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카데미 수상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오스카로, 오스카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OSCAR)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리는 시상식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The Orange British Academy Film Award. BAFTA)이다. 영문으로 표현하면 둘의 차이가 극명하나, 국내에서는 둘 다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리니 주최국인 미국, 영국을 각각 붙여서 구분을 한다. 두 시상식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열리며, 매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조금 일찍 열린다. 그러나 1달 사이로 두 시상식이 모두 진행되기 때문에 각 부문별 후보작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참고로 올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2월 8일에 열렸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2월 22일에 열렸다.
그래서 두 시상식에서 어떤 작품이 수상했는지 비교해보면, 좋은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된다. 그러나 수상 부문이 많다보니 모든 수상작을 비교하기는 힘들어 여기서는 시상식의 Big 5라 할 수 있는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중심으로 비교하되, 수상작이라 하여 꼭 재미를 보장하는 건 아니니(그래도 영국·미국 아카데미는 칸영화제나 베니스영화제에 비한다면 충분히 대중적이다) 대중적으로 볼만한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를 덧붙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작품상 Best Picture
영국 아카데미 |
미국 아카데미 |
보이후드 (수상)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이미테이션 게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버드맨 버드맨 (수상) 이미테이션 게임 보이후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메리칸 스나이퍼 셀마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위플래쉬 |
시상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작품상이다. 우선 눈에 띄는 한 가지는,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들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추가적으로 미국 아카데미에는 미국 색이 짙은 <아메리칸 스나이퍼>, 마틴 루터 킹의 전기적 영화 <셀마>, 음악을 통한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그린 <위플래쉬>가 포함되었다. 결과는 미국과 영국이 달랐는데, 영국은 <보이후드>에게, 미국은 <버드맨>에게 작품상의 영예를 안겨줬다. 필자는 위에 언급된 후보작들 중에서 <셀마>를 제외하고는 다 봤는데, 둘 다 충분히 작품상을 받을 만한 영화라 본다. 물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 후보작들을 보면서, 이번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은 <버드맨>이 될 거라는 예상은 미리 했었다. <버드맨>은 헐리우드가 좋아하는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상을 받았다고 해서 꼭 재미를 장담할 수는 없다. 개취(개인의 취향) 문제가 걸려 있는데, 어떤 이에게는 참 좋은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에게는 별로 재미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대중적인 시각에서 스토리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필자의 견해를 얘기하자면, <버드맨>은 현실과 환상을 오고가는 데에 있어 다소 어지러운 측면이 있고, 마이클 키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면들도 있다.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지만 개취에 따라서 다소 엇갈린 평가가 나올 수 있을 듯. <보이후드>는 성장 영화인지라 스토리가 단조롭다. 감정의 기복이 없이 잔잔한 영화라는 얘기. 성장 영화나 잔잔한 드라마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볼 만할 듯. 그렇다고 감동이 크거나 하진 않다.
남우주연상 Actor in a Leading Role
영국 아카데미 | 미국 아카데미 |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에디 레드메인 (수상)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랄프 파인즈 나이트 크롤러, 제이크 질렌할 이미테이션 게임, 베네딕트 컴버배치 |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에디 레드메인 (수상) 버드맨, 마이클 키튼 이미테이션 게임, 베네딕트 컴버배치 폭스캐처, 스티브 카렐 아메리칸 스나이퍼, 브래들리 쿠퍼 |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도플갱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흡사했던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수상 자격이 충분했다. 국내에 많은 여성팬을 확보하고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수상하기를 바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를 못 해서가 아니라 에디 레드메인이 너무 잘 했다고 봐야할 듯. 어찌 보면 이건 맡은 캐릭터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고 본다. 필자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 <버드맨>의 마이클 키튼이 남우주연상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이유는 에디 레드메인은 영국 배우고, 마이클 키튼은 미국 배우인지라, 먼저 열린 영국 아카데미에서 에디 레드메인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마이클 키튼을 밀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미국 아카데미 역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에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그렇다치고,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재밌을까? 영국의 천재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하면 떠오르는 건 바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결혼도 했다는데, 과연 어떻게 사랑을 이룬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들을 풀어줄 영화가 바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일대기기 때문에 사실과 동떨어진 스토리를 가미하기는 힘들었을 거라 본다. 이 점이 <이미테이션 게임>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다만 그의 천재적인 업적에 포커싱을 두기 보다는 그의 삶(일과 사랑과 가족)에 더 중점을 둔 영화기 때문에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괜찮게 볼 듯.
여우주연상 Actress in a Leading Role
영국 아카데미 | 미국 아카데미 |
스틸 앨리스, 줄리안 무어 (수상) 사랑에 대한 모든 것, 펠리시티 존스 빅 아이즈, 에이미 아담스 와일드, 리즈 위더스푼 | 스틸 앨리스, 줄리안 무어 (수상) 나를 찾아줘, 로자먼드 파이크 와일드, 리즈 위더스푼 내일을 위한 시간, 마리옹 꼬띠아르 사랑에 대한 모든 것, 펠리시티 존스 |
아쉽게도 여우주연상 후보작들은 필자도 본 작품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른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모두 <스틸 앨리스>의 줄리안 무어에게 여우주연상을 줬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런 경우 줄리안 무어의 빼어난 연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스틸 앨리스>라는 작품을 보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그러나 필자도 보지 못해서 재미는 장담 못한다는 것.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
영국·미국 이견 없이 동일하다. 남우조연상은 <위플래쉬>에서 실력은 좋지만 고약한 선생 역을 맡은 J.K. 시몬스가 수상했고, 여우조연상은 <보이후드>에서 엄마 역을 맡은 패트리샤 아퀘트가 수상했다. 근데 <위플래쉬>에서 선생 역이 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영화에 주연은 반드시 1명이라고 한다면 납득이 가지만 조연이라고 하기에는 주연급인 역이라 주연과 조연의 기준이 뭔지 아리송하다. 개인적으로 영국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폭스캐처>에서 존 듀폰 역을 맡은 스티브 카렐이 탈락한 점이 다소 아쉽다. 존 듀폰 역을 참 잘 소화해냈고, <브루스 올마이티>의 코믹한 앵커 역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줬기에 받을 만했다고 보는데 말이다.
감독상 Directing
영국 아카데미 | 미국 아카데미 |
보이후드, 리처드 링클레이터 (수상)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제임스 마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 위플래쉬, 다미엔 차젤레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수상) 보이후드, 리처드 링클레이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폭스캐처, 베넷 밀러 이미테이션 게임, 모튼 틸덤 |
감독상은 두 시상식 모두 작품상을 따라갔다. 즉 영국에서는 <보이후드>가 작품상·감독상을, 미국에서는 <버드맨>이 작품상·감독상을 수상했다. 아마도 영국에서는 12년이란 긴 기간 동안 감독과 배우, 스탭들이 매년 만나서 조금씩 촬영하여 완성한 작품 <보이후드>가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 듯 싶고, 미국에서는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긴 호흡의 롱테이크 기법을 활용하여 헐리우드의 이면을 풍자하고, 미국 배우인 마이클 키튼의 실제 삶을 대변하는 듯한 <버드맨>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 듯 싶다. 참고로 <보이후드>, <버드맨> 모두 미국 영화이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미국인, 그리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멕시코인이다.
각본상 Writing - Original Screenplay
영국 아카데미 | 미국 아카데미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수상) 위플래쉬, 다미엔 차젤레 보이후드, 리처드 링클레이터 나이트 크롤러, 댄 길로이 | 버드맨, 아르만도 보 외 3명 버드맨, 니콜라스 지아코본 외 4명 (수상) 폭스캐처, E. 막스 프라이어 외 1명 나이트 크롤러, 댄 길로이 보이후드, 리처드 링클레이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
미국은 각본상마저 <버드맨>에게 돌린 반면, 영국은 작품상·감독상의 <보이후드>가 아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게 돌렸다. 바꿔 말하면 스토리는 <보이후드>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더 낫다는 얘기 아닐까? 두 영화를 다 본 필자가 봐도 <보이후드>보다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더 통통 튀고 재밌다. 게다가 비주얼적으로도 볼 만할 거리를 제공해 주기에 대중적으로 충분히 재밌어 할 영화가 아닐까 한다.
각색상
각본상 말고 각색상이 있다. 각본은 Original Screenplay, 각색은 Adapted Screenplay로 서로 표현이 다르다. 처음부터 영화나 연극을 위해 만든 창작 시나리오라고 하면 각본이 되겠고, 원래 소설이나 만화가 있는데 그걸 밑바탕으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게 각색에 해당한다. 요즘은 OSMU(One Source Multi Use)가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에 각색상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영국에서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미국에서는 <이미테이션 게임>이 수상했는데, 재미로만 따진다면 필자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보다는 <이미테이션 게임>을 추천한다.
그 외 Etc
그 외의 상들은 연관성이 있는 것끼리 묶기로 한다.
편집상, 촬영상
편집상과 촬영상도 영국이나 미국이나 같다. 편집상은 <위플래쉬>가 수상했고, 촬영상은 <버드맨>이 수상했다. 영화를 많이 보는 필자도 편집에 대해서는 감이 없다 보니, <위플래쉬>가 편집이 잘 된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버드맨>은 개봉하기 전부터 압도적인 롱테이크 기법에 대해서 많이 소개가 되어 굳이 별도의 설명은 생략한다.
음악상, 음향상
음악상은 영국이나 미국이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차지했다. 얼마나 좋은지는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음악 또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영화 색과 비슷하게 경쾌하고 신나는 게 많다. 그 중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본 사람이라면 음악만 들어도 누군가 딱 떠오를 만한 O.S.T 하나 올린다.
영국에서는 음향상 하나 밖에 없지만, 미국에서는 음향상이 음향믹싱상과 음향편집상 둘로 나뉜다. 영국의 음향상과 미국의 음향믹싱상은 <위플래쉬>가 차지했고, 미국의 음향편집상은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차지했다. 필자는 소리에 대해서는 민감도가 떨어지는 편이고, 스토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음향은 그리 따지지 않는 편이지만, 음향상 작품들이라면 음향 시설이 좋은 데서 보길 권한다.
의상상, 분장상
의상상, 분장상 모두 영국이나 미국이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미술상도 있는데, 미술상마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게 돌아갔으니, 위에서 언급했듯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비주얼적으로도 볼 만한 거리를 제공해준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배경, 옷, 소품, 색상 등 일반적인 영화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듯.
(특수)시각효과상
영국에서는 특수시각효과상, 미국에서는 시각효과상이 있는데, 영국이나 미국 모두 <인터스텔라>가 수상했다. <인터스텔라>야 우리나라에서도 흥행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이 봤을 거라 생각하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필자는 이런 영화는 IMAX나 3D로 보는 편이다. 아무래도 큰 화면, 또는 입체적인 화면으로 보는 게 이런 류의 영화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천원에 그런 경험을 놓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최다수상작 Big Winner
영국 아카데미 | 미국 아카데미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5개) 보이후드 (3개) 사랑에 대한 모든 것 (3개) 위플래쉬 (3개) | 버드맨 (4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4개) 위플래쉬 (3개) |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각본상, 음악상, 의상상, 분장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총 5개 부문을 수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최다수상작이 되겠다. 그 뒤를 이어 <보이후드>,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위플래쉬>가 각각 3개 부문에서 수상을 기록했다.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수상한 <버드맨>,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음악상을 수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모두 4개 부문 수상으로 공동 최다수상작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위플래쉬>가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 이 글은 스티코 매거진(http://stiblish.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