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에 당구장에 갔더니 임윤수 프로님이 나더러 구리에서 열리는 3쿠션 월드컵 대회 보러 안 가겠냐고 그러신다. 일전에 내가 언급했기도 했었기에 그걸 잊지 않고 얘기해주신 듯. 여튼 임윤수 프로님은 참 좋으신 분이다. 당구장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독서하시는 모습도 종종 보이시고. 보니까 최근에는 <의식혁명>을 읽고 계시더라고. 좋은 책이쥐~ 나는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튼 그렇게 해서 토요일 아침 8시 30분에 당구장 지하 주차장에 모여서 구리로 이동했다. 경기는 10시에 열리지만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입장권은 임윤수 프로님이 지원~ 쓰바라시~
내 생애 첫 3쿠션 세계 대회 관람
구리시체육관 도착. 일산에서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왔더니 얼마 안 걸린다. 나는 2시간 밖에 못 자고 나와서 내 차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당구장에 자주 오는 동생 차를 얻어 타고 갔지. 임윤수 프로님과 함께. 드디어 세계 랭킹 10위권 내의 탑 랭커들을 볼 수 있는 거? 음... 섹시한 여성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ㅋㅋ
입장할 때는 이렇게 띠를 착용한다. 클럽이나 놀이동산 들어가는 줄 알았다는.
알림판에 있는 대진표. 뭐 이런 A4 용지 말고도 아주 큰 대진표가 있긴 하다. 내가 간 토요일에는 16강전이 열렸고, 나는 임윤수 프로님과 함께 오전 경기만 보고 오기로 되어 있어서 16강전 총 8게임 중에서 오전에 열리는 4게임만 봤다. 그 4게임 중에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경기는 세계 랭킹 1위인 토브욘 브롬달 선수(스웨덴)와 한국의 강동궁 선수와의 경기. 사실 한국의 강동궁 선수를 응원하러 간 거라기 보다는 토브욘 브롬달 선수의 샷을 보기 위함이 강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경기
경기 도중에 Break Time(어떤 선수가 총 40점 중에서 20점 이상을 치면 5분인가? 휴식을 갖는다) 때 찍은 사진이다. 세계 대회라서 그런가 카메라가 많더라고.
그 중에 위에서 찍는 카메라. YouTube에서 당구 경기 동영상 보면 주로 나오는 화면이 위에서 찍는 화면인데 이렇게 찍는 거구나. 근데 이렇게 찍으면 선수들이 당점은 어디에 주는지는 알 수가 없지. 그래서 큐가 어느 정도까지 나오는지, 얼마나 빨리 샷을 하는지, 몇 포인트까지 공을 보내는지, 어떤 궤적을 그리면서 공이 가는지만 본다. 내가 동영상 볼 때는 선수가 샷을 날리기 이전에 내 나름 궤적 그려보면서 내 궤적과 틀리면 리플레이하면서 보는 식이다.
그래도 경기 동영상이 항상 위에서 찍는 화면만 보여주는 건 아니지. 이걸 기본으로 하되, 가끔씩 선수들의 표정, 예비 스트로크 등도 보여준다. 그러니 카메라가 여러 대 필요한 거고. 근데 실제 가서 경기를 보니까 동영상에서 보던 거와는 많이 다르다. 현장감이 있어. 선수들의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더라고. 게다가 멀리서 관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앞자리 않으면 정말 가까이서 볼 수 있더라고. 그러니 그런 게 느껴지는 듯.
강동궁 vs 토브욘 브롬달의 16강 경기
사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당구 선수가 예전에는 세미 세이기너였고, 지금은 쿠드롱이다. 왜 쿠드롱을 좋아하냐면, 인터벌이 짧아. 내가 알기로 탑 랭커들 중에서 인터벌이 가장 짧은 걸로 아는데 그만큼 딱 보고 치는데도 잘 맞거든. 시원시원하더라고. 그러나 쿠드롱은 오후 경기에 배정이 되어 있어서 세계 랭킹 1위인 토브욘 브롬달 경기를 본 거다. 같은 시각에 다른 대대에서는 자네티 선수가 조재호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었지만 같이 간 당구장 사람들 모두 이 경기를 봤다. 임윤수 프로님만 안 보이셨던 듯. 계셨었나? ^^;
토브욘 브롬달. 아무리 세계 랭킹 1위라고 해도 치고 나서 몸 쓰더라고 ㅋㅋ 그렇다고 해서 샷을 날리는 순간에 몸을 쓰는 건 아니고 말이다. 샷을 날릴 때까지는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지. 항상 일정한 샷을 날릴 수 있다는 거 그게 프로와 아마의 차이 아니겠냐고. 게다가 자신의 뜻대로 공이 안 들어가면 표정이 많이 변한다. 근데 그 표정을 보면 무섭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귀엽다. 나보다 14살 나이 많은 52살의 아저씬데 말이지. 귀엽더라고. 연극해도 될 듯 싶은 생각이.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처음 보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거는 어쩜 저렇게 살살 치는 거 같은데 저렇게 공이 궤적을 그리면서 돌까 하는 거였다. 확실히 다르더라고. 당구장에서 샷이 좋은 고점자들과 게임을 해봐도 그런 느낌 들지는 않았었거든. 뭐 내가 프로 선수할 건 아닌지라 그런 샷을 날리기는 힘들겠지만, 참 부럽더라고. 난 매번 칠 때마다 자세 때문에 샷이 망가지곤 하는데 말이다. ㅠㅠ
사실 나는 강동궁 선수에 대해서는 모른다. 내가 아는 국내 프로 선수라고는 김경률, 최성원, 조재호, 이충복, 그리고 요즈음에는 경기에 참여를 하지는 않지만 대단한 실력을 가진 임!윤!수! 프로님. ㅋㅋ 아 그러고 보니 더 있네. 故 이상천 선수, 이상천 선수와 마지막 경기를 했던 정호석 선수도 있다. 그런데 강동궁 선수 정말 잘 치더라. 정말 날인 듯. 당구 치다 보면 잘 맞는 날 있잖아. 그냥 대충 쑤셔도 들어가는 날.
그렇다고 강동궁 선수가 대충 쑤신 건 절대 아니지. 프로잖아. 게다가 상대가 세계 랭킹 1위인 토브욘 브롬달이니 대충 할 수 있었겠냐고. 근데 아무래도 날인 거 같애. 너무 잘 치는 겨. 운도 좋고 말이지. 에버리지가 3점대가 나오더라니까. 그래서 20점까지 강동궁 선수가 먼저 내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후에 토브욘 브롬달이 어떻게 할 지 사뭇 궁금했지만 점수 차이가 많아서 그리 쉽지만은 않은 상황.
이게 강동궁 선수. 아 잘 치더라. 정말 정말 잘 치더라. 보통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이랑 당구를 칠 때 내가 초반에 잘 치고 나가다 보면 중반에 말리는 경우가 있던데 꾸준히 잘 치대. 계속 앞서나가기만 하고 말이지. 그냥 쐐기를 박으려고 하는 듯한. 그러나 욕심을 부리면 그렇게 됐겠냐고. 매 샷마다 신경을 다했겠지. 사진 속 뒤의 스코어를 보면 35:20으로 강동궁 선수가 상당히 앞서고 있는 중이었고, 이번 이닝에 연속 2득점을 하고 예비 스트로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3점만 더 치면 세계 랭킹 1위 토브욘 브롬달을 16강에서 무너뜨리는겨!
38:25. 그리고 이 이닝에서 1점을 득한 강동궁 선수. 이제 1점만 더 치면 이긴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기 힘들다. 1점만 더 치면 이긴다고 의식하면 더 안 돼~ 그런데 그런 상황도 많이 경험한 프로 선수인지라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결국 이겼다.
스코어는 40대 25. 12이닝에 끝났다. 강동궁 선수의 에버는 무려 3.333 헐~ 매 이닝 3득점을 꾸준히 했다는 거. 득점을 못 한 이닝도 있었지만 몰아서 뭐 7점 치는 경우도 있었으니. 평균적으로 그랬다는 거. 그에 반해 토브욘 브롬달은 에버가 2.273. 이게 못 친 게 아니거든. 그만큼 강동궁 선수가 월등하게 잘 쳤다는 얘기지. 그래서 날이라고 하는 거고. 근데 그렇다고 얘기할 수 없는게 이 강동궁 선수가 이번 2013 구리 3쿠션 월드컵 우승자다. 오~ 물 올라쓰~
그러나 경기 끝난 건 아니었다. 초구를 강동궁 선수가 쳤기 때문에 후구를 초구로 셋팅해서 토브욘 브롬달이 쳐야 한다. 25점이니 남은 스코어는 15점. 여기서 15점을 치면 얘기가 달라지지. 물론 쉽지 않다. 한 이닝에 15점을 친다는 게.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프로 선수들은 한 이닝에 20점 이상을 득점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물론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토브욘 브롬달 나름 신중하게 쳤는데 5득점 했다. 그렇게 해서 40:30으로 경기는 끝나고 강동궁 선수가 8강 진출하게 되었다는.
세계 탑 랭커들 대부분 실제로 봤다
구리시체육관 중앙 높게 걸려 있는 상황판. 토브욘 브롬달이랑 강동궁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다른 테이블의 현재 경기 스코어를 쉽게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일단 강동궁 선수가 너무 잘 쳐서 빨리 끝냈기 때문에 다른 경기를 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당연히 다음으로 구경한 경기는 자네티와 조재호 선수의 경기.
이것도 참 재밌었다. 뭐 중간에 봐서 그렇긴 하지만 계속 지는 게임을 하다가 막판에 뒷심을 발휘해서 역전승. 오~ 난 이런 게임을 더 좋아해. 계속 이겨나가는 게임이 아니라 엎치락 뒷치락 하다가 막판 뒤집기하는 게 짜릿하지 않나? 그 순간은 지켜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자네티 선수. 경기 끝나고 나서 큐 정리하다가 상대 부러뜨렸다. 열 받았나? 얼마나 손에 힘이 들어갔으면. ㅋㅋ 다 이긴 게임을 놓쳐서 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경기를 많이 한 프로 선수라도 사람 아닌가.
매니저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누구랑 얘기하고 있다. "나 상대 나갔네 쒸바" 이런 겨? ㅋㅋ
스코어는 40:36. 막판에 뒤집기했다. 멋져~ 조재호 선수는 경기 전에 담배 피는 데서 보고 "동영상에서 보던 분을 이렇게 보다니" 했더니 씨익 웃는다. 당구 매니아들이나 알아주지 일반인들을 모르잖아? 그래도 자신을 알아봐준다는 거. 그런 관심 하나 하나가 선수들한테는 매우 중요하다. 나도 당구장에서 게임할 때 관전자들이 많고 잘 친다고 하면 더 잘 치거든? ㅋㅋ
아직 끝나지 않은 경기가 있었다. 최성원 선수랑 일본 어떤 선수인지는 모르겠는데 딱 봐도 일본 선수 삘이 물씬 풍기는 선수다. 근데 그 날 최성원 선수 컨디션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영 안 들어가대. 본인도 좀 답답해하는 듯한 표정. 그런 날도 있지. 프로 선수도 그런 날이 있구나. 결국 졌다. 최성원 선수가 이기길 바랬는데. 막판 뒤집기 하나 싶었는데 아쉽.
임윤수 프로님이 1시에 출발하자고 해서 12시 30분부터 열리는 16강 오후 경기를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오후 경기에는 딕 야스퍼스, 다니엘 산체스, 프레드릭 쿠드롱 선수가 나온다. 당연히 나는 프레드릭 쿠드롱 선수 경기를 관전했지. 참 잘 치대. 너무 잘 치대. 정말 쉽게 쉽게 치대. 내가 떠나기 직전에는 한 이닝에 12점을 득점하더라고. 하이런이 얼마나 나오나 싶어서 이것만 보고 가야지 했는데 12점까지 치더라고.
쿠드롱 선수는 보면 알겠지만 귀엽게 생겼다. 다른 선수들은 음료수가 탄산 음료나 이온 음료인 반면에 프레드릭 쿠드롱 선수는 바나나 우유. 바나나 우유 먹는 모습 참 귀엽더라. ㅋㅋ
저 멀리서는 딕 야스퍼스가 보인다. 딕 야스퍼스의 경기는 구경도 못 했다는.
대회 장소에서 당구 용품 싸게 팔더라
구리시체육관 실외에는 당구용품도 팔고, 큐 관리나 수리도 해준다. 내 큐도 쿠드롱 버니셔 사용하다가 선골이 빠져서(이거 조심해야 됨) 일본에 수리를 맡겼었는데, 이런 세계 대회가 있으면 앞으로는 세계 대회 열리는 날 큐 케이스까지 들고 가서 수리 그 자리에서 수리 맡기는 게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여튼 당구용품도 싸게 판다. 인터넷보다 더 저렴한? 그래서 몇 개 사왔다. 소모품들인지라 사두면 나중에 다 쓰게 돼.
블루 다이아몬드 쵸크. 쵸크도 종류가 여러가지지만 뭐 난 원래 성향 자체가 하나 쓰고 별 다른 문제 없으면 그거 계속 쓴다는. 그래서 쵸크 2개 들이 한 세트 하나, 모리 팁 M 두 개(내 Solid 8 Max 상대 팁은 많이 닳아서 좀 더 쓰면 교체해야할 듯 해서 미리 사두는 셈 치고 샀다), 여분의 장갑 하나(장갑도 두 개 있는 게 좋더라. 장갑에 땀이 차서 큐가 뻑뻑할 때 교체해서 사용하게. 근데 이 장갑은 손가락 끝에 구멍이 뚫려 있던데 이거 영 신경 쓰이더라고. 그래서 같은 동호회 다른 분 한테 줘버렸다.), 마지막으로 이건 산 게 아니라 얻은 실리콘 쵸크 케이스.
당구장 사람들과 한 컷
점심 때 즈음에 당구장에서 간 분들이랑 같이 사진 한 장. 내가 속한 동호회 분들은 없지만 항상 당구장에 가면 볼 수 있는 분들인지라. 여기서 나보다 못 치는 분은 없다는. 앞줄 왼쪽 두번째가 임윤수 프로님. 여튼 실제 경기를 보다 보니 엄청 당구 치고 싶더라. 나도 저런 샷을 구사했으면 싶고. 그 날 동호회 모임이 있어 당구장으로 직행했는데(점심은 당구장에서 비빔밥 시켜 먹고) 그 날 최악의 게임들만 연속으로. ㅋㅋ 따라하려 하면 안 돼. 아직 내 실력은 그게 아닌지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