏 수많은 철학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토론했던 내용이다. 어떠한 원칙, 주장, 견해라 하더라도 모든 경우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가 없기에 정답이 없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는 거다.
인생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은 정답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과학의 극단에 있는 부분의 과학 즉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을 들여다보면 이게 과학이야? 라고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 꽤 있다.) 사람끼리 부딪히면서 영위되는 세상에는 정답이 있을 순 없다. 그래서 난 항상 예전부터 얘기해왔다. 상황에 따라 더 나은 답은 있기 마련이라고. 어떤 특정한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그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이냐는 게 중요한 법이다.
② 철학이란 어려운 게 아니더라. 삶의 일부이더라.
철학이라고 하면 머리 아픈 학문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는 그랬으니까. 그러나 거기에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그만큼 생각하는 것 그 자체를 즐겁게 해주니까 말이다.(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현실과 동떨어져서 생각만 하게 되기 쉽다. 세상과 담을 쌓고 말이다. 나 또한 겪어본 지라... 그래서 밸런스가 중요하다. 치우치면 안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수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어렵지 않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 속에 그러한 사상들을 녹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철학자들의 사상이 서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이해하기도 쉽게 되어 있다.
③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그래서 가슴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공리주의'이라는 공식을 무조건적으로 외우는 게 아니라 읽다보면 공리주의의 개념은 저절로 알게 되고 그게 현실에 접목되었을 때는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점은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 주변의 얘기들 속에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와닿게 해주는 거다.
어려운 거를 쉽게 설명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은 명강사다. 난 이런 똑똑한 양반이 좋다. 섣부르게 똑똑한 사람은 괜히 어려운 용어 써가면서 자신의 지식(?)을 뽐낸다. 그건 지식이 아니라 정보인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정보와 지식도 구분 못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지식인인 양 행세하는 이들도 많은데...
* * *
책 뒤에 보면 부록으로 CD가 제공된다. 이거부터 먼저 보는 게 좋을 듯 하다. 다 읽고 보면 책에 언급된 내용들이 나오기 때문에 마이클 샌델의 수업 분위기 정도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기 전에 보면 책을 읽어보고 싶은 구미가 당길 수도 있어서다. 수업 분위기 정말 좋다. 문득 난 마이클 샌델의 수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 샌델도 수업 도중에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겠다.'는...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가르치기 위해 더 많이 준비하지만 가르치면서 또 배우는 게 있다는 것을...
ex libris
01/
철학자들의 가설은 복잡한 현실 문제들이 상당 부분 배제되어 있어서, 몇 가지 철학적 문제에만 집중하기에 좋다.
02/ 철학의 출발점
우리는 대개 옳은 행위에 관한 견해나 확신에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확신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그 근거가 되는 원칙을 찾는다. 그리고 그 원칙을 반박하는 상황을 고려한 뒤에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혼란의 힘과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 철학의 출발점이다.
03/ 도덕적 사고의 기본
우리는 긴장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옳은 행위에 관한 판단을 재검토하거나 애초에 옹호하던 원칙을 재고할 수도 있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 자신의 판단과 원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판단에 비추어 원칙을 재고하고 원칙에 비추어 판단을 재고한다. 이처럼 행동의 세계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또 그 반대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도덕적 사고의 기본이다.
04/ 공리주의
행복을 계량하고 통합하고 계산하는 데 기초가 되는 도덕 과학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또 사람들의 선호를 심판하지 않고 다만 그 무게를 잰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기호는 동등하게 계산된다. 사적 판단을 배제하는 이런 태도 덕에 공리주의는 상당한 호소력을 지닌다. 그리고 도덕적 선택을 과학으로 만들어준다는 약속은 오늘날 경제 분야의 논리적 사고에 상당한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호를 더하려면 그것들을 하나의 저울에 올려놓고 계량해야 한다. 벤담이 생각한 공리도 바로 그런 단일통화다.
05/ 자유시장 옹호의 두 가지 주장
하나는 자유에 관한 주장이고, 또 하나는 행복에 관한 주장이다. 첫 번째 주장은 시장을 옹호하는 자유지상주의자의 목소리다. 이들은 자발적 교환을 허용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길이며, 자유시장에 간섭하는 법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주장은 시장을 옹호하는 공리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이들은 자유시장이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며, 두 사람이 거래할 때 둘 다 이익을 얻는다고 말한다. 거래가 당사자에게 모두 이익이 되고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전체 공리는 당연히 높아진다.
06/ 칸트가 말하는 자율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당구공을 손에서 놓으면, 공은 땅에 떨어진다. 이것은 공의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다. 공의 움직임은 자연법칙, 그러니까 중력의 법칙에 지배받는다.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에 걸맞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07/ 정직을 위한 정직 vs 이해타산을 따지는 정직
정직을 위한 정직은 원칙을 고수하는 자세이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정직은 타산적인 신중한 자세다. 칸트는 원칙을 고수하는 자세만이,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동기인 의무 동기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08/ 정언명령 vs 가언명령
어떤 행동이 다른 것의 수단으로만 바람직하다면, 이때의 명령은 가언명령이다. 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면, 따라서 이성에 부합하는 의지에 꼭 필요하다면, 이때의 명령은 정언명령이다.
칸트가 말하는 정언은 조건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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