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권을 읽고 정리하면서 인용과 생각을 섞어서 적은 글이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을 읽고 불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에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관점의 정리글들만 따로 모아둔 것이다. 이 글은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리뷰에서도 볼 수 있다.
불교는 무신론이다!
유신론의 전제는 반드시 이 세계에 대하여 이 세계 밖에 있는 창조주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도 인간 밖의 구세주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으며,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과 우주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자로서의 신의 개념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불교는 분명한 무신론이다.
그럼 불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신론의 형상화가 아닌가?
대승불교는 대중에게 불타의 참 가르침을 전하는데에 중점을 두고, 소승불교는 개인의 수양에 초점을 맞추는데, 대승불교에서 불상을 도입하면서부터 엄청난 대중운동으로 발전,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자멸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불교의 진면목은 무신론이었는데, 불상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유신론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불상숭배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대한 일반재가신도들의 불교 이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고자 하는 유일신관과 별 차이 없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일반 신도들의 불상에 대한 집착은 현실적으로 불타를 중심으로 한 일신교 사상이라 말해도 하등의 변명이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불타를 유신론화 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한 뜻은, 종교가 서양에서처럼 창조주나 이 우주의 모든 운행을 관할하는 지배자로서의 초월신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면, 그러한 맥락에서의 종교는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즉 종교의 성립요건에 창조주나 초월신의 개념이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종교에 가장 본질적인 주제는 '신'이 아니라 '죽음'이다.
이 이후부터의 대화는 프로지식인 도올 선생과 달라이 라마의 아주 치열한 대화가 벌어진다. 도올 선생의 지식과 종교인의 한 판 승부라는 것이다. 아주 재미있다. 도올 선생이 생각하기에 달라이 라마가 즉 종교인(불교를 종교라는 관점에서)의 모순점을 실랄하게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반-합 의 과정을 거치는 것 또한 대화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역시 도올이다.
여기에서도 보이듯이 종교의 근원을 따져보면 그것은 신이라는 유일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고찰에서 부터 파생된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이므로, 죽음에 대한 고찰에서 부터 내세 사상이나 토속 신앙이 생기게 되었고 죽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을 살아 있으면서 좀 더 바른 삶을 살아나가라고 하는 가르침으로서 승화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허나, 지금의 종교들은 돈벌이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자본주의 하의 종교일 뿐. 종교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적는 오늘도 어느 교회를 지나왔다. 물론 그 교회는 우리 부모님이 믿는 종교와는 다른 분파다.(기독교도 분파가 많다.) 그 교회가 하도 커서 한마디 했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하는 말을 들으니 이건 교회가 아니라 사기꾼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많은 종교인들 중에는 그것이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사업이요 더욱더 큰 일은 많은 신학도들이 그들 자신은 바른 길을 살아간다고 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 자신을 돈벌이 수단으로서 종교를 이용한다는 의식을 하지 못하는 無知가 더 우스울 뿐이다.
내 집안에는 기본이 집사요. 장로님과 목사님도 계신다. 허나, 나는 그들에게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친척이라서가 아니라 얘기가 안 통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영생교를 보고 저 미친 놈들 하는 것과 같이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믿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가장 핵심 교리다!-물론 내 생각이다.- 그래. 믿으면 그만 아닌가! 내가 불교를 좋아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여 한 가지만 지켜라. 자신이 믿는 것이라고 강요하지 말지어다. 절대 윽박지르지 말지어다.
책의 내용을 빌어서 얘기하면, 달라이 라마가 종교 의식을 집행할 때는 그의 얼굴을 보려고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라는 존재가 무엇이길대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까? 달라이 라마 자신이 자신을 설명한 부분을 보면 달라이 라마는 제도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달라이 라마라는 제도 속에서 자신이 선택이 된 것이고 그 제도 속에서는 자신이 달라이 라마라는 것일 뿐 자신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가 시사하는 바처럼 사람들은 어떠한 누구에 대한 신앙 믿음 그리고 갈망을 꿈꾸는 것이다. 불상이라는 것은 결국 부처라는 것의 형상화인데 부처라는 위대한 구원자라는 개념이 결코 아니라 부처를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를 형상화 하기 위해서 불상을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대승불교요 그것이 불교의 대중화에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 것이라는 것이지 불상이 곧 불교를 우상화한 신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껏 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할머님도 아버님도 어머님도 기독교다. 물론 동생도 마찬가지요. 친가 쪽은 죄다 기독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이렇게 불교라는 것에 집착하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가 불교보다 덜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난 기독교의 폐단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독교가 중요하듯이 나 또한 나에게는 불교라는 종교가 아닌 학문, 사상이 중요한 것이다. 고로 내가 기독교를 인정하듯이 그들 또한 불교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유일신 사상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책에서 얘기하듯이 자신의 수양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이지 그것이 종교일 수가 없는 것이다. 불교는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 수천년동안 쌓아온 노하우들이 경전이라는 형식으로 전해져올 뿐이지 기독교와 같은 성경과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불교는 무신론이다!
유신론의 전제는 반드시 이 세계에 대하여 이 세계 밖에 있는 창조주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도 인간 밖의 구세주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으며,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과 우주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자로서의 신의 개념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불교는 분명한 무신론이다.
그럼 불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신론의 형상화가 아닌가?
대승불교는 대중에게 불타의 참 가르침을 전하는데에 중점을 두고, 소승불교는 개인의 수양에 초점을 맞추는데, 대승불교에서 불상을 도입하면서부터 엄청난 대중운동으로 발전,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자멸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불교의 진면목은 무신론이었는데, 불상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유신론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불상숭배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대한 일반재가신도들의 불교 이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고자 하는 유일신관과 별 차이 없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일반 신도들의 불상에 대한 집착은 현실적으로 불타를 중심으로 한 일신교 사상이라 말해도 하등의 변명이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불타를 유신론화 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한 뜻은, 종교가 서양에서처럼 창조주나 이 우주의 모든 운행을 관할하는 지배자로서의 초월신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면, 그러한 맥락에서의 종교는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즉 종교의 성립요건에 창조주나 초월신의 개념이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종교에 가장 본질적인 주제는 '신'이 아니라 '죽음'이다.
이 이후부터의 대화는 프로지식인 도올 선생과 달라이 라마의 아주 치열한 대화가 벌어진다. 도올 선생의 지식과 종교인의 한 판 승부라는 것이다. 아주 재미있다. 도올 선생이 생각하기에 달라이 라마가 즉 종교인(불교를 종교라는 관점에서)의 모순점을 실랄하게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반-합 의 과정을 거치는 것 또한 대화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역시 도올이다.
여기에서도 보이듯이 종교의 근원을 따져보면 그것은 신이라는 유일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고찰에서 부터 파생된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이므로, 죽음에 대한 고찰에서 부터 내세 사상이나 토속 신앙이 생기게 되었고 죽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을 살아 있으면서 좀 더 바른 삶을 살아나가라고 하는 가르침으로서 승화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허나, 지금의 종교들은 돈벌이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자본주의 하의 종교일 뿐. 종교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적는 오늘도 어느 교회를 지나왔다. 물론 그 교회는 우리 부모님이 믿는 종교와는 다른 분파다.(기독교도 분파가 많다.) 그 교회가 하도 커서 한마디 했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하는 말을 들으니 이건 교회가 아니라 사기꾼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많은 종교인들 중에는 그것이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사업이요 더욱더 큰 일은 많은 신학도들이 그들 자신은 바른 길을 살아간다고 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 자신을 돈벌이 수단으로서 종교를 이용한다는 의식을 하지 못하는 無知가 더 우스울 뿐이다.
내 집안에는 기본이 집사요. 장로님과 목사님도 계신다. 허나, 나는 그들에게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친척이라서가 아니라 얘기가 안 통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영생교를 보고 저 미친 놈들 하는 것과 같이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믿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가장 핵심 교리다!-물론 내 생각이다.- 그래. 믿으면 그만 아닌가! 내가 불교를 좋아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여 한 가지만 지켜라. 자신이 믿는 것이라고 강요하지 말지어다. 절대 윽박지르지 말지어다.
책의 내용을 빌어서 얘기하면, 달라이 라마가 종교 의식을 집행할 때는 그의 얼굴을 보려고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라는 존재가 무엇이길대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까? 달라이 라마 자신이 자신을 설명한 부분을 보면 달라이 라마는 제도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달라이 라마라는 제도 속에서 자신이 선택이 된 것이고 그 제도 속에서는 자신이 달라이 라마라는 것일 뿐 자신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가 시사하는 바처럼 사람들은 어떠한 누구에 대한 신앙 믿음 그리고 갈망을 꿈꾸는 것이다. 불상이라는 것은 결국 부처라는 것의 형상화인데 부처라는 위대한 구원자라는 개념이 결코 아니라 부처를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를 형상화 하기 위해서 불상을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대승불교요 그것이 불교의 대중화에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 것이라는 것이지 불상이 곧 불교를 우상화한 신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껏 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할머님도 아버님도 어머님도 기독교다. 물론 동생도 마찬가지요. 친가 쪽은 죄다 기독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이렇게 불교라는 것에 집착하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가 불교보다 덜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난 기독교의 폐단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독교가 중요하듯이 나 또한 나에게는 불교라는 종교가 아닌 학문, 사상이 중요한 것이다. 고로 내가 기독교를 인정하듯이 그들 또한 불교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유일신 사상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책에서 얘기하듯이 자신의 수양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이지 그것이 종교일 수가 없는 것이다. 불교는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 수천년동안 쌓아온 노하우들이 경전이라는 형식으로 전해져올 뿐이지 기독교와 같은 성경과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