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삼국지를 파헤친 것은 아니다. 지금껏 내가 읽었던 삼국지는 다음과 같다.
1. 이문열의 삼국지 : 대학 1학교때 읽었던 것
2. 창천항로(만화) : 2002년도인가 2003년도에 읽었던 것
3. 조조 삼국지 : 2004년도에 읽었던 것
4. 거꾸로 읽는 삼국지 : 이건 읽다 만 듯... 내 DB에 없으니...
앞으로 나는 삼국지는 더 많이 볼 생각이다. 여러 삼국지들의 관점을 보기 위해서라도 읽을 생각이다. 다만 대부분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에 기초하고 있고, 나관중의 삼국지라는 것은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삼국지연의"라는 것은 유가 사상을 중시하는 사람이 쓴 것으로 그들의 생각을 배제하고서 글만을 두고 얘기를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글을 읽을 때 그 글의 의도를 잘 파악하려고 한다. 그래서 신문 또한 가려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재테크 컬럼을 적다가 만 이유는 단 한가지다. 내가 적는 이유가 뭘까? 그냥 재테크 컬럼 적어볼까 했다가 그만둔 이유가 나 또한 남들과 똑같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적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만 뒀다. 재테크 컬럼을 적는 많은 이들이 그러한 의도가 엿보이다 보니 마치 무슨 서민들을 위한 양 얘기하면서 보이는 아니꼬운 글들을 대단한 양 칭송하는 꼬락서니가 사실 뭐같잖아서 역겨웠다.
예전에 대선때의 일이다. 누가 더 낫니 하는 얘기를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남자들 모이면 조금은 머리가 굵어져서 자기 딴에는 생각이 있다고 지껄여대는 것이 결국 한 사람은 한겨레 신문 보고 생긴 지식이고, 한 사람은 조선일보 보고 생긴 지식이니 이러한 것을 보면서 도대체 그 사람들은 자기 생각은 없고, 왜 남의 생각만 가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서 조조가 간웅이 되었던 이유는 유가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조조를 싫어한다. 왜 싫어하느냐? 이런 거다. 나는 서울대 나오고 족보 있는 가문 집안인데,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놈이 돈만 벌어서 꼴보기 싫다는 것과 같다. 조조는 환관의 자손이다. 환관이라 함은 내시다. 내시가 어떻게 자식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거야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양자를 삼는 게 흔했으니 양자를 삼을 수도 있었겠고, 아니면 실제 환관이라 하더라도 환관같지 않은 환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선 자세히는 모른다. 조조의 할아버지가 환관이었고, 조조의 아버지는 돈만 많았다는 것 밖에. 돈으로 관직을 샀다는 정도. 그러니 조조가 아무리 똑똑해도 명문 집안이 아니었기에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조조가 나중에 대업을 이루고 난 다음에도 그는 유가, 법가, 불가 등의 여러 사상을 접목시켰던 인물로 유가 사상가들에게는 아니꼬운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를 좋지 않게 묘사한 것이고, 확실한 한실의 정통을 이어받았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유비는 좋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 나관중의 삼국지고 대부분의 우리 나라 삼국지는 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조조는 간웅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조조는 당대의 영웅이다. 그리고 존경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조조가 간웅이라면 일본의 다케다 신겐 또한 간웅이고, 역사 속에서 나오는 그 수많은 명장들이 다 간웅이어야 한다. 왜 대업을 이루고서도 조조는 간웅으로 비춰져야만 하는가? 그것이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그것을 정녕 이문열이는 모르고 썼을까? 작가 정신이라는 것이 그럼 판본에 충실해서 베끼고 해석하는 와중에 약간의 한글화(한글 정서에 맞게 바꾸는 것을 포함) 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삼국지를 대단하게 칭송하는 분들의 뜻을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바이다. 얼마나 알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삼국지는 10번을 읽어보아야 한다는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일전에 임원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삼국지를 읽어봤느냐?"
"예, 읽어는 봤습니다만 별로입니다."
"뭐가 별론가?"
"스케일이 작습니다. 그래서 전 대망이 더 낫다고 봅니다."
"아직 멀었어. 삼국지는 10번 정도 읽어봐야돼"
글쎄. 아무런 생각없이 10번 읽어봤자 그리고 쓰어진 글 자체가 잘못되었는데 비판없이 읽어봤자 10번을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망이 더 낫다고 하는 이유는 세 명의 인물이 제각각 영웅이고 스타일이 다르며, 삼국지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고작 45년인가 정도 밖에 안 되는 시간이다.) 물론 대망에서도 다케다 신겐의 비중은 얕게 나오기는 했지만...
지금껏 내가 알던 삼국지와 조조를 중심으로 하는 삼국지에서 보이는 서로 다른 상이한 면들 그리고 손자병법을 통해서 보게 되는 조조를 통해서 나는 조조가 간웅이라기 보다는 영웅으로 칭송되어야 마땅하다는 데에 더 편을 들고 싶다. 아래는 조조 삼국지의 3권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이다.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러한 부분을 꼬집은 내용인데, 인용해 본다.
p343
(한족에 유씨라면 아무리 어리석어도, 제후가 되고 황제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유학파라는 명문 거족들이라는 게 도대체 백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게 무엇인가?)
조조가 불만을 갖고 있던 '명문 거족'이란 이른바 한실을 업고 계속 권세를 누리려는 기존의 보수 세력일 터이다. 그러나 조조는 당시로는 대단히 혁신적인 법가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유가 사상의 한자락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헌제를 끝까지 보위하면서 '정통성'이라는 정치의 기본적인 표본을 남긴다.
p350
<유비가 면양에 왕궁을 짓고 한중왕에 올랐습니다. 유선을 태자로 책봉하고 제갈공명은 승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호 대장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의 순서입니다...>
여기까지 읽어가던 조조는 갑자기 껄껄 웃는다.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어째서 웃으십니까?"
가허가 묻는다.
"글쎼, 짚신 장수 유비가 스스로 왕이 되었다니 우습지 않은가!"
"?"
"내가 위왕이 되었을 때 나를 반대하는 유학파들은 반역까지 했지 않은가. 그런데 유비는 이른바 황숙이라는 주제에 천자의 명도 없이 제멋대로 왕이 되다니... 입으로는 한실의 부흥을 외치면서 왕이 되겠다니 웃기는 일이 아닌가. 다음에는 그 스스로 황제라고 나설 게 뻔하군. 그런데도 썩어빠진 유가들은 유비를 '군자'라고 존경할 뿐 왜 아무 말이 없느냐 말이야?"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동안 천자를 모시고 한실을 지켜오신 공로가 있어서 천자의 명으로 위왕이 되신 겁니다. 그런데 유비는 떠돌이 식객으로 돌아다니다가 이제 겨우 한중과 익주를 차지해서 안방을 만든 셈인데 곧장 그 스스로가 왕으로 올랐습니다."
가허의 말에 조조는 웃고만 있을 뿐 더 말을 하지 않는다.
툭 하면 천자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난세에서 헌제를 보위하며 중원부터 변방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발굽소리가 안 들린 곳이 없을 정도로 누비고 다녔건만 자기는 끝내 간웅이고, 이리저리 쫓기며 눈치나 보고 살아온 유비는 정의의 도덕군자로 섬기는 당시의 유학파라는 사람들에 대한 침묵의 조소였을까.
1. 이문열의 삼국지 : 대학 1학교때 읽었던 것
2. 창천항로(만화) : 2002년도인가 2003년도에 읽었던 것
3. 조조 삼국지 : 2004년도에 읽었던 것
4. 거꾸로 읽는 삼국지 : 이건 읽다 만 듯... 내 DB에 없으니...
앞으로 나는 삼국지는 더 많이 볼 생각이다. 여러 삼국지들의 관점을 보기 위해서라도 읽을 생각이다. 다만 대부분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에 기초하고 있고, 나관중의 삼국지라는 것은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삼국지연의"라는 것은 유가 사상을 중시하는 사람이 쓴 것으로 그들의 생각을 배제하고서 글만을 두고 얘기를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글을 읽을 때 그 글의 의도를 잘 파악하려고 한다. 그래서 신문 또한 가려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재테크 컬럼을 적다가 만 이유는 단 한가지다. 내가 적는 이유가 뭘까? 그냥 재테크 컬럼 적어볼까 했다가 그만둔 이유가 나 또한 남들과 똑같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적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만 뒀다. 재테크 컬럼을 적는 많은 이들이 그러한 의도가 엿보이다 보니 마치 무슨 서민들을 위한 양 얘기하면서 보이는 아니꼬운 글들을 대단한 양 칭송하는 꼬락서니가 사실 뭐같잖아서 역겨웠다.
예전에 대선때의 일이다. 누가 더 낫니 하는 얘기를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남자들 모이면 조금은 머리가 굵어져서 자기 딴에는 생각이 있다고 지껄여대는 것이 결국 한 사람은 한겨레 신문 보고 생긴 지식이고, 한 사람은 조선일보 보고 생긴 지식이니 이러한 것을 보면서 도대체 그 사람들은 자기 생각은 없고, 왜 남의 생각만 가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서 조조가 간웅이 되었던 이유는 유가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조조를 싫어한다. 왜 싫어하느냐? 이런 거다. 나는 서울대 나오고 족보 있는 가문 집안인데,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놈이 돈만 벌어서 꼴보기 싫다는 것과 같다. 조조는 환관의 자손이다. 환관이라 함은 내시다. 내시가 어떻게 자식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거야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양자를 삼는 게 흔했으니 양자를 삼을 수도 있었겠고, 아니면 실제 환관이라 하더라도 환관같지 않은 환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선 자세히는 모른다. 조조의 할아버지가 환관이었고, 조조의 아버지는 돈만 많았다는 것 밖에. 돈으로 관직을 샀다는 정도. 그러니 조조가 아무리 똑똑해도 명문 집안이 아니었기에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조조가 나중에 대업을 이루고 난 다음에도 그는 유가, 법가, 불가 등의 여러 사상을 접목시켰던 인물로 유가 사상가들에게는 아니꼬운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를 좋지 않게 묘사한 것이고, 확실한 한실의 정통을 이어받았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유비는 좋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 나관중의 삼국지고 대부분의 우리 나라 삼국지는 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조조는 간웅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조조는 당대의 영웅이다. 그리고 존경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조조가 간웅이라면 일본의 다케다 신겐 또한 간웅이고, 역사 속에서 나오는 그 수많은 명장들이 다 간웅이어야 한다. 왜 대업을 이루고서도 조조는 간웅으로 비춰져야만 하는가? 그것이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그것을 정녕 이문열이는 모르고 썼을까? 작가 정신이라는 것이 그럼 판본에 충실해서 베끼고 해석하는 와중에 약간의 한글화(한글 정서에 맞게 바꾸는 것을 포함) 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삼국지를 대단하게 칭송하는 분들의 뜻을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바이다. 얼마나 알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삼국지는 10번을 읽어보아야 한다는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일전에 임원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삼국지를 읽어봤느냐?"
"예, 읽어는 봤습니다만 별로입니다."
"뭐가 별론가?"
"스케일이 작습니다. 그래서 전 대망이 더 낫다고 봅니다."
"아직 멀었어. 삼국지는 10번 정도 읽어봐야돼"
글쎄. 아무런 생각없이 10번 읽어봤자 그리고 쓰어진 글 자체가 잘못되었는데 비판없이 읽어봤자 10번을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망이 더 낫다고 하는 이유는 세 명의 인물이 제각각 영웅이고 스타일이 다르며, 삼국지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고작 45년인가 정도 밖에 안 되는 시간이다.) 물론 대망에서도 다케다 신겐의 비중은 얕게 나오기는 했지만...
지금껏 내가 알던 삼국지와 조조를 중심으로 하는 삼국지에서 보이는 서로 다른 상이한 면들 그리고 손자병법을 통해서 보게 되는 조조를 통해서 나는 조조가 간웅이라기 보다는 영웅으로 칭송되어야 마땅하다는 데에 더 편을 들고 싶다. 아래는 조조 삼국지의 3권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이다.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러한 부분을 꼬집은 내용인데, 인용해 본다.
p343
(한족에 유씨라면 아무리 어리석어도, 제후가 되고 황제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유학파라는 명문 거족들이라는 게 도대체 백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게 무엇인가?)
조조가 불만을 갖고 있던 '명문 거족'이란 이른바 한실을 업고 계속 권세를 누리려는 기존의 보수 세력일 터이다. 그러나 조조는 당시로는 대단히 혁신적인 법가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유가 사상의 한자락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헌제를 끝까지 보위하면서 '정통성'이라는 정치의 기본적인 표본을 남긴다.
p350
<유비가 면양에 왕궁을 짓고 한중왕에 올랐습니다. 유선을 태자로 책봉하고 제갈공명은 승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호 대장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의 순서입니다...>
여기까지 읽어가던 조조는 갑자기 껄껄 웃는다.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어째서 웃으십니까?"
가허가 묻는다.
"글쎼, 짚신 장수 유비가 스스로 왕이 되었다니 우습지 않은가!"
"?"
"내가 위왕이 되었을 때 나를 반대하는 유학파들은 반역까지 했지 않은가. 그런데 유비는 이른바 황숙이라는 주제에 천자의 명도 없이 제멋대로 왕이 되다니... 입으로는 한실의 부흥을 외치면서 왕이 되겠다니 웃기는 일이 아닌가. 다음에는 그 스스로 황제라고 나설 게 뻔하군. 그런데도 썩어빠진 유가들은 유비를 '군자'라고 존경할 뿐 왜 아무 말이 없느냐 말이야?"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동안 천자를 모시고 한실을 지켜오신 공로가 있어서 천자의 명으로 위왕이 되신 겁니다. 그런데 유비는 떠돌이 식객으로 돌아다니다가 이제 겨우 한중과 익주를 차지해서 안방을 만든 셈인데 곧장 그 스스로가 왕으로 올랐습니다."
가허의 말에 조조는 웃고만 있을 뿐 더 말을 하지 않는다.
툭 하면 천자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난세에서 헌제를 보위하며 중원부터 변방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발굽소리가 안 들린 곳이 없을 정도로 누비고 다녔건만 자기는 끝내 간웅이고, 이리저리 쫓기며 눈치나 보고 살아온 유비는 정의의 도덕군자로 섬기는 당시의 유학파라는 사람들에 대한 침묵의 조소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