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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길게 적다 보니 글을 적고 싶어서 적는다. 이거 나중에 유어오운핏 유투브 영상으로 올릴 내용인데, 정리하는 셈치고 적어두는 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상에 올릴 거 글로 정리해서 미리 올려놓는 거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
#1
Situation
- 지인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 지인의 고향 후배는 국내 유명 프랜차이즈 맞춤 정장점 본사 대표이다.
- 지인은 고향 후배에게 알아서 잘 해달라고 했다.
- 고향 후배는 40%를 DC해줬다고 했다.
왜 나한테 검증해달라고 했을까?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 지인은 당하는 거 싫어한다. 좀 나랑 비슷한 부분이 있지 그런 면에서는.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다. 본질 가치에 맞는 정도 수준인지. 그렇다고 내가 까려는 관점에서 접근한 건 아니다. 나는 그런 거 보다 내 말의 신뢰를 더 중시한다. 나름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다.
#2
Analysis I
지인이 알아서 잘 해달라고 했던 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 수트가 많다. 근데 대부분 그레이, 네이비 류의 뻔한 수트라 뭔가 다른 걸 입고 싶어했던 거다. 여기서 일단 선택한 원단이 영 아니었다. 원단은 좋은 원단이었다. 영국산 고급 원단. 유어오운핏 내부 기준으로도 고가에 형성하는 원단이다. 그런데 색상과 디자인 패턴이 영. 내가 싫어하는 할배 체크라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지인에게 어울리지도 않는다 본다. 그거 입는 순간, 늙어보이. 나이 들어서 입으면 몰라도 내 나이(지인은 나랑 동갑)에서는 안 어울리는 색상.
일단 나는 원단 선택이 미스라 봤지만, 그런 건 개취가 반영되는 부분이라 패스. 그러나 지인도 안 입을 거 같은 분위기. 솔직히 나는 그거 보면서 이거 입고 다닐 수 있겠냐고 하긴 했다. 나라면 안 입는다.
#3
Analysis II
가격은 40% 할인가라고 한다면, 정상 가격이 눈탱이다. 왜냐면 40% 할인한 가격이라고 해도 유어오운핏 가격보다 비싸다. 아는 사람 알겠지만 유어오운핏 가격 검색하면 원단 컬렉션별로 가격 나온다. 지인이 나랑 키가 같고, 몸무게는 나보다 더 나가지만 원단 사용량은 별반 차이 없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검색해서 가격 보면 답 나오지. 옵션 들어간 게 전혀 없었으니. 이 말은 지인이라고 많이 할인해준 것처럼 느끼게 하려면 원래 소비자가를 높이고 할인폭을 높이는 거지. 그러나 여기까지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건, 나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니 뭐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그 옷이 비스포크라면 그게 비싼 게 당연하겠지만 수미주라였거든.
#4
Analysis III
문제는 바지다. 수트 2벌에 코트 1벌인데, 수트가 세퍼레이트라 자켓 원단과 바지 원단이 다르다. 바지의 경우에는 내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이거 원단 뭘로 썼는지 확인해보라고 얘기를 해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내가 볼 때는 그거 아니라는 데에 90% 정도 마음이 기운다. 단순히 마음이 기우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지. 세 가지 이유다.
첫째.
가장 처음에 원단을 만져보고 이거 좋은 원단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단 어떤 원단 썼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근데 영국 고급 브랜드 원단을 사용한 거다. 어? 그래? 물론 고급 브랜드 원단이라 하더라도 유어오운핏 기준 저가에 속하는 컬렉션 원단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 컬렉션의 원단으로 옷을 안 만들어본 게 아닌데 이렇게 차이가 나나 싶었지. 그래서 일단 몇 가지를 더 체크해봤다.
둘째.
하나는 라벨이 있고, 다른 하나는 라벨이 없다. 둘 다 같은 브랜드의 같은 컬렉션의 원단으로 제작했다고 들었다. 근데 내가 맨 처음에 체크한 바지에는 라벨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바지에는 라벨이 있더라. 해당 원단 브랜드의 라벨이. 일반적으로 우리는(유어오운핏은) 바지에 라벨 안 붙인다. 안 붙이는 이유가 바지에 붙이는 원단 라벨은 줄 때도 있고 안 줄 때도 있어서 통일을 해둔 거다. 그리고 대부분 유어오운핏에 원단 도착한 거 보면 자켓에 붙일 라벨만 주지 바지에 붙일 라벨은 없더라. 그래도 상관없는 게 바지에는 셀비지가 있으니 상관없거든. 더 확실하니까.
그리고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라벨이 붙어 있다 하더라도 그게 그 원단을 썼다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벌크로 산다면(원단을 한 번에 많이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라벨 넉넉히 준다. 그래서 라벨은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라벨이 붙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브랜드의 원단을 썼다는 개런티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체크하면서 눈에 띄길래 붙인 건데, 원단 라벨은 같은 브랜드의 같은 컬렉션이라고 해도 다르게 붙을 수 있다. 그건 원단 들어올 때 보면 같은 컬렉션인데 왜 이번에는 이런 라벨 주지? 그런 경우가 있더라고.
셋째.
셀비지가 없다. 바지 아래쪽을 뒤집어봤다. 없더라. 그럼 셀비지가 뭐냐? 셀비지는 기성 원단에는 없는데(돈을 주면 셀비지 넣어준다고는 한다.) 맞춤 원단에는 있다. 자기네들 원단이라는 걸 표기하는 건데 원단 아래 위쪽 끝부분에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거라 보면 된다. 물론 맞춤 원단 중에는 셀비지가 없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닌 건, 지인의 바지를 제작한 그 브랜드의 그 컬렉션은 셀비지가 있기 때문이다.
자 이건 이 글 적다가 찍은 내 와인색 수트 바지다. 아래쪽을 뒤집으면 이렇게 셀비지가 나온다. 그래서 지인에게 설명을 해주니 지인이 입고 있던 바지 아래쪽을 본인이 들추더라. 셀비지 있네. 보니까 까노니꼬네. 그런 식으로 셀비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원단 끝부분에 셀비지는 다른 데는 쓰일 수 없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안쪽에 사용하는데, 그렇게 활용되는 부분이 바지 아래쪽이랑 포켓 안쪽이다.
보통 이렇게 들어간다. 그러나 이걸 언급하지 않았던 건, 경우에 따라서는 앞포켓과 뒷포켓 안쪽에 셀비지가 안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만약 여기에 셀비지가 없었다면, 내가 90%라고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머지 10%는 뭐? 그렇다고 무조건 셀비지 부분을 써야만 한다는 건 없기에 그런 거지만 어떤 이유에서 그랬을까? 궁금하네. 여러 공방을 사용하는 유어오운핏의 제작물에는 그런 경우가 없거든. 다들 셀비지를 그렇게 활용한다고.
#5
Analysis IV
마지막으로 캐시미어 코트다. 난 딱 보고 이거 좋은 원단 아니라고 했다. 원단 라벨 봤다. 내가 모르는 원단 브랜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원단 브랜드를 내가 모두 아는 게 아니라고 해도(수천 개가 있는데 내가 그걸 어찌 다 아누) 원단 질을 보면 알지. 그래도 캐시미어 수도 없이 보고 만져봤고, 초고가 캐시미어는 뭐가 다른 지도 아는데 그 정도 파악 못할까 생각했었다. 딱 봐도 좋은 캐시미어가 아니라는 티가 팍 나. 내가 아닌 원단 좀 많이 구경했다는 사람이 봐도 알 정도. 말이 캐시미어 함유지 졸라 원단 구렸어.
캐시미어라고 해서 다 같은 캐시미어가 아니다. 고급 캐시미어는 때깔 자체가 다르다. 뭐 내가 업자니까 이렇게 얘기한다? 유어오운핏에서 옷 제작한 사람 어느 누구도 원단 갖고 뭐라는 사람 없었지. 우리는 정말 좋은 걸 좋다고 하는 데라니까 가격을 떠나서. 공방들도 다 그래. 우리는 정말 좋은 원단 갖고 제작한다고. 공방 들어가서 보면 알지. 다른 데서 어떤 원단으로 옷을 만드는지. 그러나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건 내가 모르는 브랜드니까 일단 확인은 해보겠다고 그러나 어떤 원단이라고 하는지 물어봐라고 했지.
뭐라 뭐라 해서 얘기는 들었다. 그렇게 알고 다음 날 나는 유어오운핏과 거래하는 원단 업체들 다 물어봤다. 다들 하는 얘기. 원단만 수십년 한 사람들이고 최고급 원단 브랜드를 유통하는 데인데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그런 브랜드 처음 들어본다. 풉.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볼 때는 중국산 원단이라 본다. 그리고 캐시미어가 그렇게 함유되어 있는데 그런 때깔이 나? 우리가 다루는 원단들 중에 캐시미어 함량이 그것보다 적게 들어가 있어도 그것보다 훨씬 더 때깔 나고 고급스럽다. 적어도 업자다 보니 그런 눈은 생기더라.
#6
Conclusion
- 자켓은 스타일링을 잘못해서 선택하여 착용하면 더 늙어보이는 원단 셀렉션을 해줬다.
- 바지는 본인들이 말하는 그 원단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 코트는 본인들 말로는 알아주는 브랜드라 하지만 원단 업체 종사자들 왈, 듣보잡이란다.
- 전체 가격을 올려서 할인폭을 크게 해주는 것처럼 해서 받을 돈 받았다.
유어오운핏에서 했다면 그 정도 가격 안 들이고도 더 좋은 옷을 속지 않고 제작할 수 있었다. 왜 나한테 안 하고 그럼 거기서 했느냐? 내 지인이. 나를 못 믿어서? 아니. 나는 내 지인들한테 내가 이거 하니까 와서 해라 그런 얘기 잘 안 해. 그리고 나한테 해보고 싶다고 일전에 얘기했었는데, 내가 뭐 준비한다고 나중에라는 말만 했을 뿐 신경도 안 썼거든. 물론 그 업체에서 맞춘 사람들 중에 대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 맞춤이라는 게 그렇거든. 그러나 과연 눈탱이 맞지 않고 만족스러웠느냐는 건 별개의 문제지.
#7
원래 프랜차이즈 맞춤 정장점은 각 지점의 경우는 손님을 많이 받아야 하지만, 본사의 경우에는 지점에 원단 제공하고, 지점 주문 받아 제작해주면서 수익을 충분히 내고도 남는다. 예를 들어, 어떤 원단을 싸게 많이 사왔어. 그럼 지점별로 프로모션하라고 하고 지점에 넘길 때는 이문 붙여서 넘기는 거야. 그런 식이거든. 그래서 본사 대표를 안다면 대표 권한에 의해 좀 메리트를 줄 수는 있겠지. 그러나 메리트라기 보다는 지인이라고 모른다고 신경 별로 안 쓰고 알아서 해달라고 했다고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나는 살면서 그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우리는 마진이 적정 마진이라(우리가 가져갈 것만 가져가자는 주의) DC 해달라는 말을 엄청 싫어한다. 그럼 다른 데 가서 사라고 하지. 그래도 VIP 온핏러들은 간혹 해주는 경우가 있긴 하다만, 나름 적정 마진이라고 하는 걸 깎으려고 하는 건 자기만 이익을 얻으려는 심보라 생각해서 나는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럴 거 같았으면 처음부터 마진을 올려두고 유도리를 발휘하는 게 맞겠지만 그건 또 내 마인드랑은 다르거든. 여튼 검증해달라고 해서 검증했는데 좀 어이없었던 부분이었다.
#8
해외에 사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한국 사람 사기치는 건 한국 사람이라고. 말이 통하니까 그런 거라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사례 보면 꼭 말이 통해서 그렇다기 보다 신뢰하기 때문에 속이기 쉬워서 그런 거 아닐까? 신뢰하는 사람이면 뭐라도 하나 더 신경을 더 써주는 게 인지 상정일 건데 말이지. 도통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