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역사 얘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책을 읽어도 소설은 거의 안 읽는다는 얘기. 거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여기서 굳이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주로 읽는 이들 중에 척 하는(지식인인 척 하는) 류를 아주 수준 낮게 보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블로그에 글로도 적은 적이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밝히기도 했지만 이 글을 읽다 보면 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여튼 소설을 잘 안 보는 나지만 소설을 본다면 역사 소설을 주로 선택하곤 한다. 그 이유 또한 위의 링크된 글에 잘 나와 있다. 여튼 에조 보고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인터넷 상에 끄적거려 있는 글은 거의 믿지 않는 편이다.
왜냐면 일단 근거가 명확해야 하는데 그냥 대부분은 누가 한 얘기를 옮긴 거에 지나지 않거든. 에조 보고서라고 하면 에조 보고서의 전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서 올리면 되는데 보면 어디서 다 퍼왔는지 죄다 똑같은 얘기들만 나오더란 말이다. 근데 나는 진짜로 그렇게 해석이 되는지가 의심스러웠었다. 그래서 확인이 필요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결국 찾아냈다. ^^;
에조 보고서
에조 보고서는 소설가 김진명씨가 <황태자비 시해사건>이란 소설을 적은 모티브가 된 보고서다. 근데 이게 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에 대해서 자세히(실제로 보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도 않아요) 기록한 보고서라서 그렇다. 근데 인터넷 상에 유포되는 글들을 보면 정말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내가 찾아보게 된 게지.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김진명씨를 통해서 이러한 게 있다는 걸 널리 알리게 된 데에 대해서는 공로를 인정해줄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과 김진명씨 본인의 해석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듯 얘기하면 안 된다. 사실과 주장은 다르잖아. 그러나 역사는 해석학이거든. 그래서 해석에 대한 근거가 명확해야 그래도 그걸 '정설'로 인정해주는 것이지.
궁금해서 뒤적거리다 보니 결국 김진명씨는 역시나 소설가였다는 거다. 그것도 베스트셀러 작가. 깊이가 없어. 일단 뭔가 스토리가 될 만한 게 있으면 그런 쪽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낸다 이거지. 내가 소설가를 지식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그가 지식인이라면,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뒤엎을 만한 근거가 제시될 때 인정할 줄도 알아야 돼.
왜냐면 그게 지식인으로서의 기본 자세거든. 지식 탐구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중요한 거지, 내 말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 근데 김진명씨는 그렇지도 않은 듯 싶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사람이니까 실수를 할 수도 있지. 세상 모든 진리를 다 알아야 하나? 세상의 모든 사실을 다 알아야 하나? 그렇기 때문에 인정할 수도 있는 법이거든
최근에 나도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지적 받은 부분 중에 내 판단을 뒤집을 만한 게 있다면 인정하고 그걸 또 알린다. 글 수정을 통해서. 중요한 판단 근거의 실마리를 제공해줬고 나는 그게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내 판단을 뒤집었었지. 그게 당연한 거 아냐? 그런 의미에서 김진명씨는 지식인이 아니라 그냥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가일 따름이다. 소설가. 응?
적어도 자신이 유명하고 자신의 말이 영향력이 있다고 한다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할 줄 알아야지. 그런 자세가 안 되어 있다면 지식인 취급 받을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고 본다. 그냥 베스트셀러 작가일 뿐이다. 근데 역사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그건 내가 이 블로그에도 누차 얘기했던 맥락과도 같다. 글로도 여러 번 적었고 말이다.
이게 내가 이 글을 적는 이유다. 김진명씨를 탓하고자 하는 게 이 글의 핵심이 아니란 말이다. 항상 보면 글의 핵심 논지는 얘기하지 않고 이런 곁가지만 따지고 드는 애들이 있어. 그래. 맞아. 나는 김진명씨와 같이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이들 싫어해. 나는 원래부터 소설가를 지식인의 부류에 잘 포함시키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이번을 통해서 재확인했을 뿐.
에조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
일단 두 개의 글을 읽어보기 바란다. 관심 있으면 말이다. 좀 길다. 이 글도 긴데 링크된 글도 길다. 그러나 아래 링크된 두 글은 내가 이 글을 적는 가장 중요한 두 소스가 되는 글이라서 그렇다. 내 글 안 읽고 아래의 두 글을 읽어도 된다. 여기서 서지학자란 고서나 고문을 읽고 해석하는 학자를 말한다.
▶︎ 소설가 김진명씨의 오마이 뉴스 인터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77332
▶︎ 서지학자 김종욱씨의 월간중앙 기사
http://magazine.joins.com/monthly/article_view.asp?aid=217219
소설가 김진명씨는 에조는 명성황후 시해 당시에 가담했던 낭인 중의 한 명이라고 했지만 서지학자 김종욱씨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서지학자 김종욱씨의 입장을 나는 옹호한다. 왜냐면 사실과 해석을 엄밀히 구분하고 있고, 그 당시 현장에 있지 않은 이상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볼 때 어떤 가능성 부분을 많이 고려하면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소설가 김진명씨는 해석이 아니라 주장을 하고 있고, 깊이 있게 찾아본 것도 아니라 가볍게 찾아본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김진명씨는 소설을 쓰기 위한 소재를 찾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이고 그 정도 수준만 알면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스토리를 덧붙인다. 마치 이게 영화에서 보물 지도로 보물을 찾은 양 말이다.
몰랐으니 그렇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본다. 내가 볼 때는 김진명씨는 말재주가 능한 뭐 그런 사람 있잖아, 우리가 얘기하다 보면 재밌게 얘기하는 사람. 그렇다고 그 사람이 똑똑하다거나 지식이 풍부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 그거거든. 그런 사람들 보면 항상 주워들은 얘기를 자기가 하면서 척 하는 경우가 많다. 아 정말 내가 싫어하는 부류.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에조라는 사람은(서지학자 김종욱씨는 에조라는 사람은 없고 에이조라는 사람은 있다고 하나 아마도 에조와 에이조는 동일 인물이고 번역의 차이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 이렇게 해석해야지. 이렇게 해석하는 게 지식인의 자세인 겨.) 조선 정부의 내부 고문관직으로 일개 무관에 불과하다.
게다가 에조 보고서라 불리는 원문을 보면 서두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이 땅(當地)에서 어제 아침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는 벌써 대략 아시겠지요? 왕비 배제(排除) 건은 시기를 보고 결행하자는 것은 모두 품고 있었던 것이지만 만일 잘못하면 바로 외국의 동정을 일으키고 영원히 제국(諸國)에 점(占)할 일본의 지보(地步)를 망실함이 필연한 것이므로 깊이 경거망동하지 말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저는 먼저부터 모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만, 오히려 어렴풋이 그 계획을 조선인에게 전해 들어 조금씩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국외자로서 그 모의에 참여해 심지어 낭인들이 병대(兵隊)의 선봉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럼 왜 김진명씨는 그렇게 얘기를 한 것일까?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실제로 1988년 <민비암살(閔妃暗殺)>을 발간한 일본의 저명한 전기작가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 여사도 자신의 저서에서 에조를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에조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발언이다.
근데 서지학자 김종욱씨가 <민비 암살>이란 책에서 에조 보고서의 글을 한 두 줄 정도로 간략하게 인용하고 출전만 들어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고, 실질적으로 후사코 여사도 <민비 암살>을 적을 때, 야마베 겐타로의 <일한합병소사>에 기록된 내용을 옮긴 것에 불과하지 실제로 에조 보고서를 확인해서 인용한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야마베 겐타로가 <일한합병소사>를 낸 그 해에 또 한 권의 책을 내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등장한다.
더욱이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이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전 법제국(法制局) 참사관이며 당시 조선 정부의 내부 고문관이었던 이시즈카 에조는 법제국 장관 스에마쓰 가네즈미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서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라고 서두에 쓴 후에 그 행위를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 야마베 겐타로 <일본의 한국 병합> 중
어~ 이걸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럼 에조 보고서 원문을 보자고. 원문 보면 그렇게 되어 있냐고? 아니잖아~ 게다가 서두에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라고 되어 있지도 않잖아. 결국 야마베 겐타로의 말을 믿은 거 밖에 안 되네. 이는 마치 인터넷에서 누가 적은 글을 보고 이게 사실이라고 믿은 거 밖에 더 되나? 그 글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봐야지. 응?
일본인이 자국에 대해서 비판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신뢰성이 간다고 믿어버리면 되나? 일단 판단을 유보하고 에조 보고서를 들여다 봐야 하지 않겠냐고.
편지 형식의
정식 보고서?
이게 에조 보고서다. 편지 형식의 정식 보고서라고 인터넷에서 많이 알려져 있던데, 아마도 그건 김진명씨가 에조 보고서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인터넷에 가장 많이 떠도는 글 하나를 가져왔다. 출처는 밝히지 않는 게 어디서부터 시작된 글인지 모르겠고 아래와 똑같은 내용의 글이 많길래 그냥 가져온 거다.
일본에서 "에조 보고서"라는, 편지 형식으로 된 정식 보고서가 있는데 에조라는 사람이 명성황후 시해 장면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해 놓았다.
먼저 낭인들이 20명 정도 궁에 쳐들어와서 고종을 무릎을 꿇게 만들고, 이를 말리는 세자의 상투를 잡아올려서 벽에다 던져 버리고 짓밟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명성황후를 발견하자 옆구리 두 쪽과 배에 칼을 꽃은 후 시녀들의 가슴을 도려내고 명성황후의 아랫도리를 벗겼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20명이 강간을 했다. 살아 있을 때에도 하고 한 6명째에 죽어있었는데에도 계속했다.사체에 하는것이 시간이고 살아있는 인간에 하는것이 윤간인데 명성황후는 시간과 윤간을 다 당했다. 그리고 그것을 뜯어말리는 충신의 사지를 다잘라버렸다.(애조는 하지않았다.) 어떤 놈들이 한 나라의 황후를 그렇게 대하는가. 이 경우는 고대에도 근대에도 절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명성황후의 시체에 얼굴부터 발 끝까지 차례대로 한 명씩 칼로 쑤셧다. 죽은 후에도.(이건 애조도 함) 그리고 여자로서 가슴을 도려내는 큰 수치를 당했다.
그것을 길거리 서민들이 다 보고 있는데서 시행했다.
그 다음에 명성황후 시체에 기름을 붓고 활활 태웠다.
대부분의 인터넷 상에 유포되는 글을 보면 근거 없이 떠드는 경우가 많거든. 물론 나도 실수를 하는 면도 분명 있다. 최근에 이런 글이 있었지. 이소연씨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 적은 글에서 말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지적 받은 부분 중에 내 판단을 뒤집을 만한 게 있다면 인정하고 그걸 또 알린다. 글 수정을 통해서. 이미 내 글을 읽고 다시 오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새로이 보는 많은 사람들은 그걸 알게 되잖아. 진위 여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도 새로이 알게 되는 부분들도 있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냥 퍼오거나 어떤 글이 공감대가 형성되면 맹신해버리게 된다.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 기준이 없다. 이는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심각히 생각해볼 문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자기 딴에는 생각하고 산다고 하지만 정보만 습득할 뿐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게 먹혔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지 즉시 확인해볼 수 있으니 그렇지도 않지만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잘못된 정보가 삽시간에 유통되고, 정보를 소비하는 생각없는 일반인들은 그걸 아무런 여과없이 또 유통시키면서 잘못된 정보가 진실된 정보를 덮어버리게 되는 거다. 이 때문에 내가 이 글을 적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