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시한부 판정받은 후배

대학 동기 단톡방이 있다. 연말이 되어야 톡이 올라온다. 송년회하자고. 이마저도 이렇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대, 30대 때는 그런 게 잘 안 되잖아? 중/고등학교 동창 녀석 중에 음지에서 생활하는 친구 있다. 그 친구도 20대, 30대 때는 만나기 꺼렸다. 좀 뭐랄까? 불편해. 그러나 40대 되니까 다 내려놓더라. 그럴 수 밖에. 우리 나이 되면 친구가 그립거든.

송년회 언제 할 거냐는 얘기로 시작된 톡 중에 좋은 소식 하나와 안타까운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좋은 소식 하나는 동기 중에 하나가 삼성전자 상무로 승진했다는 소식이었고, 안 좋은 소식 하나는 후배 중에 하나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거였다. 엥? 누가? 알고 보니 나도 잘 아는 후배다. 과 수석으로 입학한 똘똘한 녀석이라 내가 소싯적 벤처할 때도 데리고 있었던 녀석이다. 올해 포르쉐 샀다고 그러는 거 페북인가 인스탄가 본 적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몰랐지.

개인적으로 페북은 거의 안 하다 보니 접속 자체를 안 해서 몰랐었는데, 그 소식 듣고 보니 내가 연락처가 없어서 연락처도 받아두고 페북 들어가서 봤더니 와이프가 병간호하는 병상 일지를 후배 녀석 계정으로 올리고 있더라. 소식 전해준다고. 사진을 보니 머리엔 수술 자국이 있고, 항암치료 한다고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해 수척해진 얼굴이 안쓰러웠다. 얼굴에 살 많았던 녀석인데.

최근에 동기들이 가서 보고 왔다는데, "어서 완쾌해서 포르쉐 끌고 다녀야지" 했더니 "다 소용 없어요" 하더란다. 다녀온 동기 녀석이 짠하더란다. 흠... 그럴 만하지. 요즈음은 가끔씩 치매 증상도 있고, 와이프며 딸이며 이름도 모른다고 하던데. 하. 주변에서 이런 일이 있다 보니 참 남일 같지 않더라. 그것도 나보다 어린 녀석이. 

 

교모세포종
Glioblastoma

 

뇌종양이라고 그러더라. 뇌종양이 시한부 판정? 뇌종양 완치 안 되냐고 했더니, 교모세포종이라 해서 악성 종양이란다. 고 LG 구본무 회장이 앓았던 바로 그 뇌종양이다. 치료를 안 받으면 3-6개월 내에 사망하고, 치료를 받아도 12-14개월 밖에 못 산단다. 물론 평균을 말하는 거지만, 그만큼 악성이란 얘기다.

암만 그런다 해도 과연 이게 시한부 판정일까 싶어서 찾아보니 교모세포종 진단 받고 이겨낸 사람이 있더라. 물론 재발율이 높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게 4년 전 영상인데, 1개월 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유투브 영상 올렸더라. 안 된다고 생각하면 진짜 안 된다. 희망적으로 생각하면서 이겨내야지. 물론 그 과정이 힘들겠지만 말이다. 병문안 가야겠다. 만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을 겪으니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만약 내가 후배의 입장이라면? 참 많은 생각이 들 거 같다. 아직 후배는 병중에 있으니 혼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면서 지낼까 싶다. 조금이나마 힘이라도 될 수 있다면 되어주고 싶은데.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챙겨야지 하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되는 거 같은데, 그래도 가족들 중에 어느 누구 아픈 데 없다는 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워낙 아파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이러다 훅 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젠 진짜 건강 검진 꼬박꼬박 받아야겠다.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생기니 너무 다르게 느껴지네.