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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나의 신앙 생활의 한계

내가 다니는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아는 동생(타 교회 목사님 딸)을 통해서 상당히 보수적이고 뭔가를 강요 많이 받을 거라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보수적이라고 하는 건 엄격히 교리를 따진다는 거고 건강하다는 말이기 때문에 그걸 두고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바람직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리고 강요하진 않지만 분위기를 몰아간다. 그게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일단 다 겪어보자는 생각이 강했고, 그들이 믿는 바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들이었기에 나도 따랐다. 그런데 이제는 좀 한계가 온 듯 싶다.

일주일 4일

 

지난 주 화요일 아들과 함께 참석한 행복 모임

교회에서는 수레바퀴의 삶을 얘기한다. 우리가 반복되는 삶을 쳇바퀴 돈다고 표현하듯, 신앙 생활도 수레바퀴와 같이 반복된 삶 속에서 영적 성장이 이뤄진다는 얘긴데, 이게 참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이 다른 이들을 이끄는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달리 보는 부분이 있다. 교회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부 이런 게 의미가 없다. 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형제 자매다. 그렇지만 은근 위계 아닌 위계가 있다. 그게 어찌 보면 신앙 생활을 얼마나 충실하게 하느냐로 어느 정도 결정되는 부분인데, 그 신앙 생활이라는 체계는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건 교회를 운영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다.

물론 복음을 전파한다는 대의를 내세우고, 그들이 얻은 헌금을 허투루 쓰는 게 아니라 정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용도로 쓰는 건강한 교회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겠지. 나는 그런 데에 헌금을 내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내가 다니는 교회는 그렇지 않다. 내가 몰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말이지 아직까지는 그런 걸 전혀 보지도 듣지도 확인해보지도 못했다. 그런 교회였기에 내가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건 맞다. 그러나 수레바퀴의 삶은 정말 내가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다.

화요일: 행복모임 (남성 공동체 모임)
수요일: 셀모임
토요일: 양육
일요일: 예배

매주 그런 건 아니지만 1년에 두어번 이런 주간이 있다. 화요일에는 남성 공동체 모임인 행복 모임을 어느 집사님(할 때마다 바뀌는데 대부분 일산이다. 일산에 교회가 있으니) 댁에서 하고, 수요일에는 내가 속한 셀에서 모인다. 보통 의정부에서 모인다. 셀 리더(이 분 때문에 내가 신앙 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분이 의정부에 있는 정신병원 병원장님이시라 거기서 모인다. 토요일에는 양육이라 하여 영적 성장을 위한 교육을 받는데, 일전에 나는 양육 과정을 이수했고, 이제는 제자학교라고 해서 그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중도 포기할 듯 싶다. 이유는 좀 있다 언급한다. 일요일에는 당연히 예배하고. 주 4일이다. 이러다 보니 저녁 시간에는 뭔가를 하기가 쉽지 않다. 왠만하면 약속도 안 잡는 편이 되는 상황. 그래서 이번 주에는 금요일에 약속을 잡았다. 이게 약과다. 나는 참석하지 않는 게 있거든.

수남새: 수요일 남자 새벽 기도
금요철야: 금요일 철야 기도

보통 믿음이 강한 분들이나 리더 분들은 다 참석하더라. 원래 새벽 기도는 화요일엔 청년, 수요일엔 남자, 목요일에는 여자들을 위한 새벽 기도인데, 보통 믿음이 강한 분들은 매일 새벽 기도 참석하시고 출근하신다. 내가 속한 셀의 리더분도 그러시고.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3시간 정도 밖에 안 된다는. 하는 일도 많은데 신앙 생활까지 해야 하니 그렇게 밖에 잠을 잘 수가 없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필요한 것만 참여한다고 하는 데도 요즈음에는 일주일에 4일이나 된다.

 

내게 적합한
신앙 생활은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수요일 셀모임, 일요일 예배. 왜냐면 일주일에 한 번만 교회 가서 예배 드리면, 영적 성장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세상에 휘둘리기 쉽단 얘기다. 그래서 일주일 사이에 중간 정도 즈음에 셀모임 하면 그래도 믿음 좋으신 분들과 얘기 나누면서 스스로 반성도 하고 나를 다잡는 계기도 만들 수 있다 보니 그런 거다. 물론 매일 매일 새벽 기도에 참여하고 신앙 생활을 한다면 일상 속에서도 항상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그렇지 못하리라 본다. 물론 영적 내공이 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얼마나 신앙 생활에 내가 시간을 들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라도 본인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들만큼 말과 행동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가려서 하는 편이다. 그들이 나 잘못되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기도 하지만 그네들만큼 내가 말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듣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경우는, 그네들이 믿는 바를 복음이라는 미명 하에 얘기를 하는데 강요처럼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듯 얘기하는 경우다. 수레바퀴의 삶이 마치 진리인 양 얘기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동의하기 힘들어서 그러는 거다. 어쩌면 아직 내가 영적 성장이 미숙하여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해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극으로 가게 되면 재산 다 교회에 기부하고 다 같이 살면서 복음 전해야 하지. 뭐가 생각나는가? 사이비 종교 집단. 그렇게 되는 거다. 

결국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정도의 차이라는 거다. 그 정도라는 건 사람마다 다를 순 있는데, 내가 속한 교회에서는 다른 데보다는 좀 더 보수적이다 보니 그런 거. 그 덕분에 신앙심 깊은 분들이 많은 거 같은데, 마치 주입식 교육하듯 단계를 두고 그것이 영적 성장이라고 하는 건 그건 주님이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언어로 얘기하자면, 주님이 각 사람에게 기대하는 건 다를 거다. 모두 획일적으로 어느 정도 되길 바란다고 한다면, 그건 모든 이들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거고, 그건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걸 뜻한다. 왜? 그럼 누가 헌금하나? 다 목사가 되면. 결국 각 사람마다 역할이 다른 거고, 나는 나대로의 역할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게지. 그걸 다른 이들이 어떻게 얘기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보고.


양육 과정이 총 4단계다. 14주 동안 하는 프로그램인데, 1단계가 양육과정, 2단계가 제자학교, 3단계가 제자대학 1학기, 4단계가 제자대학 2학기. 2단계에서는 행복 모임의 리더로 길러지고, 3,4단계를 거치면 셀 리더로 길러지는데, 과정이 올라갈수록 숙제가 좀 많아진다. 나는 현재 2단계 제자학교에서 교육 받고 있고, 어제는 결석을 했다. 1단계 양육과정에서는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었던 유일한 나였는데, 왜 제자학교는 결석했느냐? 숙제를 안 해서. 숙제를 위해 책도 다 구매했지만 읽어볼 시간이 없었다. 다 변명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간 나면 나도 쉬고 싶다. 신앙 생활을 통해서 더 힘을 얻는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는 피로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꽤 있다. 왜? 얘기를 듣다 보면 도무지 내가 이해가 안 되는 얘기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거기서 논쟁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멀어지게 되는 듯 싶다. 

그래서 나는 제자학교를 중도 포기할 생각이다. 현재의 나는 이게 한계다. 그게 믿음이 강한 분들이 보기에는 아직 영적 성장이 덜 이뤄졌다고 볼 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신앙 생활은 다들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거와는 결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뭐라 대꾸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내 믿는 바대로 신앙 생활을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