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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큐

바다의 제국 4부 - 거대한 역전: 차와 아편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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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는 동양과 서양의 충돌. 아편 전쟁에 대한 얘기다.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중국은 굳이 개척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지 못한 유럽은 개척을 해야 했기에 배에 투자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1부에서 언급했던 정화 선단과 같이 대항해 시대의 초창기에는 중국도 엄청난 함대를 갖고 있었지만, 니즈가 부족해서 인지 더이상의 발전이 없었던 반면, 유럽은 달랐다. 게다가 증기기관까지 발명되면서 더욱더 격차는 벌어지고 만 것. 이로 인해 중국에겐 흑역사고 세계사에선 세계의 주도권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바뀌게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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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차보다는 커피가 더 인기가 많지 않을까 싶은데, 차가 유행하게 된 배경이 있다. 당시 영국에서 남성들은 커피하우스에 출입하면서 커피를 즐길 수 있었던 반면, 여성들은 출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성들을 중심으로 집에서 간단하게 끓일 수 있는 차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 이로 인해 사교 문화의 중심지였던 커피하우스는 쇠퇴하고 남성과 여성이 모두 출입할 수 있는 티 가든으로 대체하게 된다.

 

그러다 훗날에는 차와 빵을 즐기면서 왈츠와 탱고를 추는 티 댄스라는 사교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당시 중국과의 교역품 중에는 도자기, 비단, 차가 대표적이었는데, 도자기는 독일에서, 비단은 프랑스에서 자체적으로 만들면서 대체할 수 있었지만 차는 달랐다. 직접 생산이 불가했던 것. 문제는 중국은 차 반출에 대해 국가적으로 엄격했기에 차를 얻으려면 직접 중국에 가서 사와야만 했던 거다.

 

#2 13행

13행은 당시 중국의 유일한 대외무역 장소로 광저우의 상인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요즈음에는 의류 도매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는 곳. 당시 중국은 4군데 항구만 개방을 하고 지정한 상인들만 독점적으로 무역을 할 수 있었는데, 3군데는 폐쇄하고 남긴 한 군데가 바로 광저우였기에 13행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당시 최대 교역품은 바로 차.

 

교역항을 늘려달라고 파견한 사절단의 요구도 거절한 중국. 이유는 중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해서 교역이 꼭 필요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히 폐쇄적이었다. 유일한 교역 창구인 광저우에도 엄격한 통제 하에 교역만 가능하도록 했었고. 이게 결국 훗날 아편전쟁의 계기가 된다.

 

#3 오병감

어느 정도로 이윤을 남겼냐면, 차 한 근 팔면 일반 서민들의 한 달 생활비의 13~15배나 남았다. 당시 13행 중에서 이화행을 소유했던 오병감이란 인물이 있는데,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보다 4~5배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단다. 당시 중국 재정 수입의 반 정도 되는 규모. 그러나 그가 그런 부를 축적한 건 단순히 차를 팔아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해외 투자 덕분이었다.

 

#4 포브스

포브스란 경제 잡지의 그 포브스도 당시 오병감의 점원이었었다고. 그를 양자로 받아들였던 오병감은 그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50만 멕시코 은원을 줬고, 이를 기반으로 포브스는 미국 철도 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거 보면 돈을 벌려면 돈 있는 자 옆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5 아편전쟁

유럽 전역에 차가 유행했던 건 아니었다. 영국만 주소비국이었는데, 이로 인해 영국은 차를 수입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은을 사용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또 영국은 인도의 면직물 수입에서 보여줬듯 날강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아편이다. 벵갈 지역에서 재배한 양귀비를 이용해 중국인들에게 싸게 공급하면서 수익을 냈던 것.

 

이 때문에 중국은 임칙서를 내세워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아편 전쟁이 시작된다. 영국의 동인도회사 소속의 상선은 2척 밖에 안 됐지만 당시 29척이나 되었던 중국의 함대를 대파한다. 선체는 철로 만들어졌고, 증기기관의 동력으로 빠른 속도와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상선이지만 중무장한 상선이었기에 화력도 상대가 안 되었던 것. 마치 칼과 총의 싸움이랄까?

 

이후 제2차 아편전쟁을 통해서 중국은 개방되게 된다. 

 

#6

오늘날의 미중 무역 전쟁도 먼훗날에는 하나의 역사로 서술되겠지. 어떤 결론이 나서 어떻게 기록이 될 지야 모르지만, 지금껏 역사를 돌이켜봐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되는 건, 다 자기 이익대로 욕심낼 거라는 거. 그래서 국력을 길러야 하는데, 그게 보면 다 돈과 직결되는 문제인 듯. 이렇게 돈이라는 게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되는. 거 참. 중요한 건 인정해도 그게 목적이 되어선 안 될 건데, 어찌보면 그렇게 얘기하는 거 자체가 위선으로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하다. 왜냐면 역사 속 교훈은 그 반대로 얘기해주고 있으니. 씁쓸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